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2007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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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集姓村 |
영어의미역 | Single-Clan Village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경상남도 창원시 |
집필자 | 박태성 |
[정의]
경상남도 창원 지역에서 같은 성씨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 사는 촌락.
[개설]
창원에는 같은 성씨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사는 촌락을 중심으로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그 중 대부분의 구성원이 하나의 성씨를 이룬 촌락을 집성촌이라 한다. 가령 창원시 동읍 석산의 상산 김씨, 곡목의 김해 김씨, 다호의 연안 김씨, 창원 사화의 밀양 박씨, 사파동의 김녕 김씨, 퇴촌의 순흥 안씨, 목리의 분성 배씨, 도계와 안민의 은진 송씨, 북면 외감의 경주 이씨, 내곡 송촌의 진양 강씨, 새터골의 진양 강씨, 진전면 오서리의 안동 권씨, 내서읍 삼계의 교하 노씨, 진전면 양촌리의 초계 변씨 등이다.
[변천]
창원에 집성촌이 형성된 시기는 대개 조선 중기에 집중된다. 그 이전에도 창원을 본관으로 둔 성씨들이 집성촌을 이루었을 것이나 그렇게 많지 않았다. 조선 중기, 특히 임진왜란, 병자호란, 정유재란 등의 전란은 사람들이 보다 안전한 장소로 이동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창원은 지리적으로 안정되었고 적절히 넓은 들과 강, 산이 어우러져 있어 먹고 살 기반을 마련하기에 적절한 장소였던 것이다. 북면 월백의 의령 남씨나 창원 상촌의 김해 김씨 등이 임진왜란 때 전란을 피하여 온 성씨들이다.
어떤 한 마을이 처음부터 한 성씨가 집성촌을 이루고 산 것은 아니다. 대개 한 집이나 두 집 정도가 기존의 마을에 들어가서 살거나 일정한 자리에 정착한 뒤 점차 일가들이 모여들고 다시 자손들이 번성하면서 하나의 성씨가 마을 전체를 거의 장악하고 집성촌을 이루게 된 것이다.
하나의 성씨로 이루어진 집성촌이 영구히 지속되는 것은 아니다. 대개 혼사를 통하여 여성의 일가인 다른 성씨들이 연고를 따라 유입되면서 마을은 다른 성씨들이 섞여 살게 된다. 그리고 몇몇 집의 집성들은 살기 더 나은 곳을 찾아 이주하는 경우도 있다.
창원 사화의 경우 처음에는 창원 정씨가 살았으나 그들은 다른 곳으로 이주하고 내서면에 있던 밀양 박씨가 이주하면서 밀양 박씨의 집성촌이 되었다. 전주 이씨도 처음에는 창원시 차상이라는 곳에 살다가 부곡으로 이주하였다. 연안 명씨의 경우 서곡에 살다가 삼동으로 이주하였다.
집성촌을 이루고 사는 성씨들은 대개 스스로 양반임을 자부한다. 그리고 같은 정도의 반열에 드는 다른 집성촌의 성씨들과 혼사를 통하여 관계를 맺는다. 그러므로 한 곳의 집성촌을 조사하면 그 인근의 같은 반열의 성씨들을 두루 찾을 수 있다.
집성촌은 대체로 창원시 전체에 분포되어 있다. 현재 북창원 지역인 창원면, 동창원 지역인 상남면, 남창원 지역인 웅남면, 그리고 동읍, 북면, 대산면, 진전, 진북, 진동, 구산면 등에 고르게 나누어져 있으며 그 중 창원시 관내 지역과 동읍, 진전면, 진북면 등에 큰 집성촌이 있다.
[현황 및 특성]
창원의 집성촌은 다른 지역과 약간의 차이가 있다. 동면, 북면, 대산면, 진전면, 진동면, 진북면, 구산면의 경우에는 원래 시골 마을의 형태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기 때문에 농촌형 촌락과 집성촌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옛 창원면[서북창원], 상남면[동창원], 웅남면[남창원] 지역은 국가 산업 단지의 조성으로 마을들이 집단으로 이주를 하였다.
대개의 경우는 원래 있던 지역 가까이로 이주하였는데 그렇지 못한 경우도 있다. 옛 창원의 웅남면 지역의 사람들은 거의 현재 창원시 봉곡동 일대로 이주를 하였다. 이 때 이주지가 한 마을씩 정리되어 독립된 것이 아니고 여러 마을이 한 곳으로 옮겨져서 뒤섞여 버렸다. 그러므로 봉림동에는 옛 웅남면의 목리, 정리, 야촌, 연덕 등의 마을 사람들이 섞여서 살고 있다. 팔룡동의 경우 창원면 지역의 평산, 죽전, 부곡, 사화, 용원, 용산, 차상, 물무골 등지의 사람들이 섞여서 살고 있다.
사림동에는 용동과 퇴촌동 사람들이 주로 모여 있고, 용호동 주택가는 상촌 사람들이 산다. 토월동과 신월동에는 옛날 신월과 토월 사람들과 고산, 신덕의 사람들이 모여 있다. 사파정에는 원래 마을 아래쪽에 집단으로 이주하면서 대방, 사파, 가음정 등의 사람들이 산다. 이처럼 원래 창원의 토박이들은 도시화된 창원의 주택가에 모여 사는데 이들이 한 마을 단위로 모여 사는 것이 아니고 뒤섞여 있으며 더욱이 외지에서 유입된 사람들이 전세를 들어와서 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면서도 각 마을에 있던 재실을 현대식 재실로 바꾸어 주택가 한가운데에 세우고 입향조 향사와 같은 중요한 행사를 치른다. 이 때 인근에 흩어져 있던 집안들이 모여서 우의를 돈독히 한다. 그리고 한 집성이 모여서 행사를 할 때 인근의 다른 성씨들의 집안에도 연락하여 초청을 한다. 현재 도시화된 동 단위에 사는 창원의 인구 중에서 원래의 토박이는 약 5% 정도일 것으로 추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