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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곡리 9-2유적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80640
한자 竹谷里 九-二遺蹟
영어공식명칭 The Ancient Site at Jukgok-ri, Dalseong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유적/유적(일반)
지역 대구광역시 달성군 다사읍 왕선로 15[죽곡리 9-2]
시대 고대/삼국 시대,고대/남북국 시대,고려/고려
집필자 이창국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굴 조사 시기/일시 2004년 7월 30일~2005년 1월 21일 - 죽곡리 9-2유적 영남 문화재 연구원이 발굴 조사
현 소재지 죽곡리 9-2유적 - 대구광역시 달성군 다사읍 왕선로 15[죽곡리 9-2]지도보기
출토 유물 소장처 영남 문화재 연구원 - 경상북도 칠곡군 가산면 천평2길 43[천평리 221]
성격 유적
면적 22,000㎡

[정의]

대구광역시 달성군 다사읍 죽곡리에 있던 삼국 시대부터 고려 시대까지의 유적.

[위치 및 현황]

죽곡리 9-2유적은 현재 대구광역시 달성군 다사읍에 있는 다사 고등학교 우측 편의 죽곡 하우젠트 아너스빌 아파트 일원에 자리하였다. 발굴 조사 지점은 남서쪽으로 국도 30호선과 접해 있고, 서쪽 경사면 위쪽으로는 주택과 상가 및 공장 건물이 연접해 있다. 조사 구역 내에는 2~3채의 상가 건물이 있었고, 그 외 북쪽과 동쪽은 경작지로 사용되고 있었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달성군 다사읍 죽곡리매곡리 일원의 대단위 택지 개발 사업으로 인해 영남 문화재 연구원에 의해 발굴 조사되었다. 2001년 3월 12일부터 같은 해 3월 26일까지 지표 조사[69만 5000㎡]가, 2003년 6월 16일부터 그해 10월 15일까지 시굴 조사가 실시되었다. 조사 결과 일부 지역에서 삼국 시대의 생활 유적 및 경작 유구로 판단되는 유구와 우물, 수혈 등이 확인되었다. 발굴 조사는 유구가 확인된 지역을 중심으로 2만 2000㎡에 대해 2004년 7월 30일부터 2005년 1월 21일까지 실시되었다. 조사 결과 삼국 시대~통일 신라 시대의 도로 유구 1기, 경작 유구 1기, 논 유구 1기, 수혈 유구 2기와 통일 신라 시대에서 고려 시대 초의 부석 유구 1기, 석렬 유구 1기, 큰 항아리[대호] 매납 유구 1기, 수혈 유구 2기, 구상 유구 1기, 우물 1기 등 총 14기의 유구가 확인되었으며, 토도류 141점과 금속 및 기타 5점 등 총 146점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도로 유구는 남북 방향으로 진행되며 조사된 길이는 113m,, 폭은 6.4~18.6m 정도이다. 도로는 마사토 및 점토를 이용한 판축 시설이나 자갈이나 소석, 토기편을 깔아 경화 면을 구축한 포장도로가 아니라, 경사가 완만한 구릉 비탈을 이용한 비포장도로로서 차륜흔(車輪痕)으로 추정되는 일정한 너비의 구(溝)가 반복적으로 확인된다. 차륜흔의 폭은 1.4m 정도이며, 반복된 차륜흔의 최대 폭은 18.6m이나, 집중적으로 확인되는 차륜흔은 8~10m 정도여서 도로 폭은 8m 정도로 보면 무난할 것으로 생각된다. 도로 폭만으로 본다면 지방 도로로서는 비교적 넓은 도로라 판단된다. 도로의 진행 방향은 남쪽에 위치한 죽곡리 고분군(竹谷里古墳群)죽곡리 산성(竹谷里山城) 방향으로 이어질 것으로 추정되며, 이들 유적과 무관하지 않을 것으로 추정된다. 도로의 사용 시기와 폐기는 명확하지 않으나 차륜흔 내부와 퇴적층에서 확인되는 종장 연속 마제형문, 수적형문이 시문된 찍은 무늬[인화문] 토기편과 일단 투창 굽다리 접시[고배] 대각, 종선문이 타날된 평와편 등의 유물로 볼 때 도로의 주 사용 시기는 7세기 말로 추정된다. 도로의 진행 방향과 나란하게 만들어진 2호 구상 유구는 경사면 위쪽에 설치되어 있어 도로 시설을 보호하기 위한 측구(側溝)의 기능을 하였을 가능성도 있다.

조사 지역 곡부에 조성된 부석 시설을 중심으로 동편 및 서편의 평탄한 구릉 비탈에 우물 및 석렬 유구, 수혈 유구, 큰 항아리 매납 유구 등의 생활 유구가 위치하고 있다. 서편 구릉에서 확인된 유구는 비슷한 시기에 사용된 상호 연관성이 있는 유구로 판단된다. 우물에서는 사각 납작병[편병]과 목 짧은 병[단경병], 주름 무늬 소병 등의 9~10세기에 해당되는 유물이 출토되었다. 부석 유구에서는 선조문·어골문·복합문 등이 타날된 평와편이 출토되었는데, 나말 여초에서 고려 시대 전기에 해당하는 유물로 판단된다. 유적은 나말 여초 및 고려 시대로 판단되는 생활 유적이 도로 유구를 덮고 있어 9세기 이후에는 주 도로의 기능이 상실된 것으로 보인다. 이는 삼국 시대 및 통일 신라 시대 전기에 유적 일원이 주요한 교통로로 활용되다가 이후 중앙과 지방의 도로망 정비 및 개편과 연동되어 도로의 기능을 상실한 것으로 보이며, 나말 여초에 곡간과 구릉지를 활용한 건물 터 등의 생활 유적이 조영되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의의와 평가]

죽곡리 9-2유적은 삼국 시대부터 통일 신라 시대까지의 도로 유적과 통일 신라 시대부터 고려 시대까지의 생활 유적이 확인되어 당시 달성군 다사읍 지역에 대한 교통로와 생활상 연구에 기초 자료를 제공할 것으로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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