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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800014
한자 宗敎
영어공식명칭 Religion
분야 종교/불교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지역 충청남도 보령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정성권

[정의]

충청남도 보령 지역의 초인간적 세계와 관련된 신념이나 의례 등으로 구성된 문화 현상.

[개설]

충청남도 보령 지역의 종교는 유교, 불교, 천주교, 개신교가 대표적이다. 보령시는 지리적으로 해안가에 있으며 역사적으로도 수도에서 외진 곳에 있어 종교의 유입이 비교적 늦었다. 이러한 지역적 여건 위에 전통적인 민간신앙이 뿌리 깊게 자리잡고 있어서 신흥 종교의 기반이 견고하지 않은 것이 현실이었다. 타 시군에 비하여 종교 인구가 적은 편이지만, 기독교 등 신흥 종교의 급속한 유입과 발전은 보령시의 발전과 함께 성장하는 추세이다.

2019년 기준으로 보령시에서 가장 많이 신봉하는 종교는 개신교로 24.3%를 차지한다. 불교는 15.9%, 천주교는 3.7%, 유교는 0.1%이다. 유교의 경우 향교와 서원을 중심으로 의례와 제향을 지내고 있다. 기타 종교 역시 소수이지만 지역 곳곳에 포교당을 설치하여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이와 같이 보령 지역은 오랜 역사를 가진 유교나 불교보다 기독교의 교세가 강하며, 기독교 중에는 장로교가 절반을 상회하고 있다.

[유교]

보령 지역에 유교가 언제 유입되었는지 정확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다만 한성 백제기에 이미 수준 높은 유교 문화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 점으로 보아 보령 지역에도 이른 시기부터 유교가 소개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보령 지역에는 향교로 대표되는 조선 시대의 유교 문화가 남아 있다.

3개소의 향교를 중심으로 의례가 진행되는데, 보령 지역의 향교는 보령향교, 남포향교, 오천향교가 있다. 3개소의 향교에서는 각각 음력 2월과 8월 초정일(初丁日)에 공자를 비롯한 훌륭한 스승에게 드리는 제례 의식인 석전대제(釋奠大祭)를 진행한다. 석전대제 진행과 함께 충효교실을 운영하고, 연 1회 합동 기로연(耆老宴)을 개최한다.

석전대제는 전교(典敎)가 장의회(掌儀會)를 열어 제향에 대한 사전 협의를 한다. 제사를 지낼 때 제관을 대표해 술잔을 첫 번째로 드리는 초헌관(初獻官)은 시장, 의장, 경찰서장, 교육장 등이 돌아가며 맡는다. 다음 술잔을 올리는 아헌관(亞獻官)은 유림, 원로 전임 헌관(獻官) 중에서 선정하고, 마지막 술잔을 담당하는 종헌관(終獻官)은 제관 중에서 선정한다. 의식의 순서를 낭독하는 집례자의 창홀(唱笏)에 의하여 석전을 봉행하며, 제례 후에는 유림총회를 연다. 또한 충효교실 운영에도 적극 참여하여 학생들에게 충·효·예와 한문, 일반상식 등을 교육하고, 각급 학교에 충효교실과 관련한 강사도 파견하며, 지역의 효자 및 효부를 선정하여 성균관장의 표창을 주선하기도 한다.

기로연은 3개소의 향교 합동으로 매년 12월 보령문화원에서 70세 이상 노인 500여 명을 모신 가운데 전통 음악 공연, 기념품 제공, 음식 접대 등으로 흥겨운 잔치를 개최하여 어르신들을 위로한다. 이 밖에도 관내에서 실시하는 각종 문화 행사의 제례 부분에 참여하여 산제, 풍년제, 풍어제, 도미부인 추모제 등을 주관한다. 수현사(水絃祠), 문헌사(文憲祠), 집성당(集成堂), 삼사당(三祠堂) 등 관내 유명한 사우의 제향과 김좌진장군묘 제향 등에도 참여하고 있다. 보령시 각 향교별로 유도회(儒道會)가 운영되고 있으며, 기타 여러 행사에도 적극 참여하고 있다.

