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령의 청정바다에서 전복과 해삼을 잡는 해녀와 해녀배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801297
한자 保寧-淸淨-全鰒-海蔘-海女-海女-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기획)
지역 충청남도 보령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효경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45년 - 충청남도 보령 지역 외연도에서 해녀배 사업 첫 시작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60년 - 충청남도 보령 지역 호도에서 해녀배 사업 첫 시작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70년 - 충청남도 보령 지역 장고도에서 해녀배 사업 첫 시작

[정의]

충청남도 보령 지역 도서 및 해안 지역에서 어선을 소유한 선주나 어촌계가 제주 해녀를 고용해 바위에 붙은 해삼과 전복 등의 해산물을 채취하는 어업 활동.

[해녀배 사업의 시작과 어장의 형성]

개항 이후 해산물이 상품화되면서 그 가치가 높아지자 새로운 소득원을 찾아 제주 해녀들이 대규모 출륙하기 시작하였다. 이들이 채취한 해조류는 부산과 목포를 통해 일본으로 수출되었다.

1945년에 보령 지역 외연열도 중 녹도와 어청도의 어장에서 나잠어업[물속에 잠수하여 간단한 어구로 수산물을 채포하는 어업]을 시작했으나. 이보다 이른 시기인 1917년에 태안 안흥에 거주하는 어민이 먼저 나잠어업을 시작하였다. 육지 인근에서 시작된 해녀배는 점차 육지와 멀리 떨어진 이들 섬으로 확산되었다. 외연도, 녹도, 호도, 장고도, 삽시도 등의 섬 주변은 여(礖)[썰물 때는 바다 위에 드러나고, 밀물 때는 바다에 잠기는 바위]가 많아 전복, 해삼, 성게 등이 서식할 수 있는 최적의 생태환경이기 때문이다.

제주도에서 출가한 수십 명의 해녀들이 호도녹도에서 생활하며 물질을 하였다. 이들로부터 물질을 배운 섬마다 자생 해녀가 늘면서 협업관계를 이루었다. 제주도에서 출가한 해녀들은 외연열도와 장고도 등지에서 지금까지 나잠어업에 종사하고 있다. 한국전쟁이 끝난 이후 해녀배 사업이 급속히 확산되었다.

보령 앞바다에서 개인 양식장 허가를 처음으로 받은 이는 대천에 거주하는 정마수이며, 그 후로 양식장이 점차 확산되어 목이 좋은 어장의 사적 점유가 시작되었다. 1980년대 전체 면적의 60%가 개인 양식장화되었을 정도로 급속도로 확산되었다. 개인 면허 기간은 1차 10년이라는 제한을 두었으나, 양식하기 좋은 곳은 개인이 사점(私占)하였기에 다른 주민들의 불만이 컸다. 양식장 면허가 만료되면서 개인이 아닌 어촌계가 우선적으로 면허를 발급받아 공동어장으로 사용하기에 이르렀다.

보령시 도서지역 해녀배 어장은 청정해역으로 해삼, 전복, 성게, 오분자기 등이 풍부해 어획고가 높다.

[전복바리와 해삼바리]

제주 해녀는 봄과 가을에 전복바리를 하러 보령으로 온다. 전복바리는 3월 20일 전후에 시작하여 4월 말까지 한다. 5~6월에는 잠수기를 동원해 해삼바리를 하고, 해삼은 바닷물이 뜨거워지면 바위 속으로 숨기에 미리 잡는다. 7~8월에는 전복의 산란기이므로 금어기이다. 8월부터 10월까지 전복바리를 다시 시작하는데, 제주 해녀 사이에는 “명절은 고향에서 쇠어야 한다.”는 관념이 있기에 추석 이전에 작업을 마무리 짓는다. 남은 지역 해녀는 제주 해녀들이 떠난 바다에서 겨울이 오기까지 물질을 한다.

섬 주변에서 조업하는 전복바리는 보름 한 사리에 10일 정도 작업하는데, 물의 흐름이 약해 물밑이 맑은 조금[조수가 가장 낮은 때를 말하며, 매월 7, 8일과 22, 23일경 해당]이 최적기이다. 조류의 흐름이 빠른 사리 5일 동안은 물질을 하지 못한다. 육지에 인접한 섬이나 포구의 해녀들은 조수의 영향을 덜 받기에 사리 기간에 조업하는데, 물살의 영향을 덜 받으며 사리로 인해 물이 많이 빠지므로 오히려 조업에 유리하다.

