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주경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800625
한자 成周京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충청남도 보령시 오천면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정을경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79년연표보기 - 성주경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09년 4월 - 성주경, 동료 의병 14명과 함께 홍성에서 군자금을 모집 활동
몰년 시기/일시 1909년 4월 23일연표보기 - 성주경 사망
추모 시기/일시 1996년연표보기 - 성주경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
출생지 충청남도 보령시 오천면 지도보기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대표 경력 의병

[정의]

구한말 시기에 활동하였던 충청남도 보령 출신의 의병.

[개설]

성주경(成周京)[1879~1909]은 충청남도 보령 출신으로 1909년 4월 오양선 의병부대에 참여하여 군자금 모금 활동을 전개한 인물이다.

[활동 사항]

성주경이 의병에 투신한 계기는 1907년 7월 고종(高宗)[1852~1919]의 강제 퇴위와 8월 군대 해산을 계기로 전국적으로 의병전쟁이 격화, 고조되어감에 따른 영향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제는 1905년 11월 망국조약인 을사조약을 강제로 늑결하여 한민족의 격분을 샀다. 이에 을사늑약 반대 투쟁이 전국적으로 요원의 불길처럼 번져갔고, 그러한 와중에서 전국 도처에서 재기한 의병이 항일투쟁의 선봉에 섰다.

일제는 1907년 7월에는 특사 파견의 책임을 물어 고종 황제를 강제로 퇴위시킨 뒤 정미7조약을 체결함으로써 대한제국의 내정권을 마지막으로 장악하였으며, 이어 8월에는 대한제국의 정규 군대를 강제로 해산함으로써 나라가 망할 때 혹시라도 있을지 모를 군대의 저항을 미연에 차단하고자 하였다. 일제의 이러한 일련의 침략 책동에서 고종 황제의 강제 퇴위와 군대 강제 해산은 한민족의 대일 적개심과 항일 기운을 더욱 고조시키는 결정적 계기로 작용하게 되었고, 그 결과 전 민족이 대일전에 동참하게 되는 상황으로 전개되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성주경도 의병 대열에 동참하여 오양선 의진에 가담하여 항일전을 펼쳤다.

오양선(吳良善)의 의병은 1908년 8월 충청남도 보령의 순사주재소를 기습 공격하여 군수품을 수합하는 등 홍성·보령·청양 일대에서 활동한 의진이었다. 성주경은 오양선의 의병이 해산한 후에도 활동을 지속하였다. 그러나 1909년 4월 동료 의병 14명과 함께 홍성에서 군자금을 모집하던 중 정보를 입수하고 출동한 일경과 교전 끝에 전사, 순국하였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1996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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