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한강정선생」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6384
한자 上寒岡鄭先生
영어공식명칭 A letter to Han Kang teacher
이칭/별칭 한강 정선생께 올림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유형 작품/문학 작품
지역 대구광역시 북구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박영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저자 생년 시기/일시 1550년 - 서사원 출생
저자 몰년 시기/일시 1615년 - 서사원 사망
편찬|간행 시기/일시 1843년 - 「상한강정선생」 저자 서사원의 『낙재선생문집』 간행
배경 지역 구암서원 - 대구광역시 북구 연암공원로17길 20[산격동 산79-1]지도보기
배경 지역 이강서원 - 대구광역시 달성군 다사읍 이천리 지도보기
배경 지역 서사원본가터 - 대구광역시 중구 남산동 지도보기
성격 서간류|서
작가 서사원

[정의]

조선 후기 대구 출신 의병장이자 학자인 서사원이 사우 정구에게 보낸 편지.

[개설]

「상한강정선생(上寒岡鄭先生)」을 쓴 서사원(徐思遠)[1550~1615]은 본관이 달성(達城)이고, 자는 행보(行甫)이며, 호는 낙재(樂齋) 혹은 미락재(彌樂齋)이다. 경상북도 성주 팔거현(八莒縣)[현 대구광역시 북구 칠곡 일대]에서 출생하였다. 서사원의 본가는 대구 남산(南山)의 옛 역터이다. 서사원임진왜란 시기를 중심으로 영남에서 구국 활동을 전개하는 한편 열악한 환경에서 학문 연마와 강학 활동을 전개하였다. 이황(李滉)의 학맥을 계승한 정구(鄭逑)[1543~1620]를 찾아가 배웠고, 정구서사원을 사우(師友)로 대우하였다. 장현광(張顯光), 곽재겸(郭再謙), 손처눌(孫處訥) 등과 교유하였다. 서사원의 위패는 청주의 구계서원(龜溪書院)에 봉안되었고, 2008년 대구광역시 북구 산격동 구암서원(龜巖書院)에 배향되었다. 저서로 『낙재집(樂齋集)』이 있다. 「상한강정선생」『낙재집』에 8편이 수록되어 있다. 「상한강정선생」은 ‘한강 정선생께 올림’이라는 의미이다.

[구성]

「상한강정선생」정구 편지에 대한 답장, 안부 인사, 가르침을 청하는 편지, 화운시에 대한 질정을 요청하는 편지 등의 내용으로 이루어진 8편의 편지이다.

[내용]

「상한강정선생」의 8편 중 한 편의 전문 내용이다.

“한 번 글방에서 절하고 물러난 뒤로 다시 선생님을 찾 뵐 인연이 없기에 구름 뜬 하늘을 올려보고 다만 부지런히 축원할 따름입니다. 오늘 서리가 내리고 춥습니다. 도체(道體)는 신이 도우셔서 만복(萬福)을 받으시리라고 엎드려 생각합니다. 용렬하고 실없으며 못난 저는 세상을 기만하면서도 죽지 않고 아울러 임금의 부름을 받는 지경에 이르니 황송하고 근심되고 두려워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쇠약함과 병이 실로 깊어 일어나 인사할 수 없기에 바야흐로 엎드려서 처벌을 기다릴 따름입니다. 이에 덕회(德晦)가 조정에 가는 편에 문안의 말씀을 우러러 올립니다.[一自拜違黌舍, 更趨函席無緣, 瞻仰雲天, 只勤加額. 卽日霜寒. 伏惟道體神相萬福. 思遠庸虛無狀, 欺世不死, 至於幷被召命之辱, 惶悚憂憟, 措身無所. 衰病實深, 末由起謝, 方屈伏以俟鈇鉞之至而已. 玆因德晦趨朝, 仰貢起居之適.]”

[특징]

「상한강정선생」에서 편지의 첫 문단은 안부를 묻는 것으로 관용적인 표현이나 퇴계학맥에서 쓰는 특유의 표현이다.

[의의와 평가]

「상한강정선생」은 퇴계학맥에서 보이는 특유의 표현들이 8편의 편지에 고스란히 녹아 있어 서사원이황의 표현 양식을 계승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퇴계학맥의 대구 지역 계승 양상의 일면을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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