보령 지역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서원으로 화암서원이 있다. 1610년(광해군 2)에 창건하고 1686년(숙종 12)에 사액(賜額)되었다. 처음에는 토정(土亭) 이지함(李芝函), 명곡(鳴谷) 이산보(李山甫), 천휴당(天休堂) 이몽규(李夢奎) 세 분을 봉안하다가, 일제 강점기에 퇴우당(退憂堂) 이정암(李廷馣), 1971년에 수암(睡庵) 구계우(具繼禹)를 추가로 배향함으로써 5위를 봉안하여 제향하고 있다. 화암서원은 정기적으로 음력 2월과 8월의 중정일(中丁日)에 제향을 하고 있으며, 교학 사업으로 관내 초등학교 방학 기간 중 충효교실 운영에 참여하고 있다.

[불교]

보령 지역에 불교와 관련된 대표적인 사찰은 백제 시대 오합사(烏合寺)였으며, 통일 신라 시대 구산선문(九山禪門)의 대찰(大刹)이었던 성주사(聖住寺)가 있다. 삼국 시대부터 통일 신라 시대뿐만 아니라 고려 시대에도 성주사는 보령 지역 불교의 중심지 역할을 하였다.

조선 시대에 들어와서는 숭유 정책을 표방하게 됨에 따라 불교에 대한 여러 정비책을 시행하여 교세가 고려 시대에 비하여 크게 약화되었다. 불교에 대한 정비책으로 도첩제(度牒制)를 실시하고, 종파를 선교 양종으로 통합하여 사원의 건립을 억제하였다. 따라서 지방에서도 읍성 내의 사찰을 철폐하였으며, 성 밖 먼 거리에 있는 산중 사찰만 남게 되었다. 그러나 조선 시대의 불교는 국가 지도 이념으로서의 지위는 잃었지만 신앙의 대상으로 민간 사회에서는 여전히 신봉되었다. 불교는 국가와 개인의 안녕과 평화를 기원하는 종교 기능을 가지고 있었고, 또한 민간신앙의 하나로 굳어져 있었기 때문에 사회적 기반을 유지할 수 있었다.

조선 전기에 편찬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과 조선 후기에 편찬된 『여지도서(輿地圖書)』에 기록되어 있는 보령현(保寧縣)남포현(藍浦縣)의 사암(寺庵)을 보면, 『동국여지승람』에는 숭암사(崇嚴寺), 영흥사(永興寺), 옥계사(玉溪寺), 사나사(舍那寺), 성당사(聖堂寺), 성주사 등이, 『여지도서』에는 숭암사, 영흥사, 옥계사, 천정사(天井寺) 등이 기록되어 있다. 당시의 기록에 남아 있는 사찰은 수도 적을 뿐만 아니라 전부가 산지에 있는 사찰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보령 지역에 현존하는 사찰들은 대부분 해방 이후에 건립되었으며, 불교 신도들의 도량이 되고 있다. 보령 지역 사찰의 수는 1980년대와 1990년대는 30여 곳이 있었으며, 2000년대는 50여 곳으로 늘었다. 2010년대 이후부터는 약 60여 곳 이상으로 증가하였다.

[천주교]

충청도의 내포(內浦) 지방인 예산, 홍성, 서산, 보령 지역은 일찍이 많은 천주교 신자가 생겨 탄압을 받은 곳이다. 1791년(정조 15) 11월 승정원에서 올린 글에 “전(前) 승지承旨) 이수하(李秀夏)의 사는 곳은 보령현으로, 사학(邪學)이 우치(尤熾)하여 현감 김일운(金日運)이 10여 인을 징계하였지만 효과가 없었다.”고 하였다. 1794년(정조 18) 청나라 신부 주문모(周文模)가 입국, 서울에 있으면서 몰래 지방에 다니며 포교 활동을 하였는데, 이때 연산, 호서의 남포, 온양, 내포 지방에 드나들었다는 기록으로 보아, 보령 지역에 천주교는 18세기 말에 전래된 것으로 보인다.

