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20039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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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自如察訪 |
영어의미역 | Jayeo Stantion Inspector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제도/관직 |
지역 | 경상남도 창원시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최정용 |
[정의]
조선시대 경상남도 창원 지역에 설치된 자여역을 담당한 종6품 벼슬.
[개설]
창원도호부에서는 일종의 교통시설인 역(驛) 네 곳과 숙박시설인 원(院) 아홉 곳을 운영하였는데, 그 중 역으로는 자여역(自如驛)·신풍역(新豊驛)·근주역(近珠驛)·안민역(安民驛) 등이 있었다. 역에서는 역마(驛馬)와 역로(驛路)를 관리하고 공무로 지방을 다니는 관리들에게 역마와 숙식 등을 제공하였다.
자여역은 창원도호부에서 동쪽으로 8㎞ 거리에 있었다. 이는 현재의 창원시 동읍 송정리 지역에 해당한다. 동쪽으로 김해 생법역까지의 거리가 8㎞, 서쪽으로 신풍역까지는 4㎞, 근주역까지는 14㎞, 남쪽으로 안민역과 북쪽으로 김해 대산역까지는 각각 12㎞였다. 예하 12역을 관장하였고, 인근 6개 고을의 14역과 연결되어 중앙의 파발을 담당하였다. 역에 비치된 말은 큰 말 2필, 보통 말 2필, 짐을 부리는 말 14필 있었다. 역리(驛吏) 944인, 역노(驛奴) 78명, 역비(驛婢) 37명이었다.
본도(本道)에 속한 14역은 근주역(近珠驛)·창인역(昌仁驛)·대산역(大山驛)·신풍역(新豊驛)·파수역(巴水驛)·춘곡역(春谷驛)·영포역(靈浦驛)·금곡역(金谷驛)·금동역(金洞驛)·생법역(省法驛)·적항역(赤項驛)·보평역(報平驛)·남역역(南驛驛)·안민역(安民驛) 등이다.
[제정경위 및 목적]
역(驛)을 관리하는 벼슬로 처음에는 승(丞) 1명을 두었는데 역승은 종9품의 벼슬이었다. 그 후 중종 때 승을 혁파하고 종6품의 찰방(察訪)으로 승격하였다.
[관련기록]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1510년(중종 5) 승을 혁파하고 찰방을 두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변천]
자여찰방직을 거쳐 간 사람은 문헌상 128명이다. 이들의 출신지는 서울이 62명으로 전체 48.8%를 차지한다. 그 외 경상도 25명, 충청도 17명, 전라도 12명, 경기도 6명, 평안도 4명, 강원도와 함길도가 각각 1명이다. 서울 출신자가 거의 과반을 점하는 것은 행정이 서울에 치우쳐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며, 경상도 출신의 찰방이 많은 점은 정보의 수집과 역마 행정에 지리적으로 지역의 실정에 밝은 사람을 많이 파견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1611년(광해군 3)부터 1694년(숙종 20)까지는 찰방의 출신지가 전국에 골고루 분포되어 있다가 1696년(숙종 22)부터 1736년(영조 12)까지는 유독 서울 출신이 많았다. 이것은 숙종 대에 중인 출신으로서 벼슬길에 나가고자 하는 사람은 찰방직을 거쳐야만 수령에 등용할 수 있었던 제도와 숙종 이후 격심한 붕당 과정에서 이들의 관직 등용이 상대적으로 수월했기 때문에 대거 임용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