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6011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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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廉克髦 |
영어음역 | Yeom Geukmo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기도 부천시 |
시대 | 고려/고려 후기 |
집필자 | 강옥엽 |
[정의]
고려 후기 부천 지역에서 활동한 문신.
[가계]
본관은 봉성(峰城). 할아버지는 태부소경(太府少卿) 염덕방(廉德方)이며, 아버지는 예부상서 염신약(廉信若)이다. 병부원외랑 김황백(金黃白)의 딸과 결혼하여 3남 1녀를 두었다. 두 아들은 일찍 죽었으나 막내아들 염후(廉珝)는 문학으로써 과거에 좋은 성적으로 합격하였다. 딸은 내시이며 급제한 소정주(邵廷冑)에게 시집보냈다.
[활동사항]
염극모(廉克髦)[1153~1217]는 1174년(명종 5) 문음으로 벼슬길에 나갔다. 벼슬에 나간 처음부터 중앙과 지방을 드나들면서 부지런하여 게으른 기색이 없었으며, 결백하고 청렴하여 사람들이 모두 그를 칭찬했다. 삼척과 송림(松林)의 현위, 성불도감판관, 장생령, 예빈주부, 합문지후 등을 지냈다.
1198년(신종 1) 호부원외랑, 1205년(희종 1) 예빈소경으로 나주에 출보(出補)하였다가 파직되었다. 그 뒤 좌사낭중으로 다시 발탁되고 태부시와 위위시의 소경을 거쳐 계양부(桂陽府)의 수령을 지냈으며, 고종 때 공부와 호부의 시랑을 지냈다. 여러 차례 좌천당하는 일을 자못 비통해하고 술을 많이 마시다가 병이 들어 죽었다.
[묘소]
국립중앙박물관에 1217년(고종 4)에 작성된 그의 묘지석이 있다. 묘지명을 보면 안남대도호부부사 병마간할 겸권농사 조산대부 상서호부시랑(安南大都護府副使 兵馬幹轄 兼勸農使 朝散大夫 尙書戶部侍郞)으로 자금어대(紫金魚袋)를 하사받았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