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2004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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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南面道上一運 |
영어음역 | Nam-myeon Dosangilun |
영어의미역 | Nam-myeon Dosangilun, Administrative Unit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제도/법령과 제도,지명/고지명 |
지역 | 경상남도 창원시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하종근 |
[정의]
조선시대 경상남도 창원 지역에 설치된 행정 단위.
[제정경위 및 목적]
조선 사회에서는 지방 군현제도의 정비 과정에서 면리제도가 등장하여 시행되었다. 창원도호부의 경우에도 각 고을들을 5개의 면(面)으로 분류하였다. 면의 이름은 대개 동서남북의 방위면을 사용하였다. 창원도호부의 5개 면 중의 하나가 남면(南面)이다. 면 아래에는 운(運)을 두었는데, 창원도호부에서는 방(坊)을 운이라고 하였으며 모두 16개의 운을 설치하였다. 운의 이름은 일운·이운·삼운과 같이 순서대로 분류하였는데, 남면에는 모두 5개의 운이 있었다. 남면에 속한 다섯 개 운 중의 하나가 도상일운(道上一運)이다. 도상(道上)이란 창원도호부에서 안민고개를 넘어 웅천현 보평역으로 가는 역로의 북쪽을 가리키는 말이다.
[관련기록]
『교남지(嶠南誌)』(1867~1873)·『영남읍지(嶺南邑誌)』(1895)·『창원읍지(昌原邑誌)』(1899) 등에 관련 기록이 나타난다.
[내용]
남면 도상일운은 창원도호부의 관문에서 남쪽으로 4㎞ 거리에 위치하고 있었으며, 네 개의 리가 소속되었다. 소속된 네 개의 리는 지귀리(知歸里)·봉림리(鳳林里)·반송리(盤松里)·퇴촌리(退村里)이다.
[변천]
『경상도읍지』(1832)보다 약 40년 쯤 뒤에 편찬된 『교남지』에는 남면 도상일운에 속한 고을이 지귀리·봉림리·반송리·퇴촌리로, 『경상도읍지』와 같다. 『경상도읍지』보다 60여 년 뒤에 편찬된 『영남읍지』에서는 남면 도상일운에 속한 고을이 다섯 개로 지귀리·봉림리·반송리·퇴촌리·상림리(上林里)이다. 새로 등장한 상림리는 퇴촌리에서 분리된 것으로 보인다.
『창원읍지』에서는 남면 도상일운에 속한 고을이 여섯 개로 지이리(只耳里)·소봉림리(小鳳林里)·대봉림리(大鳳林里)·반송리·퇴촌리·고산리(高山里)이다. 소봉림리·대봉림리·고산리가 등장하고 봉림리와 상림리가 소멸하였다. 이는 상림리가 퇴촌리에 통합되고 봉림리는 대소로 분리되었으며, 남면 도상이운에 속한 괴정리가 고산리로 개칭되어 남면 도상일운에 소속되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지이리는 지귀리의 다른 표기이다. 남면 도상일운 지역은 창원도호부가 조선 말기 창원군이 되고 1908년 다시 창원부가 되면서 상남면(上南面)이 되었다.
[현황]
지귀리 지역은 지금 창원시 봉림동에 속한 지귀동이 되었고, 봉림리 지역은 창원시 봉림동에 속한 봉림동과 봉곡동(鳳谷洞)이 되었다. 반송리 지역은 지금 창원시 반송동에 속한 반송동이 되었다. 퇴촌리 지역은 지금 창원시 봉림동에 속한 용동(龍洞)과 사림동(士林洞) 및 퇴촌동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