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8004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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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思想敎育 |
영어공식명칭 | Education of Ideology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강원도 철원군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영규 |
[정의]
8.15해방 이후 북한에 속한 강원도 철원 지역에서 행하여진 공산주의 강습 실태.
[개설]
8.15해방 이후 삼팔선을 경계로 하여 강원도 철원군은 북한 지역에 속하게 되었다. 공산 치하에서는 마을 단위[리]로 민청, 농민회, 군중회, 여성동맹 등이 조직되어 있었다. 1주일에 5일 정도는 일과가 끝나면 그룹별로 2~3시간 정도 공산주의 강습에 참가해야 하였다. 강습 내용은 공산주의 혁명과 막스-레닌 사상에 대한 것과 공산주의 체제 우월성에 대해 집중적으로 교육받았다. 그리고 마을에서 추진되는 사업이나 각자 진행하고 있는 일에 대해 끊임없이 자아비판과 호상비판을 하였다.
[사상 교육 실태]
강원도 철원군 동송읍 상노리에서는 부락 당대표와 부락 인민위원장[이장]이 마을의 중심이었고, 20~30세 전후 청년들은 민청에 속하여 마을 일을 주도적으로 처리하였다. 6·25전쟁 전에 철원군 동송읍 상노리 일대에는 150여 가구가 살았으나 나중에 주민의 80%는 북으로 갔고 수복 후에 다시 돌아온 사람은 10% 정도에 불과하였다. 국군이 진격하여 대한청년단이 부락자치 치안을 맡았다가 1·4후퇴 때 인민군이 들어와 상황이 반전되어 많은 사람이 죽음을 당하였고 행방불명되었다. 1951년 3월 경 인민군이 유엔군에 쫓겨 퇴각할 때에 마을의 열성당원이나 세포위원들의 강압에 의해 마을 사람 대다수가 북으로 갔다.
강원도 철원군 동송읍 이길리 지역에서만 96세대 136명이 공산당원이 되었다. 공산당에 가입하지 않은 10세대 정도는 반동이라 하여 감시 대상이 되었다. 또 공산당원으로서 제각각 프락치로 세포 조직이 되어 자기의 요시찰자를 감시하였다. 과거 고등학교·중학교·소학교 출신 주민들을 중심으로 공산주의 사상에 세뇌되어 공산당이 조직되고 토지개혁이 되면서 공산당 철원지부가 조직되었다.
노동당 철원군당 건물은 각 부락에서 쌀 100가마씩을 거두어 공산당이 무철근 소련식 공법으로 건축하였다. 노동당철원군당은 연천, 포천, 김화 지역의 중심인 공작지령소였다. 이길리 주민 중 박병권 화천군당위원장, 송한수 일동면당위원장, 군사동원부장, 군사세포책임자, 어운면민청위원장, 철원군여성동맹위원장 등 간부들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