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룡사 절터」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801200
한자 九龍寺-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충청남도 보령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근대/개항기
집필자 이현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수록|간행 시기/일시 1971년 - 「구룡사 절터」『보령군지』에 수록
관련 지명 단원사 - 충청남도 보령시 웅천읍 만수로 582-11[수부리 산16-6]지도보기
성격 설화|지명 유래담
주요 등장 인물
모티프 유형 창사연기(創寺緣起)

[정의]

충청남도 보령시에서 전승되는 구룡사 절터의 유래와 관련한 이야기.

[개설]

「구룡사 절터」는 사찰명의 유래에 관한 이야기로, 아홉 마리 용의 출현이라는 상서로운 조짐에 의해 절의 터를 마련하고, 절의 이름도 지었다는 사찰 연기(緣起) 설화이다.

[채록/수집 상황]

「구룡사 절터」는 1971년 보령군지편찬위원회에서 발행한 『보령군지』에 수록되어 이를 토대로 기술하였다.

[내용]

구룡사성주사(聖住寺)로 불린 남북국 시대 통일신라 구산(九山)의 하나로 손꼽히는 큰 사찰의 별칭이었다. 그러나 성주사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 당시 이 성주천은 물이 깊었는데, 이 절터 부근은 둠벙[웅덩이]이 아홉 개가 있었다. 둠벙마다 용이 있으므로 이를 ‘구룡천’이라 이름하였고, 사찰명도 ‘구룡사’라 하였다.

[모티프 분석]

「구룡사 절터」의 주요 모티프는 ‘창사 연기(創寺緣起)’이다. 임진왜란 때 불타버렸다는 역사적 사실을 통해 사실성을 입증하면서 전승되고 있다.

「구룡사 절터」는 지금의 단원사(團員寺)를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단원사는 충청남도 보령시 웅천읍 만수로 582-11[수부리 산16-6]에 있으며, 범일국사(梵日國師)가 창건하여 1937년에 사찰로 중창하였다고 전한다. 후에 ‘영수암’으로 고쳤다가 다시 ‘단원사’로 바꾸었는데, 구룡사 아래에 있는 사찰이 지금의 단원사를 이른다. 이러한 사찰 연기 설화는 사찰과 관련한 이야기를 총칭하는 것으로, 「구룡사 절터」와 같이 사찰의 터를 잡게 된 유래나 이름을 짓게 된 유래가 포함된다. 특히, 보령시에서 전승되는 「구룡사 절터」는 용의 출현으로 사찰 건축에 신성성을 부여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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