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2D0201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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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 경상남도 창원시 의창구 대산면 모산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황은실 |
정확하지는 않으나 창원 지역에서 수박이 시배된 것은 조선 후기로, 장소는 낙동강 연안이었다고 전한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창원수박이 대량 생산된 시점은 1960년대 초반으로, 창원시 대산면 갈전리에서 최초로 수박을 대량 생산하였다고 한다. 이에 관해 70여 년 모산마을에서 살아온 문학암(78세) 옹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1960년대 갈전1동이 구 재배 방법을 통해 수박을 많이 생산했거든. 국민학교(초등학교)를 다닐 때 저녁을 먹고 나면 집에 있을 새도 없이 도로가(신작로)에 놀곤 했는데 갈전리에서 오는 추럭(트럭)을 많이 봤지. 갈전리에서 대도시로 나가려면 모산 신작로로 지나가야 했거든. 4톤짜리 트럭이 수박을 싣고 부산으로 가는 것을 봤어. 동네친구하고 트럭에 올라가 몰래 수박을 내려서 먹었지.”
이렇듯 갈전마을에서는 수박 재배를 통해 큰 소득을 올리고 있었지만 모산마을은 ‘봄에는 얼가리배추, 가을에는 김장무’라는 마을 주민의 말처럼 대부분이 배추와 무 등을 재배하여 소득을 올리고 있었다. 그렇다 하여 모산마을에서 수박농사를 전혀 짓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5~6농가에서 작게나마 노지재배로 수박을 길렀다고 한다. 여기서 노지재배란 말 그대로 자연에 맡겨 ‘지줌 알아서 자라게 하는’ 방법을 말한다. 노지재배는 기후의 영향을 크게 받기 때문에 수확량이 일정치 않아 불안정한 단점이 있다.
즉 아프리카가 원산지인 수박은 따뜻한 환경에서만 재배되는데, 사계절이 있는 우리나라에서는 자연 상태 그대로 재배(노지재배)한다면 봄과 여름에만 수박 재배가 가능하다. 봄과 여름에 재배한다고 하더라도 비가 많이 내리거나 서리가 내리는 등 기후가 좋지 않으면 수확이 불안정하여 소득을 올릴 수 없다.
그리하여 시간이 지나면서 모산마을 농가에서는 기후의 영향을 크게 받지 않으면서 생산성을 올리고자 수박모종에 고깔을 덮어 재배하기에 이른다. 북모산수박작목반 반장 송홍재(54세) 씨는 어릴 적 보리밭 속 수박모에 고깔이 덮여 있는 모습을 이렇게 기억하였다. “보리밭 속에 보리가 크고 있고 노지에 (수박)씨가 납니다. 봄보리가 있고 가을보리가 있는데 수박이 보리보다 늦잖아요. 그거(보리) 심어놓고 (수박을 심었는데) 서리 맞으면 죽어 버리니깐 고래 고깔을 씌웠지요.”
수박모에 고깔을 덮게 되면 내부 온도가 올라가 수확 시기를 앞당길 수 있다. 보통 3월에 수박을 심어 7~8월에 수확을 하는데, 낙동강 연안에 자리한 모산마을은 강물이 범람할 수 있는 8월에 수확하면 농사를 망칠 수 있는 위험이 높았기에 하루라도 빨리 수확하고자 고깔을 덮었던 것이다. 모산마을 사람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이처럼 농가에서는 소득이 높은 수박을 대량 생산하고 싶었지만 수확이 불안정한 노지재배는 많은 문제점이 있었다. 그러다가 1970년대 초반 모산마을 사람들은 수박 재배 방법의 전환을 꾀한다. 바로 터널재배 방법이었다.
[정보제공자]
문학암(남, 1935년생, 북모산마을 거주, 전 대산면 부면장)
김형두(남, 1960년생, 북모산마을 거주, 북모산마을 이장)
송홍재(남, 1955년생, 북모산마을 거주, 북모산수박작목반 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