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80055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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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石泉庵址 |
영어공식명칭 | Sukcheunamji |
이칭/별칭 | 석천사지 |
분야 |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터 |
지역 | 강원도 철원군 갈말읍 신철원리 |
시대 | 고려/고려 전기,고려/고려 후기 |
집필자 | 홍승우 |
소재지 | 석천암지 - 강원도 철원군 갈말읍 신철원리 명성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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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절터 |
[정의]
강원도 철원군 갈말읍 신철원리에 있는 고려 시대 절터.
[개설]
석천암지(石泉庵址)는 강원도 철원군 갈말읍 신철원리에 있는 절터이다. 석천암 또는 석천사로 불리던 절이 폐사한 이후 남겨진 터이다. 구체적인 건립 및 폐사 연도는 전하지 않으며, 조선 후기에 폐사한 것으로만 알려져 있다. 1977년 문화공보부 문화재관리국에서 발간한 『문화유적총람』에는 석천암의 폐사와 관련한 전설이 담겨 있다. 용화사(龍華寺)의 승려가 석천계곡 일대의 바위틈에서 1인분의 쌀과 약수가 나온다는 소문을 듣고 암자를 지어 수도를 하다가 욕심을 부려 바위틈을 크게 뚫었더니 더 이상 쌀은 나오지 않고 샘이 터져서 뱀이 몰려들었다는 것이다. 이후 몰려든 뱀에 의하여 샘이 흐려지자 승려는 떠났고 절도 자연스럽게 폐사되었다고 한다.
[변천]
석천암을 건립한 사람은 인근 용화사의 승려였다고 전한다. 용화사는 통일신라 시대부터 조선 전기까지 존속한 절로, 석천암지와 마찬가지로 명성산에 터가 남아 있다. 용화사의 존속 시기로 미루어 볼 때 석천암의 건립 시기는 고려 시대로 추정된다. 석천암지와 관련된 문헌 기록 가운데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조선 후기 학자 김창흡(金昌翕)[1653~1722]이 남긴 「석천곡기(石泉谷記)」이다. 「석천곡기」는 김창흡의 문집인 『삼연집(三淵集)』에 수록된 기행문으로, 김창흡이 철원에 은거할 당시 석천계곡 일대의 모습을 상세하게 그려내고 있다. 「석천곡기」 기록에 따르면, 조선 후기까지도 석천사라고 불리는 작은 절이 계곡 인근에 있었던 것으로 확인된다.
[위치]
석천암지는 강원도 철원군 갈말읍 신철원리에 있는 명성산 중턱에 있다.
[현황]
석천암지는 현재 돌로 쌓은 벽 일부와 건물이 세워졌던 터만 남아 있다. 본당 터는 면적이 약 15평[50㎡]이고 동남쪽을 향하여 있다. 그 밖에 승려의 거처나 누각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터가 발견되었으며, 석재와 기와, 식기류의 파편 등도 출토되었다.
[의의와 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