내포 지방에는 일찍부터 천주교가 크게 번져 우리나라 최초의 신부인 당진의 김대건(金大建) 신부와 청양의 최양업(崔良業) 신부 등을 배출하였으며, 아울러 당진 지방이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천주교 채택지가 되었다. 그 후 많은 지역에 해방 전까지 천주교가 채택되었으나, 보령 지역의 천주교 채택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늦은 1960년대 초반이었다. 한편 보령 출신으로 문헌에서 찾아볼 수 있는 사람은 김한빈(金漢彬)이다. 김한빈은 보령현 출신으로 정약용(丁若鏞)의 낭속(廊屬)[하인배]이었으며, 황사영(黃嗣永) 등을 도와 활동하다가 체포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보령 지역 천주교와 관련하여 중요한 장소로는 보령 갈매못 천주교 순교지를 들 수 있다. 보령 갈매못 천주교 순교지보령시 오천면 영보리에 있다. 천주교의 대표적인 순교 성지로서 보령 지역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도 잘 알려져 있는 장소이다. 교황 베네딕트 16세는 보령 갈매못 천주교 순교지를 2008년 6월 29일부터 2009년 6월 29일까지 ‘성바오로 사도 탄생 2000주년 기념 전대사(全大赦) 수여 지정 성지’로 선포하기도 하였다.

갈매못은 1866년(고종 3) 병인박해 당시 프랑스 선교사 3명과 한국의 천주교인 2명이 순교한 곳이다. 순교자는 다블뤼 안토니오 주교, 오메트로 베드로 신부, 위앵 마르티노 루카 신부 등 프랑스 신부 3명과 장주기(張周基), 황석두(黃錫斗) 회장으로 한국인 2명이었다. 당시 사형장은 1975년 9월 대천성당 주임 정용택(鄭鏞澤) 신부가 위치를 확인, 순교복자비(殉敎福者碑)를 세웠으며, 2006년 10월 갈매못 승리의성모성당을 준공하여, 순교 순례지로서 전국의 신자들이 많이 찾고 있다.

보령의 최대 성당인 대천성당은 장항성당의 관할 공소로 시작되어, 1962년 10월 본당으로 승격되었다. 1988년 웅천공소[현 웅천성당], 1994년 은포리공소, 1999년 해수욕장성당[요나성당], 2002년 대천동 제2성당[보령 동대동성당], 2003년 갈매못을 성지 본당으로 설정하고 2006년 갈매못 승리의 성모성당을 완공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개신교]

우리나라에 개신교가 들어오게 된 것은 1882년(고종 19) 조선 정부와 미국 정부 간에 한미통상조약이 체결되어 미국 선교사들의 입국이 자유롭게 보장되면서 비롯되었다. 구교인 가톨릭은 초기부터 박해를 받아 선교가 순탄치 못하였으나, 개신교는 우리나라가 구미 제국과 수호조약을 맺은 뒤에 들어왔기 때문에 선교가 비교적 순조로웠다. 그래서 성장과 발전을 거듭하여 현재 많은 신도를 가지게 된 중요한 원인이 되었다.

보령 지역에 들어온 개신교 중에 가장 먼저 감리교회대천제일교회가 설립되었다. 파악된 설립 연도는 1908년 1월 6일[설립자: 김태환]이며, 2008년 1월 6일 100주년 기념 행사를 하였다. 이후 각 지역에 지교회(支敎會)를 설립함으로써 보령 지역 감리교회의 중심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보령 지역의 개신교 중 가장 많은 교회에 신도를 보유한 곳은 장로교회이다. 보령 시내의 장로교회는 2000년대 이후 110여 개 이상이 있으며, 개신교 전도 활동을 활발하게 펼치고 있다. 감리교회장로교회 이외에 개신교의 다른 분파인 성결교회와 침례교회 역시 여러 교회가 있으며, 매년 연말에 자선냄비 등을 통하여 불우이웃을 돕는 데 앞장서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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