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8005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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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上絲里中後期舊石器遺蹟 |
영어공식명칭 | Sangsari the Middle and Latter Part of Palaeolithic Site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유물 산포지 |
지역 | 강원도 철원군 갈말읍 상사리 866 |
시대 | 선사/석기 |
집필자 | 김상태 |
시기/시대 | 구석기 시대 - 상사리 중·후기 구석기 유적 제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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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굴 조사 시기/일시 | 2010년 12월~2011년 11월 - 상사리 중·후기 구석기 유적 강원문화재연구소 발굴 조사 |
소재지 | 상사리 중·후기 구석기 유적 - 강원도 철원군 갈말읍 상사리 866 |
출토 유물 소장처 | 국립춘천박물관 - 강원도 춘천시 우석로 70[석사동 95-3] |
성격 | 선사 유적 |
[정의]
강원도 철원군 갈말읍 상사리에 있는 구석기 시대 야외 유적.
[개설]
상사리 중·후기 구석기 유적(上絲里中·後期舊石器遺蹟)은 강원도 철원군 갈말읍 상사리에 있는 구석기 시대 야외 유적이다. 강원문화재연구소에 의해 발굴되었으며 특히 돌날 기술과 좀돌날 기술이 혼재되어 나타나는 석기군이다. 한탄강 건너편 인접한 장흥리 구석기 유적의 직전 문화 단계를 보여 주고 있는 중요한 유적이다.
[위치]
상사리 중·후기 구석기 유적은 강원도 철원군 갈말읍 상사리 866번지 일대에 있어 상사리의 최북단이며, 곡류하는 한탄강의 북향 단구면에 있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상사리 중·후기 구석기 유적은 군부대 이전 대상 부지에서 구석기 시대 유적이 발견되어 강원문화재연구소에 의하여 2010년 12월부터 2011년 11월까지 발굴되었다. 구석기 시대 후기에 해당하는 3개의 유물층에서 약 8천여 점의 석기가 출토되었다.
[형태]
상사리 중·후기 구석기 유적의 기본 층위는 지표면으로부터 ‘지표[교란]층 – 구지표층 – 명갈색 점토층 – 암갈색 점토층 – 갈색 사질점토층 – 모래자갈층 – 고운모래층 – 모래층’ 순서로 퇴적되어 있다. 이 가운데 명갈색 점토층이 1유물층, 암갈색 점토층이 2유물층, 갈색 사질점토층이 3유물층에 해당된다. 절대연대는 1유물층에서 AMS에 의하여 7,510±50B.P.과 23,040±160BP., 2유물층에서는 OSL에 의하여 28.1±2.4kyrs, AMS에 의하여 37,640±300B.P., 3유물층에서는 OSL에 의하여 31.9±3.1kyrs, AMS에 의하여 31,350±220B.P.가 측정되었다. 참고로 최하층인 모래층에서 OSL에 의하여 52.7±3.6kyrs가 측정되었다.
[출토 유물]
상사리 중·후기 구석기 유적은 3개의 유물층에서 총 8,000여 점의 뗀석기가 출토되었으며, 그중 대부분의 석기는 1유물층에 속한다. 1유물층에서는 석영, 반암, 수정, 흑요석, 편마암 등 다양한 석재를 활용하여 석기를 만들었으며, 돌날몸돌과 돌날, 좀돌날몸돌과 좀돌날 등과 같은 후기 구석기 시대의 표지적 석기들이 출토되었다. 특히 돌날 제작 기술은 주로 반암, 좀돌날 제작 기술은 수정과 각각 밀접한 관련성을 갖고 있어 특정 기술과 석재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음을 확인시켜 주었다. 한편 상사리 중·후기 구석기 유적의 반암을 활용한 돌날 제작 기술이 인접한 장흥리 유적의 반암제 돌날로 제작한 슴베찌르개와 상호 밀접한 연관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즉, 기술과 석재 활용면에서 볼 때 두 유적을 남긴 고인류는 사실상 동일한 집단일 가능성이 높다. 한편 석기 집중 지점에서 다량의 접합 유물과 함께 망치돌 등이 발견되어 고인류의 석기 제작 행위가 반영된 유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2유물층과 3유물층에서는 석재가 석영 중심으로 단순해지며, 석기의 양과 종류도 급감하여 1유물층에 비하면 주거 규모가 소규모였음을 보여 준다. 출토 유물은 국립춘천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현황]
상사리 중·후기 구석기 유적은 발굴 조사 완료 후 군 관련 시설인 포병 훈련장으로 이용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상사리 중·후기 구석기 유적은 장흥리 구석기 유적과 함께 철원 지역의 구석기 시대를 대표하는 주요 유적이다. 특히 상사리 중·후기 구석기 유적은 장흥리 구석기 유적에서 확인되지 않았던 후기 구석기 시대의 돌날 기술이 확인됨으로써 장흥리 구석기 유적에서 출토된 슴베찌르개의 기술적 맥락을 이해할 수 있게 해 준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나아가 동일한 석재인 반암을 이용하여 돌날과 슴베찌르개를 제작한 포천 화대리 구석기 유적과도 상호 관련성이 높아 한반도 중부 지역 돌날 기술 및 슴베찌르개 문화권을 이해하는 데에 중요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