오전 7시 즈음에 어장으로 나아가 3~4시간 정도 작업한다. 긴 칼과 같이 생긴 전복 따는 도구인 빗창을 바위 틈에 찔러 넣어 바위에 붙은 전복을 떼어 낸다. 이때 상처가 나지 않도록 주의한다. 상처를 입으면 전복이 죽어 상품성이 떨어진다.

해녀들은 전복을 딸 때 곰옷을 입고, 수경을 쓰고, 오리발을 찬다. 채취한 해산물을 담는 전복용 빗창과 전복의 크기를 재는 자 등을 가지고 바다로 간다. 해녀는 물질 능력에 따라 상군, 중군, 하군으로 나눈다. 곰옷 위에 물옷을 입고 물속으로 자맥질하여 물속으로 들어가 전복을 찾는다. 따낸 전복은 물옷 안에 넣으며, 물옷 안이 가득차면 물 위로 올라온다.

해녀가 채취하는 해산물 중 가장 값이 나가는 것은 전복이었다. 남부 지역에서 양식하는 전복으로 값이 하락했고, 바다 오염과 남획으로 인해 생산량이 줄었다. 중국으로 해삼을 수출하게 되면서 해삼 값이 치솟아 전복보다 해삼 채취에 열중하고 있다. 각 섬별로 채취하는 전복의 크기가 다르다. 수심이 깊은 원해에 위치한 외연도에는 9㎝, 녹도는 8.5㎝, 안쪽 내해는 8㎝로, 수심이 깊을수록 크고 좋은 상품성을 지닌다.

해녀는 어족자원 보호와 상품성 확보를 위해 전복자를 가지고 다니며, 전복의 크기에 미치지 못하는 것은 채취하지 않고 있다. 하루에 채포하는 전복은 해녀 1인당 2~6㎏으로 차이가 크다. 하루하루 채취한 분량을 작업일지에 적어 훗날 할당을 받는다.

해삼은 최근 서해안에서 고수익의 대표적인 해산물로 부각되고 있다. 1990년대까지 해삼은 국내에서 수요와 판로가 없어 고가의 가격이 책정되지 않았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이후 국내에는 해삼이 고급 식재료라는 인식이 확산되었고, 국외에서는 경제적으로 급성장한 중국의 해삼 수요가 늘어 고가로 거래되기 시작하였다. 해삼의 최고 생산지는 장고도와 외연열도이다. 장고도는 수심이 얕지만 바닷속에 암초와 바위너덜이 넓게 펼쳐 있어 천혜의 해삼과 전복 고지이다. 이들 지역에서 채취한 해삼의 95% 전량이 중국으로 수출되고 있다.

해삼바리는 지방 해녀와 제주 해녀, 심지어는 잠수부를 동원해 작업을 한다. 해마다 사정은 약간 다르나 외연도에는 지역 해녀 10명과 제주 해녀 7명이 참여하고, 호도는 제주에서 시집와서 지방 해녀가 된 25명이 참여한다. 장고도에서는 모두 제주 해녀가 작업한다.

해삼 작업은 어촌계와 계약을 맺고 일을 하는데, 과거에는 구두로 계약을 한 후 일정액의 선도금만을 받고 작업하였다. 간혹 안전사고가 발생하고, 작업을 하다가 일을 그만두는 일이 발생한 뒤로는 고용계약을 맺고 있다. 해삼바리는 해녀와 어촌계가 어획량의 6:4[외연도]나 5.6:4.4[장고도]로 나눈다. 과거에는 숙소를 제공했으나 지금은 해녀가 숙박료와 식비를 모두 지급한다. 2달 동안 해삼을 채취해야 하므로 해녀들이 하루에 2번 물질을 하기도 했지만 체력 소진이 많이 되므로, 1992년부터는 잠수기선을 동원하기도 한다. 평소에는 키조개를 채취하다가 해삼바리 기간에만 해삼 채취를 하고 있다.

