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800489
한자 李齊賢
이칭/별칭 지공(之公),중사(仲思),익재(益齋),역옹(櫟翁),문충(文忠)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충청남도 보령시
시대 고려/고려 후기
집필자 홍제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287년연표보기 - 이제현 출생
활동 시기/일시 1301년 - 이제현 성균시 1등 합격, 과거 합격
활동 시기/일시 1314년 - 이제현 원나라 연경 파견
활동 시기/일시 1323년 - 이제현 원나라에서 충선왕 방환운동 전개
활동 시기/일시 1339년 - 이제현 원나라 볼모로 간 충혜왕 사태 수습 및 복위에 힘씀.
활동 시기/일시 1351년 - 이제현 도첨의정승으로 국정 총괄
활동 시기/일시 1353년 - 이제현 지공거로 이색 등 35인을 등과자로 선발
몰년 시기/일시 1367년연표보기 - 이제현 사망
사당|배향지 익재영당 - 충청북도 보은군 탄부면 하장리
사당|배향지 용암영당[삼사당] - 충청남도 보령시 미산면 보령호로 819[용수리 627-4]지도보기
성격 문신
성별
본관 경주
대표 관직 도첨의정승|문하시중

[정의]

성리학이 고려에 널리 퍼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으며 후손들이 충청남도 보령 지역에 세거하고 있는 고려 후기의 문신.

[개설]

이제현(李齊賢)[1287~1367]은 고려 후기의 문신으로 원나라에서 생활하며 문인들과 많은 교류를 하였고, 성리학을 고려에 널리 알렸다. 후손들이 충청남도 보령에 세거하고 있는데 이들이 이제현을 기리는 사당인 용암영당[삼사당]을 세웠다.

[가계]

본관은 경주(慶州), 초명은 지공(之公), 자는 중사(仲思), 호는 익재(益齋) 또는 역옹(櫟翁)이다. 고려 건국 초의 삼한공신(三韓功臣) 이금서(李金書)의 후예로 할아버지는 증좌복시 이핵(李翮), 아버지는 검교시중(檢校侍中) 이진(李瑱), 어머니는 박인육(朴仁育)의 딸이다. 권부(權溥)[1262~1346]의 딸과 혼인하였다.

[활동 사항]

이제현은 어려서부터 남달리 성숙했고 글을 짓는 데도 비범한 재능을 지니고 있었다. 1301년(충렬왕 27) 4월 성균시(成均試)에 1등으로 합격하고 이어서 5월 권부가 주관한 과거에 합격하였다. 이해에 권부의 딸과 혼인하였다. 1308년 예문춘추관(藝文春秋館)에 선발되고, 1309년 사헌규정(司憲糾正)에 발탁되어 본격적인 관리 생활을 시작하였다.

1314년(충숙왕 1) 상왕(上王)인 충선왕(忠宣王)[재위: 1308~1313]의 부름을 받아 원나라의 수도 연경(燕京)으로 가서 만권당(萬卷堂)에 머물면서 6년을 보냈다. 이때 고려의 국가적 독립성을 말살하고 원나라의 내지와 같은 성(省)을 세우도록 주장하는 입성책동(立省策動)이 강력하게 일어났다. 이제현은 1323년 원에 들어가 입성 반대 상소를 올리고 이어서 토번(吐蕃)[티베트]으로 유배되어 있는 충선왕의 방환운동(放還運動)도 벌였다. 1339년 충혜왕(忠惠王)[재위: 1330~1332; 1339~1344]이 원나라에 붙잡혀 가자 원나라에 가 사태를 수습하고 왕이 복위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1351년 11월 공민왕(恭愍王)[재위: 1351~1374]이 즉위해 새로운 개혁 정치를 추진하려 할 때 도첨의정승(都僉議政丞)에 임명되어 국정을 총괄하였다. 1353년(공민왕 2) 지공거(知貢擧)가 되어 과거를 주재하여, 이색(李穡)[1328~1396] 등 35인을 등과자(登科者)로 선발하였다.1356년(공민왕 5) 반원운동(反元運動)이 일어나자, 11월 문하시중(門下侍中)이 되어 사태의 수습에 나섰다가, 이듬해 5월 치사(致仕)[나이가 많아 벼슬을 사양하고 물러남]하였다. 『국사(國史)』와 『금경록(金鏡錄)』을 찬하였다. 『국사』를 편찬할 때 기년전지(紀年傳志)의 기전체를 계획하였다. 1367년(공민왕 16) 7월 사망하였다.

[학문과 저술]

『익재난고(益齋亂藁)』10권과 『역옹패설(櫟翁稗說)』2권을 남겼다. 이 두 권을 합해 『익재집(益齋集)』이라 한다.

[상훈과 추모]

경주의 금강서원, 금천의 도산서원에 제향되었다. 공민왕의 묘정에 배향되었으며,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이제현의 후손들이 조선 전기 이래로 충청남도 보령 지역에 거주하였으며, 1800년대에 후손 이예환(李禮煥)[1772~1837)이 주도하여, 이제현의 영정을 모사해 영당을 짓고 모셨다. 후손들이 조선 후기 충청남도 보령시 미산면이제현을 기리고 제사를 지내는 사당인 용암영당(龍岩影堂)[삼사당(三思堂)]이 세웠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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