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구의 작품세계와 보령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801295
한자 李文求-作品世界-保寧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기획)
지역 충청남도 보령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조상우

[정의]

충청남도 보령시 출신의 소설가.

[개설]

이문구(李文求)는 1941년 충청남도 보령군 대천면 대천리 관촌(冠村)[현 충청남도 보령시 대천2동의 옛 이름]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군 서기와 등기소 서기를 지내고 향리에서 사법 서사로 일했기에 어린 시절은 비교적 풍요롭게 보낸다. 그러나 이문구의 나이 아홉 살 때 6·25전쟁을 겪으며 집안은 몰락하였다.

남조선노동당[남로당] 보령군 총책이던 아버지로 인해 둘째 형과 셋째 형도 아버지와 같은 혐의를 받고 대천 앞바다에서 산 채로 수장된다. 6·25전쟁이 끝난 3년 뒤인 1956년에는 어머니마저 여읜다. 이문구는 어린 나이에 고아가 되고 집안을 건사해야만 했다. 이문구는 고향에서 중학교를 졸업하고 1959년 서울로 상경하여 건어물 행상, 도로 공사장 잡역부 등을 하며 생계를 어렵게 이어갔다.

작가의 꿈을 가지고 있던 이문구는 1961년 서라벌예술대학 문예창작과에 입학하였다. 당시 서라벌예술대학에는 김동리, 서정주, 박목월, 조연현, 김구용 등 일급 문사들이 강의하였고, 이문구와 함께 동문수학한 이들은 박상륭, 한승원, 조세희, 이건청 등이다. 서라벌예술대학을 졸업할 즈음 해인사의 한 암자에서 칩거하며 단편 13편을 습작할 만큼 작품을 쓰고자 하는 의지가 강하였다. 그러나 이 작품들을 지면에 공개하지는 않았다.

[대천에 대한 향수를 지닌 작품들]

이문구는 대학을 졸업한 후 1965년 9월 김동리의 추천으로 『현대문학』에 ‘연묘’라는 여승의 환속을 그린 단편 「다갈라 불망비(不忘碑)」를 발표하였다. 1966년 『현대문학』 7월호에 단편 「백결(百結)」을 발표하면서 소설가의 길에 접어들었다. 1967년 단편 「생존 허가원」, 「지혈(地血)」, 「부동행(不動行)」을 발표하는데, 자신이 상경하여 겪은 여러 가지 일들을 소설의 소재로 활용하는 등 주로 하층민의 삶을 소재로 하였다.

1968년부터 1975년까지 여러 작품을 발표하면서도 『월간문학』, 『한국문학』 창간에 협력하고 편집장으로 일을 수행하였다. 1972년 『현대문학』에 고향인 충청남도 대천을 작품 배경으로 한 『관촌수필』 연작의 첫 작품인 「일락서산(日落西山)」을 발표하였다. 1973년에는 『관촌수필』 연작인 「화무십일(花無十日)」, 「행운유수(行雲流水)」, 「녹수청산(綠水靑山)」, 「공산토월(空山吐月)」을 연이어 발표하였다. 1976년에는 『관촌수필』 연작인 「관산추정(關山芻丁)」, 「여요주서(麗謠註序)」, 「월곡후야(月谷後野)」를 발표하였다.

1972년부터 1977년까지 발표한 8편의 단편소설을 묶어서 1977년에 장편 『관촌수필』을 출간하였다. 『관촌수필』 연작 중 「일락서산」과 「공산토월」은 작가가 대천에서 보낸 6·25전쟁 시기의 유년 시절을, 「관산추정」은 유년 시절의 고향 친구를 만난 이야기, 「여요주서」와 「월곡후야」는 성인이 되어 고향 대천을 찾은 이야기 등이 주 서사이다.

[『관촌수필』 및「우리동네」연작으로 본 대천]

『관촌수필』이문구의 자서전과 같은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유년기에서부터 성인이 되어서까지 자신이 살아온 과정을 고스란히 작품에 담고 있다. 어찌 보면 ‘성장기 소설’이라 지칭할 수도 있다. 이와 같은 소설에서 자주 나타나는 소재는 전쟁과 근대화이다.