해삼바리는 전복바리와 달리 작업이 고되다. 해삼은 해저에 서식하므로 깊이 잠수해야 한다. 전복은 2~3m를 잠수하지만, 해삼은 4~5m를 잠수해야 한다. 물살이 약한 조금 때가 최적기이며. 물밑 사정이 좋지 않은 봄철에는 채취가 어렵다. 풍랑이 세면 해삼이 돌 틈으로 들어가 채취가 불가능하므로 날씨가 좋지 않으면 작업을 하지 않는다. 해삼은 13㎝ 이상만을 채취한다. 해삼은 눈에 띄면 손으로 집어 올려 웃옷이나 망사리에 담아둔다.

전복바리나 해삼바리를 할 때에 생리를 하는 여인은 피냄새를 맡지 못하도록 마늘이나 건전지를 쌈지에 담아 고무옷 허리에 끼워 둔다. 예전에 상어의 공격을 받아 사망하는 사건도 발생하였기에 항상 주의를 한다.

[섬에서 활약하는 제주 해녀와 지방해녀 이야기]

1. 외연열도의 해녀 출륙과 해녀배

나잠어업에 종사하는 제주 해녀는 배를 타고 목포까지 온 후 그곳부터는 기차를 이용해 대천으로 온다. 선주는 대천까지 해녀를 마중 나간다. 초기에 외연열도로 물질하러 온 해녀는 경험이 많지 않은 18~20세의 큰 애기들이었다. 이들은 6개월 동안 먹을 식량과 된장, 간장을 직접 가져왔다. 한 척의 배에 10~12명의 해녀가 함께 물질을 했으며, 노를 저을 사공만 별도로 두었다. 초기에는 풍선[風船]으로 해녀배를 삼았었는데, 그 시기에는 다들 함께 고생하였다. 선주가 방을 얻어만 주었고, 해녀들 스스로 식사를 해결하였다. 채취한 해산물은 선주가 6할을 갖고, 해녀에게 4할을 주었다.

외연도에서 면허를 얻은 양식장은 약 240㏊로, 이중 99%가 어촌계 소유의 공동어장이다. 어촌계에서 공동어장으로 관리하기 시작하면서 개인 양식장 단위로 이루어지던 해녀배 사업은 중단되었다. 개인 사업가들을 어촌계가 고용해 나잠어업에 참여하고 있다. 현재 어촌계에서는 4.5톤급 해녀배와 항해를 전담할 선장 1인을 두고 나잠어업을 운영하고 있다. 나잠어업으로 올린 수익금은 해녀와 어촌계가 4:6으로 나누고, 해녀는 1인당 3,000~6,000만 원 정도를 번다. 이 수익금은 직원의 인건비와 관리비를 제외하고 어촌계원들에게 골고루 분배한다.

해녀들은 외연도를 ‘올켠도’라고도 부른다. 일단 섬에 들어온 해녀는 밖으로 나갈 수가 없었다. 과거에는 해녀가 작업하다 도망칠까 하여 장배에 태워주지 않은 이유로 작업을 마칠 때까지는 꼼짝없이 외연도에 있어야 하였다. 당시 섬은 형편이 여유롭지 않아 혼인식을 치르지 못하고 혼인신고만 하고 사는 경우가 흔하였다. 혼인식을 하지 않으면 정식 부부로 인정을 받지 못해 상복을 입을 수도 없었기에, 부모가 돌아가시게 되면 상여를 꾸며 놓고, 그 옆에 초례상을 차린 후 예식을 올렸다고 한다.

2. 장고도의 해녀 출륙과 해녀배

장고도에서는 1970년대에 해녀배 사업을 시작하였다. 개인이 사업을 시작했으나, 1989년에 마을 공동사업으로 전환되었다. 장고도 주변의 얕은 수심 속의 암반지대는 인근에서도 알아주는 해삼과 전복 산지이다. 큰 바위가 넓게 펼쳐져 있고, 모래, 뻘, 화석암, 잔작 등이 어우러져 있어 해삼 서식에 적합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과거에는 전복의 가격이 좋았으나 지금은 해삼의 가격이 전복보다 비싸다. 해삼을 건조해 건해삼의 형태로 전량 중국으로 수출한다. 해삼 판매액은 어촌계원이 동일한 비율로 나누고, 전복 판매한 금액은 마을기금으로 운영 중이다.

