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19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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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慕巖齋 |
영어공식명칭 | Moamjae |
분야 | 종교/유교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대구광역시 달서구 선원로11길 30[신당동 1679-4]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전일주 |
건립 시기/일시 | 1949년 - 모암재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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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축|증축 시기/일시 | 1998년 - 모암재 재건 |
현 소재지 | 모암재 - 대구광역시 달서구 선원로11길 30[신당동 1679-4] |
성격 | 재실 |
양식 | 홑처마 팔작지붕 목조 와가 |
정면 칸수 | 4칸 |
측면 칸수 | 2칸 |
소유자 | 김녕김씨 충의공파 대구 신당 종중 |
관리자 | 김녕김씨 충의공파 대구 신당 종중 |
[정의]
대구광역시 달서구 신당동에 있는 김응수를 추모하는 재실.
[개설]
모암재(慕巖齋)는 김응수(金應守)[1577~?]를 기리기 위하여 김녕김씨(金寧金氏) 대구 대신 종중에서 건립한 추모 재실이다. 김응수의 자는 광극(光極)이고, 호(號)는 개암(開巖)이다. 아버지는 김영호(金榮豪)이며, 부인은 동래정씨(東萊鄭氏)이다. 충의공(忠毅公) 백촌(白村) 김문기(金文起)의 현손이다. 임진왜란 때 지금의 충청북도 영동군에서 대구 성당동으로 피신하였다가 이후 신당동에 정착하였다. 1624년 이괄의 난이 일어나자 동생 및 두 아들과 함께 안치(鞍峙)에서 반란군을 격파하여 진무공신에 책봉되었으며, 사망한 뒤 자헌대부 한성판윤에 증직되었다.
[위치]
모암재는 달서구 신당동 1679-4에 있다.
[변천]
모암재는 1949년 4월 김응수의 10세손 김형진(金炯眞)이 창건하였다. 1990년 도시계획으로 철거되어 1998년에 재건하였다.
[형태]
모암재는 정면 4칸, 측면 2칸의 홑처마 팔작지붕을 얹은 목조 기와집이다. 주요 시설은 영각·내삼문·강당·동재·서재·외삼문 등이 있다.
[현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