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이방백양구 조통판극원 홍립 유화암」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6599
한자 陪李方伯養久 曺通判克遠 弘立 遊畫巖
영어공식명칭 A Poem Written While Playing In Hwa-Arm With Lee-Yanggu And Jo-Honglip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유형 작품/문학 작품
지역 대구광역시 북구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곽명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저자 생년 시기/일시 1553년 - 「배이방백양구 조통판극원 홍립 유화암」 저자 손처눌 출생
저술|창작|발표 시기/일시 1603년연표보기 - 「배이방백양구 조통판극원 홍립 유화암」 창작
저자 몰년 시기/일시 1634년 - 「배이방백양구 조통판극원 홍립 유화암」 저자 손처눌 사망
편찬|간행 시기/일시 1784년 - 『모당집』 간행
배경 지역 화암 - 대구광역시 북구 연경동 지도보기
성격 한시|칠언율시
작가 손처눌

[정의]

1603년 대구 출신 학자인 손처눌이시발, 조홍립과 함께 대구의 화암을 유람하며 지은 한시.

[개설]

「배이방백양구 조통판극원 홍립 유화암(陪李方伯養久 曺通判克遠 弘立 遊畫巖)」의 저자 손처눌(孫處訥)[1553~1634]의 본관은 일직(一直)이며, 자는 기도(幾道)이고, 호는 모당(慕堂)이다. 아버지는 손수(孫遂)이고, 어머니는 한산이씨(韓山李氏) 이탄(李坦)의 딸이다. 정구(鄭逑)[1543~1620]의 문인이다. 장현광(張顯光)[1554~1637], 서사원(徐思遠)[1550~1615], 곽재겸(郭再謙)[1547~1615], 류요신(柳堯臣)[1550~1618] 등과 교유하였다. 학문과 효행으로 이름이 높았다. 서사원과 함께 대구 지역의 강학 활동에 힘써 대구 문풍(文風) 발전에 이바지하였다. 대구의 청호서원(靑湖書院)에 제향되었고, 저서로는 『모당집(慕堂集)』이 있다.

이시발(李時發)[1569~1626]의 본관은 경주(慶州)이며, 호는 벽오(碧梧)·후영어은(後潁漁隱)이고, 자는 양구(養久)이다. 이덕윤(李德胤)의 문인이다. 시호는 충익(忠翼)이며, 저서로는 『벽오유고(碧梧遺稿)』, 『주변록(籌邊錄)』이 있다. 1601년 9월 이시발은 경상감사(慶尙監司)가 되어 4년간 유임하였다. 임기 동안 연경서원(硏經書院) 중건을 완수하였다.

조홍립(曺弘立)[1558~1640]의 본관은 창녕(昌寧)이며, 호는 수죽헌(數竹軒)이고, 자는 극원(克遠)이다. 조홍립이 통제사의 막좌(幕佐)로 나와 있을 때의 유람인 듯하다.

화암산(畵巖山)은 해발고도 110m의 산인데, 지도상에 정식명칭으로 기재되어 있지 않으나 화암(畵巖)이라는 하식애(河蝕崖)가 있는 산이라 하여 그 명칭이 유래하였다.

「배이방백양구 조통판극원 홍립 유화암」연경서원의 중건이 완료된 1603년에 지어진 작품이다. 연경서원임진왜란(壬辰倭亂)[1592] 때 소실되었다가 1602년 낙성하여 그 이듬해인 1603년에 완공되었다.

[구성]

「배이방백양구 조통판극원 홍립 유화암」은 칠언율시(七言律詩)이다.

[내용]

천상사문차중감(天相斯文此重監)[하늘이 사문을 도와 이곳에 서원 중수하니]

당개로벽극전삼(堂開路闢棘專芟)[당이 열리고 길이 열리어 가시덤불 베었네]

전시승적여반석(前時勝迹餘盤石)[앞서의 훌륭한 자취는 반석에 남아 있고]

구면상지유화암(舊面相知有畫巖)[옛 얼굴 서로 아는 것으로는 화암이 있네]

추기여운횡원수(秋氣與雲橫遠峀)[가을 기운 구름과 함께 먼 묏부리에 비꼈는데]

제광수일상한삼(霽光隨日上寒杉)[개인 빛 해를 따라 서늘한 삼나무에 오르네]

잠영관개론경술(暫迎冠盖論經術)[잠시 관개를 맞이하여 경술을 논하는데]

범아치구설아함(範我馳驅設我銜)[법도대로 행하여 바른 방도를 베풀었네]

[특징]

「배이방백양구 조통판극원 홍립 유화암」은 ‘함(咸)’ 계열의 운목이 사용된 칠언율시이다. 1행에도 운자를 두었다. 마지막 8행은 『맹자』「등문공하(滕文公下)」의 “내가 그를 위하여 수레를 법도에 맞게 몰았다.[吾爲之範我馳驅].”에서 인용한 것이다.

[의의와 평가]

「배이방백양구 조통판극원 홍립 유화암」연경서원이 완공된 해에 지금의 대구광역시 북구 연경동화암을 유람하고 연경서원에서 이시발과 강론할 때 지은 작품이다. 소실되었다가 중건되어 옛 모습을 찾은 연경서원의 모습을 어우러진 화암과 풍광 안에서 노래하고, 연경서원 중건을 완수한 이시발의 공을 칭송한 시이다. 바깥에서 보는 연경서원과 주변 경관을 노래하고, 연경서원 안에서 강론하는 이시발의 모습을 노래하였다. 손처눌의 시재(詩才)를 엿볼 수 있는 자료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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