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20075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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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晉陽河氏 |
영어의미역 | Jinyang Ha Clan |
이칭/별칭 | 진주하씨(晉州河氏)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경상남도 창원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박태성 |
[정의]
하공진을 시조로 하고 하명철을 입향조로 하는 창원시 세거 성씨.
[개설]
진양 하씨는 진주 하씨(晉州河氏)라고도 한다.
[연원]
진양 하씨는 삼한 시대부터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연원은 알 수 없다. 이후 3명의 중시조에 따른 3계통으로 세계(世系)를 잇고 있다. 첫째, 고려 현종 때 평장사에 오른 하공진(河拱辰)을 시조로 하는 시랑공파(侍郞公派), 둘째, 고려 정종과 문종 대에 걸쳐 사직을 지낸 하진(河珍)을 시조로 하는 사직공파(司直公派), 셋째, 고려 때 주부를 지낸 하성(河成)을 시조로 하는 단계공파(丹溪公波)가 그것이다.
[입향 경위]
진양 하씨의 창원 입향조는 하탁(河鐸)의 두 아들인 하석철(河碩哲)과 하명철(河命哲)이다. 진주시 수곡면 사방동(莎方洞)[지금의 사곡]에 살던 하택이 일찍 세상을 뜨자, 부인인 전의 이씨가 친정이 있던 창원시 의창구 북면 내곡으로 두 아들을 데리고 이거하면서 창원에 처음으로 진양 하씨가 뿌리를 내렸다. 하석철의 생년이 1665년인 것을 감안하면 창원에 처음 이거한 때는 그 이후 15년 내외로 추정된다.
하탁은 시랑공파의 후손으로 판윤공 하윤구(河允丘)를 중간 파조로 하며 부사공(府使公) 하지돈(河之沌)의 7세손으로 진양 하씨 22세손이다. 하석철은 자식이 없이 죽고, 하명철의 후손들이 내곡에서 자리를 잡았다. 내곡 송촌에 있는 하명철의 비문에 진양 하씨의 내력과 창원으로 입향한 경위가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공(公)의 성은 하(河)씨이다. 휘(諱)는 명철(命哲)이고, 자(字)는 자임(子任)으로, 진양인(晉陽人)이다. 그 선조에는 고려 때 평장사에 추증(追贈)된 휘(諱) 공진(拱辰)이 있다. 거란에 사신을 갔다가 굽히지 않고 죽음을 택한 일이 충의전(忠義傳)에 실려 있다. 그 뒤로 조선에 이르러 대대로 귀하고 현달한 사람들이 줄을 이었다. 휘(諱) 시원(恃源)은 진강 부원군(晉康府院君)으로 시호(諡)는 문정(文貞)이다.
휘(諱) 유(游)는 한성 판윤(漢城判尹)을 지냈다. 고조(高祖)는 하응기(河應期)로 참봉(參奉)이다. 증조(曾祖)는 하간(河澗)이며 조(祖)는 하육성(河六成)으로 직장(直長)이다. 고(考)는 탁(鐸)이며, 비(妣)는 전의 이씨(全義李氏)이다. 장사랑(將仕郞) 이용즙(李用楫)의 딸이다. 공이 성인이 되기 전에 외환(外患)을 만나 맏형과 더불어 어머니를 모시고 창원 내곡으로 옮겨 살았다.”
[현황]
진양 하씨는 창원시 의창구 북면 내곡리 송촌 새각단에 집성촌을 이루고 있는데, 하명철의 후손들이다. 일부는 의창구 북면 신촌으로 이거하였다.
[관련유적]
하명철의 묘와 재실이 의창구 북면 내곡리 송촌 뒤에 있고, 재실로 들어가는 길목 입구부에 ‘처사 진양하공명철지묘(處士晉陽河公命哲之墓)’라는 비석이 있고 비석에는 족인(族人) 하겸진(河謙鎭)의 비문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