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포진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800541
한자 藍浦鎭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제도/법령과 제도
지역 충청남도 보령시 남포면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문광균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제정 시기/일시 1390년연표보기 - 남포진 설치
시행 시기/일시 1455년 - 남포진 군익도(軍翼道) 체제에 편입
폐지 시기/일시 1467년연표보기 - 남포진 폐지
관할 지역 남포진 - 충청남도 보령시 남포면 지도보기

[정의]

충청남도 보령시 남포면에 있었던 방어용 군사 기지.

[제정 경위 및 목적]

남포진(藍浦鎭)은 고려 시대 우왕(禑王)[재위: 1374~1388] 때 왜구의 침입으로 황폐화된 남포현(藍浦縣)을 정비하고 방어하기 위해 1390년(공양왕 2)에 설치되었다.

[내용]

1397년(태조 6) 남포진의 진군(鎭軍)을 통솔하기 위해 종3품의 병마첨절제사(兵馬僉節制使)가 파견되었고, 방어를 하기 위해 토성(土城)이었던 읍성을 석축(石築)으로 축조하였다. 남포진은 순성진(蓴城鎭)[태안], 이산진(伊山鎭)[덕산]과 함께 충청도의 3진으로 충청도 육군의 중요 3대 방어 기지였다. 남포진은 1455년(세조 1) 연해 요해지(要害地)[지세(地勢)가 군사적으로 아주 중요한 곳]의 방어만이 아니라 내륙의 방어를 견고히 하기 위해 중요 지역에 거진(巨鎭)을 설치하고, 인근 고을을 익(翼)에 분속시키는 군익도(軍翼道) 체제가 정비되면서 여기에 편입되었다.

남포진을 거진으로, 중익은 남포·비인·홍산, 좌익은 한산·서천·임천, 우익은 보령·결성이었다. 남포진을 방어하기 위한 군병은 유방군(留防軍) 63명, 진속군(鎭屬軍) 300명, 신백정(新白丁) 39명, 수성군(守城軍) 51명으로 총 453명이었다. 1457년(세조 3) 군익 체제가 지역 단위 방어 체제인 진관(鎭管) 체제로 개편되었고, 1467년(세조 13) 병조의 의견에 따라 남포진의 군대는 비인진(庇仁鎭)에 이합되고, 진(鎭)으로서의 기능이 상실되어 사실상 진의 혁파가 이루어졌다.

[위치]

남포진충청남도 보령시 남포면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의의와 평가]

조선 시대 충청도 연해의 요충지를 방어하기 위해 설치된 군사 기지로 태안의 순성진, 덕산의 이산진과 함께 왜구의 침입을 방어하기 위한 주요 거점이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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