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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 규암면 진변리에 있는 조선 후기 사원. 규암 부산서원은 신독재(愼獨齋) 김집(金集)[1574~1656]과 백강(白江) 이경여(李敬輿)[1585~1657]를 배향한 서원이다. 김집이 지방관으로 출사한 최초의 부임지가 부여이다. 김집은 1623년부터 4년 동안 부여현감으로 재직하며 교화를 우선하는 선정을 베풀었다. 이후 동부승지, 우부승지, 공조참판, 대사헌, 이조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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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 세도면 동사리에 있는 조선 후기 서원. 동곡서원(東谷書院)은 충청남도 부여군 세도면 동사리에 있는 조신(趙愼)을 배향한 서원이다. 조신은 고려 시대 말 공민왕 때 회양부사(淮陽府使)를 지냈다. 1368년(공민왕 17) 형 조사공(趙思恭)이 김정 등과 함께 신돈을 살해하려는 모의를 하다 발각되어 죽임을 당하자 형제가 전국으로 흩어져 피신하였다. 조신은 이때 ‘조사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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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에서 공자의 가르침을 종교적으로 따르는 문화 체계. 유교는 공자(孔子)를 시조로 모시는 사상으로, 공교(孔敎) 또는 공자교(孔子敎)라고도 불린다. 인(仁)과 예(禮)를 통하여 공자·맹자(孟子) 등 유가(儒家)의 정치사상과 학문 수양, 생활 의례 등의 가르침을 실천하려는 현세적 사상이자 일종의 종교이다. 유교는 우리나라를 비롯한 여러 아시아 국가에 전파되어 사회 전반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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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에 있는 조선 전기 사우. 의열사(義烈祠)는 1576년(선조 9) 부여현감 홍가신(洪可臣)이 건립한 조선 전기 사당이다. 홍가신은 부여가 역사적으로 충의로운 인물을 많이 배출하였으나 추모하는 사당이 없음을 안타깝게 여겨 사당을 세웠다. 홍가신은 의열사에 백제 말기의 3충신 성충, 흥수, 계백과 고려 말에 신돈을 탄핵한 충신 석탄(石灘) 이존오(李存吾)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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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 임천면 구교리에 있는 조선 후기 서원. 임천 간곡서원(林川 艮谷書院)은 충청남도 부여군 임천면 구교리에 있는 노곡(老谷) 유동수(柳東秀)[1579~1654]를 배향한 서원이다. 1579년(선조 12) 서울 숭례방 흥덕동에서 태어난 유동수는 인조 때 제용감직장, 사옹원직장, 오위장 등을 역임하고 천안군수 재임 시 선정을 베풀었다. 특히 1646년(인조 24) 이산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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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저석리에 있는 조선 후기 서원. 창강서원은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저석리에 있는 추포(秋浦) 황신(黃愼)[1562~1617]을 독향한 서원이다. 황신은 성혼(成渾)과 이이(李珥)의 문인으로 1588년(선조 21) 알성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고 한성부우윤, 대사간, 공조판서, 호조판서 등을 역임하였다. 임진왜란 때 전쟁을 종식시키기 위하여 명나라 사신과 함께 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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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 구룡면 금사리에 있는 삼학사를 모신 사당. 창렬사(彰烈祠)는 병자호란 때 삼학사인 임계(林溪) 윤집(尹集)[1606~1637], 화포(花浦) 홍익한(洪翼漢)[1586~1637], 추담(秋潭) 오달제(吳達濟)[1609~1637]를 모신 사당이다. 병자호란 때 청나라와 화의하는 것을 극력 반대하였던 삼학사는 인조가 청과 화의하자 척화론자로 몰려 청나라에 잡혀갔다. 온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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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 홍산면 교원리에 있는 김시습과 김효종을 모신 사당. 청일사(淸逸祠)는 매월당(梅月堂) 김시습(金時習)[1435~1493]과 우옹(迂翁) 김효종(金孝宗)[1414~1493]을 모신 사당이다. 김시습은 생육신의 한 사람으로 유교와 불교를 아우른 사상과 탁월한 문장으로 이름이 높았다. 끝까지 단종에 대한 절개를 지키다가 충청남도 부여의 무량사에서 입적하였다. 저서로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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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 임천면 칠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 서원. 칠산서원(七山書院)은 충청남도 부여군 임천면 칠산리에 있는 시남(市南) 유계(兪棨)[1607~1664]를 배향한 서원이다. 유계는 김장생의 문인으로 송시열, 송준길, 윤선거, 이유태 등과 더불어 충청도 유림의 오현(五賢)으로 불렸다. 칠산서원이 임천에 세워진 이유는 병자호란 때 척화를 주장하였던 유계가 임천에 유배되었기 때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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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 임천면 만사리에 있는 조선 후기 서원. 퇴수서원(退修書院)은 충청남도 부여군 임천면 만사리에 있는 석곡(石谷) 조박(趙璞)[1577~1650]을 주향으로 하고 성강(星江) 조견소(趙見素)[1610~1677]와 퇴수재(退修齋) 조성복(趙聖復)[1681~1723]을 배향한 서원이다. 조박은 광해군과 인조 때 부여현감, 양주목사 등을 역임하고 통정대부가 되었다. 조견소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