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00058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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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寧金氏 |
영어공식명칭 | Gimnyeong Kimssi|Gimnyeong Kim Clan |
이칭/별칭 | 금녕 김씨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전라북도 부안군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동희 |
[정의]
김시흥을 시조로 하고, 김영년(金永年)·김헌기(金憲基)·김광옥(金光玉)·김노순(金魯淳)·김제만(金濟萬)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북도 부안군의 세거 성씨.
[연원]
김녕 김씨(金寜金氏)의 시조는 문열공(文烈公) 김시흥(金時興)이다. 김시흥은 신라 경순왕(敬順王)의 아들 김은열(金殷說)의 현손 김봉기(金鳳麒)의 넷째 아들이다. 고려 인종(仁宗) 때 묘청(妙淸)의 난을 평정한 공으로 금주군(金州君)에 봉하여졌고, 명종(明宗) 때는 조위총(趙位寵)의 난에 공을 세워 김녕군(金寧君)에 봉하여져 후손들이 조선 헌종(憲宗) 때부터 김녕을 관향으로 삼고 세계를 잇는다. 김녕은 경상남도 김해의 옛 지명이다. 고려 후기 ‘김녕’이 ‘김해’로 바뀌면서 김해 김씨와 혼돈을 하여 김해 김씨는 선김, 김녕 김씨는 후김으로 구분하였다.
[입향 경위]
조선 세조(世祖) 때 단종 복위 운동(端宗復位運動)을 펼치다가 사육신과 함께 순절한 백촌(白村) 김문기(金文起)의 후손 겁암(㤼岩) 김영년(金永年)이 충청도 옥천에서 미혼 때 부안으로 들어와 학문을 닦았다. 김영년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켰으며, 정유재란 때 부안 호벌치에서 왜적을 막다가 아들과 함께 순절하였다. 호벌치에 전적비가 세워져 있다. 김영년의 후손이 줄포면 줄포리와 파산리, 보안면 상입석리 등에서 살고 있다. 역시 김문기의 후손으로 한성 좌윤 김제만(金濟萬)이 충청도 연산에서 부안으로 들어왔고, 그 후손이 하서면 청호리에 세거하였다.
영광 군수를 지낸 김대영(金大榮)의 후손 김헌기(金憲基)는 조선 후기 순창에서 부안으로 들어왔으며, 그 후손이 보안면 회룡리에 세거하였다. 김광옥(金光玉)은 충청도에서 부안으로 들어와 그 후손이 줄포면 줄포리 장성마을에서 세거하였다. 임진왜란 때 공을 세우고 선무원종공신에 책봉된 김윤성(金潤成)의 후손 김노순(金魯淳)은 장성에서 부안으로 들어와 그 후손이 줄포면 대동리에서 살았다.
[현황]
2015년 인구 주택 총조사에 따르면 부안군에는 김녕 김씨 279명이 살고 있다. 1991년 발간된 『부안군지』에는 주산면, 행안면, 상서면, 줄포면 등지에 김녕 김씨가 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