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800869
한자 聖住寺址石階段
분야 종교/불교
유형 유적/유적(일반)
지역 충청남도 보령시 성주면 성주리 73
시대 고대/남북국 시대/통일 신라,고려/고려 전기
집필자 정성권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문화재 지정 일시 1984년 5월 17일연표보기 - 성주사지석계단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지정
현 소재지 보령 성주사지 - 충청남도 보령시 성주면 성주리 73 지도보기
성격 돌계단
소유자 보령시
관리자 보령시
문화재 지정 번호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40호

[정의]

충청남도 보령시 보령 성주사지의 금당지 앞에 있는 석조 계단.

[개설]

성주사지석계단(聖住寺址石階段)보령 성주사지의 금당(金堂)[절의 본당으로 본존불을 모신 건물] 터 정면으로 오르는 석조 계단이다. 1984년 5월 17일 충청남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었으나, 1986년 사자상이 조각되어 있던 석계단 소맷돌[계단옆막이 돌]이 도난당하였다. 도난당한 석계단 소맷돌이 있던 자리에는 옛 소맷돌을 모방하여 새롭게 만든 소맷돌이 복원되어 있다.

[위치]

성주사지석계단은 충청남도 보령 성주사지의 금당지(金堂址) 앞에 자리하고 있다.

[형태]

보령 성주사지 금당 터로 오르는 석계단은 지면부터 건물 기단부 상면까지 일곱 단의 계단이 조성되어 있다. 소맷돌은 두 번째 계단부터 다섯 번째 계단의 양 측면에 조성되어 있으며, 두 번째 계단 상면에 사자상이 조각되어 있다. 사자상은 뒷다리를 웅크리고 앉아 있는 형태이나 앞다리는 세우고 머리는 정면을 향한 모습이다.

사자는 두려움이 없고 모든 동물을 능히 조복(調伏)시키는 ‘백수(百獸)의 왕’이라는 관념이 불교의 발생 이전부터 있었다. 불교에서는 이러한 관념을 도입하여 부처를 사자에 비유해 ‘인중사자(人中獅子)’라고도 하였다. 『대지도론(大智度論)』 제4에서는 부처의 형상을 상반신의 위용과 단엄함이 사자와 같다고 묘사하거나 두 뺨이 사자와 같다고 언급하기도 한다. 부처의 앉은 자리를 사자좌(獅子座)라고도 하며, 부처의 설법을 사자후(獅子吼)라고 말하기도 한다. 또한 부처가 용맹정진하여 삼매(三昧)[하나의 대상에만 마음을 집중시켜 일심불란한 경지를 가리키는 불교 교리]에 든 것을 사자가 기운을 뻗는 용맹한 자세에 비유하여 사자분신삼매(師子奮迅三昧)라고도 한다.

불법을 수호하는 신비스런 동물로 인식된 사자상은 불교의 발생국인 인도에서 기원전 3세기경 아쇼카왕의 석주(石柱)에 표현되기 시작하여 이후 불상의 대좌(臺座)에도 나타나게 된다. 불교의 동점(東漸)과 함께 우리나라에도 불법의 수호자로서 사자상이 도입되어 불상의 대좌를 비롯하여 불탑, 석등, 승탑 등 불교와 관련된 다양한 석조물에 적극 활용되게 되었다.

보령 성주사지에서는 금당 주출입구 계단에 석계단이 설치되고, 계단 양측면에 소맷돌을 만든 후 소맷돌 하단에 각 1기씩 총 2구의 석사자를 조각해 놓았다.

[의의와 평가]

불교가 우리나라에 전래된 이래 불법을 수호하는 상징적 의미가 있는 사자는 불교 관련 다양한 유적과 유물에 만들어졌다. 그러나 보령 성주사지와 같이 금당의 정면을 지키는 모습으로 석계단에 사용되고 있는 사례는 많지 않다는 점에서 성주사지석계단의 의의가 있다. 석계단 소맷돌의 석사자는 볼륨감이 발달한 통일 신라 사자상보다 상대적으로 단순하게 처리된 점으로 보아, 보령 성주사지 오층석탑(保寧 聖住寺址 五層石塔), 성주사지석등(聖住寺址石燈)과 같이 통일 신라 말에서 고려 초기 사이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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