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의 이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800710
한자 全義 李氏
이칭/별칭 전의 이씨 효익공파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성씨/성씨
지역 충청남도 보령시 남포면
시대 조선/조선 후기,근대/개항기,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집필자 문광균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입향조 생년 시기/일시 1662년 - 이광조 출생
입향 시기/일시 17세기 말[추정] - 이광조 입향
입향조 몰년 시기/일시 1729년 - 이광조 사망
본관 전의 -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묘소|세장지 이광조 묘소 - 충청남도 서천군 비인면 남당리
성씨 시조 이도(李棹)
입향 시조 이광조(李光肇)

[정의]

이광조를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보령 지역의 이거 성씨.

[개설]

전의 이씨(全義 李氏)는 이도(李棹)[?~?]를 시조로 하고, 이광조(李光肇)[1662~1729]를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보령의 이거 성씨이다.

[연원]

전의(全義)는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에 자리하는 지명이다. 시조 이도(李棹)는 고려 통일 때 공을 세워 삼한개국익찬(三韓開國翊贊) 2등 공신 삼중대광태사(三重大匡太史)에 책록되었고 ‘전산후(全山侯)’에 봉해졌다. 공주 출신으로 왕건이 후백제를 정벌하고자 공주에 이르렀을 때 금강이 범람하여 멈추자 강을 건널 방법을 주도한 공으로 도(棹)라고 사명(賜名)[공이 있는 신하에게 임금이 이름을 지어 줌]하고 공신 책록과 봉작(封爵)까지 하였다고 한다. 전산(全山)은 전의의 옛 이름인데 이도는 전의의 이성산 이래로 세거하였으므로 후손들이 전의를 본관으로 하였다.

전의 이씨는 고려~조선 시대를 거치면서 우리나라 4대 화벌(華閥)[세상에 드러난 높은 문벌]로 불릴 정도로 번창한 가문이었다. 이후 이광조가 입향하게 되었다.

[입향 경위]

조식(曺植)의 외손자로 좌참찬(左參贊)까지 오른 명신(名臣)인 이준민(李俊民)은 시호가 효익(孝翼)이기 때문에 효익공파(孝翼公派)로 부른다. 이준민의 내손(來孫)인 이광조는 결혼 후 외가가 있는 보령 남포에 살면서 1689년(숙종 15)에 생원시에 급제한 후 산음현감(山陰縣監) 등을 역임하고 이후에 호조참판(戶曹參判)으로 증직(贈職)[죽은 뒤에 품계와 벼슬을 추증하던 일]되었다.

이광조의 후손들은 충청남도 보령군 남포현 봉덕리 대덕굴 등지에 세거하였고, 이후 봉덕리 대덕굴, 제석리, 비인 남당리 등에 선산을 마련하면서 보령 남포에서 터전을 마련하였다. 이후 여러 명의 장수와 명신들을 배출하면서 ‘남포장신가(藍浦將臣家) 인현장신가(仁賢將臣家)’로 불리었다.

[현황]

2015년 통계지리정보서비스 본관 인구 분포 조사에 따르면, 충청남도 보령시에 거주하는 전의 이씨는 247명인 것으로 파악되었다.

[관련 유적]

입향조 이광조의 묘소는 현재 충청남도 서천군 비인면 남당리에 자리하고 있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