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000174 |
---|---|
한자 | 牛浦里 |
영어공식명칭 | Upo-ri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전라북도 부안군 줄포면 우포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용범 |
[정의]
전라북도 부안군 줄포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마을의 형국이 소가 누워 있는 모양이라 소왓개[우포(牛浦)]라고 이름하였다. 옹암(瓮岩)마을 뒷산 바위틈에서 솟는 물이 위장병, 장 질환, 피부병 등에 효험이 좋은 신비의 약수로 유명하였고, 바위 위에 올라 발을 구르면 마치 바위 속이 비어 있는 듯 빈 독[항아리] 두드릴 때 나는 소리가 난다 하여 독바위[옴암]라고 이름하였다.
[형성 및 변천]
1914년 이전에는 부안군 건선면 지역이었다.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건선면의 우동리, 우중리, 해사리, 선양리, 감역리, 옹암리, 동령리, 원동리의 일부를 병합하고 건선면 우포리로 개설하였다. 1931년 7월 건선면을 줄포면으로 개칭하였다.
[자연환경]
줄포면 소재지 남쪽에 자리하여 서쪽으로 바다와 접한다.
[현황]
우포리의 북쪽과 동쪽은 줄포면의 줄포리와 신리, 남쪽은 고창군 흥덕면 신덕리, 서쪽은 황해와 접한다. 2020년 12월 31일 현재 면적은 3.75㎢이며, 옹암리·선양리(先陽里)·감동리(甘東里)·감역리(甘役里)의 4개 행정리에 125가구, 197명[남 91명/여 106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옹암마을은 줄포 시내 남쪽에 자리하며, 줄포-후포-흥덕 간 지방도로는 예전 삼양사 줄포 농장 매갈이간[매갈잇간]과 줄포자동차공업고등학교[옛 수당초등학교 자리] 지점에서 시작된다. 1920년대 중반 삼양사 줄포 농장 매갈이간이 들어서며 줄포항과 함께 번성을 누렸다. 삼양사 줄포 농장 매갈이간은 삼양사의 창업주 수당(秀堂) 김연수(金秊洙)가 1926년 설립한 정미소였다. 삼양사 줄포 농장 매갈이간은 당시로서는 규모가 웅장하여 가을이면 매갈이간 위아래 마당에 집채보다 큰 노적가리가 빽빽이 들어찼고, 100여 명의 지정 인부를 포함하여 300여 명의 인부들이 일을 하였다. 쌀을 선적하여 일본으로 실어 가고, 또 일본에서 들어오는 상품을 하역하는 노동자, 거기에 더하여 고깃배에서 생선을 푸는 노동자와 또 삼양사 줄포 농장 매갈이간 말고도 줄포에는 소규모 매갈이간이 더 있었는데, 이 때문에 “전라북도에서 돈을 잡으려면 줄포로 가라.”는 말이 유행했을 정도로 사람들로 붐볐다. 현재 줄포 일원, 특히 옹암마을 등지에는 이 무렵 고창, 정읍 증지에서 이거하여 뿌리를 내린 세대들이 다수를 점한다.
삼양사 줄포 농장 매갈이간은 소작료로 받은 벼 외에도 인근에서 사들인 벼를 찧어 일본으로 수출하였다. 곡물 검사소의 엄격한 검사를 거쳐 1등미, 2등미 등으로 구분하여 군산항의 모선에 실어 보내기도 하고, 발동선으로 직접 일본까지 실어 가기도 하였고, 돌아올 때는 각종 물품을 싣고 왔다. 곡물 검사소, 조선식산은행 줄포출장소는 바로 이 삼양사 줄포 농장 매갈이간으로 인해 존재했던 기관들이다.[김장순, 『내 고향 줄포』 참조]
김연수가 1963년 학교 부지의 일부[5,093㎡]를 기증하여 1963년 교사를 신축하고 1964년 3월 16일 줄포국민학교 분실로 인가받았으며, 1966년 11월 15일 수당국민학교로 인가를 받았다. 그러나 수당국민학교는 농촌 인구의 감소로 1990년 2월 28일 부안 지역에서 가장 먼저 폐교되고 그 자리에 줄포자동차공업고등학교가 이전하여 오늘에 이른다.
선양마을은 옹암마을 남쪽에 자리하며 서남으로 줄포만, 동남으로 감동마을과 접한다. 바다와 접한 마을이지만 갯살림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간척한 농경지에서 농사를 짓고 야산을 개발하는 등 전형적인 농촌 마을의 모습을 띤다.
감동마을과 감역마을은 줄포-후포 간 지방도를 2.5㎞ 지점, 선양마을 동편에 이웃한 마을이다. 감역마을은 원래 감동마을과 한 마을이었으나 인구가 늘면서 1964년 두 마을로 분리되었는데 지금도 마을의 공동 사업이나 당산제 등은 함께한다. 얼마 전까지도 감동마을 중앙의 노거수 느티나무를 신목으로 받들며 정월 보름이면 온 마을 사람들이 정성을 다하여 당산제를 지내며 안과태평(安過太平)과 풍농제액(豐農除厄)을 빌었다. 현재 당산나무는 없다. 두 마을 주민들 모두 벼농사를 지으며 야산 지대 토질 좋은 황토밭에서 수박, 땅콩, 참깨, 배추, 무 등을 재배한다. 상당수의 농가에서는 축산업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