어촌계장이 직접 제주도로 출장을 가서 해녀를 선별해 데려온다. 수고비는 전체 채취 작업 일수, 해삼·전복 단가를 감안하여 일정 지분을 나누어 주었다. 어촌계에서는 자원조성비로는 종패를 사다가 바다에 넣어 전복 생산량을 높이기 위해 노력 중이다. 해녀들은 보통 날이 풀리는 4월에 왔으나 근래에는 5월 1일부터 작업을 시작해 6월 30일에 작업을 끝낸다. 작업 시작 시간을 늦춘 것은 해삼이 자라는 시간을 더 두기 위함이다. 채취하는 어업에서 기르는 어업을 하자는 의견에 따라 작업 시간을 늦춘 것이다.

3. 호도의 제주 해녀 출륙과 해녀배

호도에는 1960년대부터 제주도 출신 해녀를 불러서 해삼과 전복을 채취하였다. 1960년대 이후 호도 어촌계는 약 150ha의 양식장에서 해삼과 전복을 키우고 있다. 해삼과 전복을 채취하는 해녀가 23명으로, 이들은 모두 지역 해녀로 불린다. 그 이유는 외지에서 온 해녀가 호도 남자와 혼인해 사는 비중이 높기 때문이다. 제주인만 16명이고, 그 이외에도 타지인이 많다. 현재 40대~70대인 제주 해녀는 어려서 물질을 하러 왔다가 혼인해서 섬에 정착하였다.

제주도에서 출륙한 해녀가 많았던 이유는 제주도의 사정과 관련 깊다. 한때 제주도에는 여자가 배를 타면 부정하다는 미신 때문에 배를 탈 수 없었다. 유일한 돈벌이를 수단이 물질이었기에 해산물이 풍성한 바다를 찾아 이동하였다. 당시 제주도에서는 일본의 통통배와 잠수기가 작업을 했기에 해녀들은 일을 찾아 원정을 떠나야만 하였다. 제주 해녀는 “아이를 낳고 삼일 후면 몸조리할 겨를도 없이 바다로 뛰어든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바쁜 일상을 보내었다.

호도 어촌계 소속 해녀들의 물질 작업은 5~6월에는 해삼을, 추석 쯤에는 전복 채취를 하고, 나머지 달은 휴업을 한다. 휴업 기간 동안 해녀들은 불가사리, 성게 등을 어장을 돌며 제거하는 어장 가꾸기를 하고, 마을 어장을 가꾸며 물질 준비를 한다. 작업할 때 식비는 해녀끼리 추념한다. 해녀의 작업 일수가 평균 1년에 65~70일인데, 이중 해삼이 45~50일, 전복이 15일 정도로 짧다. 수익은 어촌계와 해녀가 5:5로 나눈다.

실력이 좋은 해녀들은 해삼 수확 기간에는 최대 40~50㎏을 수확한다. 해녀들은 “두세 달 동안 물질에 나서 얻은 수익으로 1년을 생활한다. 과거에는 물때 시간이 맞을 때마다 물질을 했으나 지금은 먹고살자고 하는 일인데 몸부터 챙기자.”라며 정한 기간에만 물질을 하고 있다. 그런 이유로 호도의 해산물은 튼실하고 싱싱해 상품성이 뛰어나다는 평을 받고 있다

[해녀배 신앙과 그들의 미래]

나잠어업을 시작하는 4월 중 용날(辰日)을 택해 해녀배의 안전 운항과 풍어를 기원하는 마음에서 뱃고사를 지낸다. 어촌계장, 해녀배 선장, 어촌계 임원, 물질에 나서는 해녀들이 목욕재계하고 정갈한 마음으로 제사에 임한다. 외연도에서는 포구 앞쪽 ‘고라금’에서 조수가 밀려 드는 정오 무렵에 뱃머리에 쇠머리, 떡, 삼색실과, 메, 어물, 나물, 술 등을 제물 삼아 지낸다. 해녀 뱃고사는 참석자 이외의 참여를 허락하지 않는다.

어촌계장과 선장이 바다를 주관하는 용왕에게 절을 올린 다음 소지를 불사르며 안전사고가 일어나지 않고 해산물을 많이 채취할 수 있게 도와 달라고 정성을 다해 빈다.

1960년대 이후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한 제주 해녀의 활약으로 청정해역 보령시 도서 지역의 해삼과 전복 채취가 활성화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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