이문구는 관촌에서 태어나고 자라면서 어릴 때부터 보아왔던 마을 공동체의 관습과 이 관습이 변해가는 과정을 목도하였다. 그렇다 보니 이와 관련한 향수가 작품 전체에 깔려 있다. 특히 어린 시절 고향인 대천에서 겪은 6·25전쟁은 가족이 몰살되는 등의 아픔을 겪는 큰 트라우마였기에 고향에 대한 기억이 좋지 않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문구『관촌수필』 연작에서 보여주는 주된 관점은 ‘고향 복원과 상실감 회복’이었다. 이문구는 고향에서 느낀 전쟁과 이념의 대립, 근대화로 인한 자본주의의 잠식 등을 농촌이 가진 어려움으로 여겼다. 그리하여 농민 소설 작가답게 농촌 사회가 지니고 있던 공동체적 속성과 이곳에서 터전을 잡고 있는 농민들의 삶에 관심을 더 가져 『관촌수필』에서 이러한 점을 표현하였다. 그런데 일부 평론가들은 『관촌수필』에는 어린 시절에 얽힌 서사가 많아 이문구 소설에서는 현실 의식이 결여되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이러한 평가로 인하여 이문구는 농촌에 대한 문제점을 파헤치기 시작하는 데 몰두하였다. 그 작품이 바로 1972년에 발표한 「해벽」이다. 「해벽」은 농촌과 어촌을 아우르는 염전 마을을 주 배경으로 한다. 이문구는 정치 세력을 등에 업은 기업과 그들에게 삶을 짓밟히고 있는 농민들의 힘든 삶을 진솔하게 드러내고 있다.

『관촌수필』은 분량에서나 농촌에 대한 문제 의식에서 아주 뛰어난 작품이라 평가할 수 있다. 더 중요한 것은 작가의 고향인 충청남도 보령군 대천면 대천리 관촌을 세상 사람들이 다 알도록 한 것에 있다. 아주 작은 마을인 ‘관촌’에서 벌어진 이야기를 중심으로 대작(大作)을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당시 농촌의 상황을 제대로 표현하였고, 독자들에게 공감을 얻었기 때문이다.

이문구『관촌수필』과 비슷한 연작을 1977년부터 발표하였는데, 그것이 「우리동네」 연작이다. 『관촌수필』에서 농촌은 자신이 지켜야 할 대상이면서 외부 자본이 진입하는 것을 막으려는 의식만 가지고 있었다면, 「우리동네」 연작에서는 당시 농촌의 현실을 넋 놓고 바라볼 수만은 없었기에 농촌의 힘든 상황을 극복하고 농민이 건강하게 삶을 영위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이문구는 농촌에 대해서 ‘황폐하고 몰인정하며, 근대화의 희생양, 도시 자본주의의 수탈 대상’으로 생각이 바뀌어 가고 있었다.

이문구『관촌수필』, 「우리동네」 연작 발표에 이어 진문출판사에서 산문집 『아픈 사랑 이야기』, 열화당에서 중편집 『엉겅퀴 잎새』, 한진출판사에서 단편집 『으악새 우는 사연』 등을 출간하였다.

[이문구 문학의 관심 및 평가]

이문구는 상복도 많았던 작가이기도 하다. 1978년 「우리 동네 이씨」로 제5회 한국 문학 작가상, 1990년 여름 창작과비평사에서 장편 『산 너머 남촌』을 출간하면서 제7회 요산 문학상, 1991년에는 「장곡리 고욤나무」로 제9회 흙의 문예상, 『산 너머 남촌』으로 제15회 펜 문학상, 1992년 장편소설 『매월당 김시습』을 출간하여 제1회 서라벌 문학상, 1993년 창작집 『유자 소전』으로 제8회 만해 문학상, 농민 문학에 힘쓴 공로로 제4회 농민 문화상을 각각 받았다.

주로 1990년대 이후에 많은 상을 받았는데, 이는 그동안 축적된 작가의 역량을 뒤늦게 알아보았기 때문이다. 특히 『관촌수필』 연작이 SBS TV 창립 기념 작품으로 선정되어 30부작 드라마로 제작 방송되면서 시청자들의 인기를 많이 받았다.

결국 이문구는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관촌을 중심으로 하는 『관촌수필』을 출간하였으며, 평생 농민문학에 관심을 두고 농촌과 농민의 삶이 나아지기 위해 노력한 공이 아주 크다고 할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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