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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500914
한자 朴炳好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충청남도 천안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정을경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75년 1월 5일연표보기 - 박병호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19년 4월 1일 - 아우내 장터 만세 운동 참여
몰년 시기/일시 1919년 4월 1일연표보기 - 박병호 사망
추모 시기/일시 1968년 - 박병호 대통령 표창 추서
추모 시기/일시 1991년 - 박병호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
출생지 박병호 출생지 - 충남 천안군 동면 화계리 325번지 지도보기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대표 경력 3·1 운동

[정의]

일제 강점기 천안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박병호(朴炳好)[1875~1919]는 1875년 1월 5일 충청남도 천안군 동면 화계리 325번지에서 출생하였다. 1919년 아우내 장터 만세 운동에 참가, 순국하였다.

[활동 사항]

1919년 4월 1일 갈전면[지금의 병천면(竝川面)] 아우내 장터에서는 약 3,000여 명의 장꾼들이 모여 3단계로 만세 운동을 벌였다. 오후 1시경 태극기와 깃발을 흔들고 주모자 중의 한 명인 조인원이 군중 앞에서 독립 선언서를 낭독하고 대한 독립 만세를 선창하자, 박병호를 비롯한 군중들이 호응하여 소리 높여 만세를 불렀다. 이 때 군중들에게 태극기가 나뉘어졌고, 군중은 열을 지어 시장을 누비고 다녔다. 이때 헌병들이 총기를 난사하고 총검을 휘둘러 수십 명의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오후 4시경 약 40명이 주재소에 몰려가 헌병에게 큰소리를 내고, 주전자를 집어 던지고, 유치장 벽에 발길질을 하는 등의 적극적인 항의를 하였다. 군중들은 헌병들의 총부리에 달라붙고 탄약갑을 잡아당기면서 격투를 벌였다. 이때 일본 헌병들의 야만적인 발포가 또다시 있었고, 이로 인해 김구응 모자를 비롯하여 박병호도 사망하였다. 이날 사망자는 19명, 부상자는 적어도 30명 이상이 발생했다.

[상훈과 추모]

1968년 대통령 표창, 1991년 대한민국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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