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6015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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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鳶- |
영어의미역 | Kite-Flying |
분야 | 생활·민속/민속,문화유산/무형 유산 |
유형 | 놀이/놀이 |
지역 | 경기도 부천시 |
집필자 | 심상미 |
성격 | 민속놀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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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는시기 | 음력 1월 1일~15일 |
관련의례/행사 | 대보름 |
관련단체 | 부천시청 |
예능보유자 | 성용부 |
[정의]
경기도 부천시에서 정월 초하루부터 대보름까지 행하는 민속놀이.
[개설]
부천 지역에서는 정월 초하루부터 대보름에 걸쳐 연날리기를 하였다. 연날리기는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많이 즐겼던 놀이이다. 연날리기는 놀이 이외에도 묵은해의 액운을 날려 보내고 새로운 해의 복을 비는 마음에서 비롯되었다. 연에 그해의 액(厄)을 없애 버린다는 뜻으로 정월 보름날 액·송액(送厄)·액송(厄送)이란 글자를 써서 하늘 높이 날려 보냈다. 또한 이때가 연날리기에 가장 적당한 바람이 불기도 한다.
[연원]
경기도 부천시에서 조사된 연날리기는 정월대보름까지 주로 전통적인 가오리연이나 방패연을 날렸다고 한다. 연날리기는 오랜 옛날부터 전국 각지에서 정초에 행하는 놀이이다. 연의 기원에는 몇 가지 설이 있다. 신라 선덕여왕 말년 비담염종이 반란을 일으켰을 때, 하늘에서 큰 별이 월성 근처에 떨어지는 것을 보고 백성들은 여왕이 패할 징조라 하면서 큰 화가 생길 것을 두려워하여 민심이 소란하였다고 한다. 이에 김유신은 꾀를 내어 큰 연(鳶)을 만들어 밤에 남몰래 불을 붙여 공중에 높이 띄우고, 백성들에게 전날 떨어진 별이 다시 하늘로 올라갔으니 여왕이 크게 승리할 것이라 선전하였다고 한다. 이에 민심은 수습되고 군사들은 사기가 충천하여 크게 승리하였다고 한다.
삼국시대에는 전쟁 시 통신연락을 하는 데에도 연을 사용했다고 한다. 고려 후기의 명장인 최영 장군은 제주도에서 몽고인들의 반란을 제압할 때 연에 갈대씨를 담은 바구니를 달아 섬 주변에 뿌리고 그 해 가을에 불을 질러 가시덤불을 태운 다음 병사들을 진군시켜 평정하였다고 한다. 일설에는 큰 연에 소년들을 매달리게 하여 큰 성을 공략하였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사용한 연은 무늬와 색상에 따라 각기 고유 명칭과 신호법을 사용하여 승리로 이끌었으며, 영조대왕 때에는 대궐에서 청홍편을 나누어 연을 날렸고, 동리별로는 백성들의 화합을 도모코자 연을 날리는 것을 크게 장려하였다고 한다.
[놀이도구 및 장소]
부천시에서는 주로 가오리연과 방패연을 바람이 많이 부는 논이나 둑 위, 방축에서 날렸다고 한다. 연의 종류를 살펴보면, 방패연에는 꼭지연·반달연·치마연·초연·박이연·발연 등이 있으며, 창작연은 인물연과 동물연으로 구분된다. 인물연에는 이도령연·춘향연·할아버지연 등이 있고, 동물연에는 호랑이연·지네연·거북연·나비연 등이 대표적인 연이다.
[놀이방법]
연날리기 놀이에는 높이 띄우기·재주 부리기·끊어먹기(연싸움) 등이 있으며, 끊어 먹기를 할 때에는 연실에다 유리가루나 사기가루를 먹여 다른 연을 잘 끊어 먹을 수 있도록 했다. 이것을 ‘갬치 먹인다’라고 했다. 대개 대보름 수일 전부터 대성황을 이루고 대보름이 지나면 날리지 않는다. 대보름이 지나서 연을 날리면 ‘고리백정’이라고 놀렸다고 한다.
[생활민속적 관련사항]
한국의 연은 대체로 직사각형의 단순한 형태이지만, 구조적 짜임새는 다른 나라의 연보다 월등하다. 연의 크기나 형태는 일정하게 정해진 규격이 없고, 각 지방의 전통과 풍습에 따라 조금씩 다르기도 하지만 대체로 비슷한 편이다. 부천 지역에서는 다른 지역과 모양이 비슷한 가오리연과 방패연을 주로 날렸고, 개인의 취향에 따라 여러 가지 재미있는 연을 만들어 날리기도 했다.
[현황]
부천시청에서는 매년 1월 14일부터 1월 31일까지 부천대보름 행사 때 전통연 작가인 성용부와 전통 연날리기를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