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포산지』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81444
한자 苞山誌
영어공식명칭 Po San Eup-Ji
이칭/별칭 『포산지(苞山志)』
분야 문화·교육/언론·출판,문화유산/기록 유산
유형 문헌/전적
지역 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읍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이병훈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소장처 국립 중앙 도서관 - 서울특별시 서초구 반포대로 201[반포동 산60-1]
성격 고도서|읍지
권책 불분권 1책[67장]
행자 10행 21자
규격 32.7㎝[세로]|21.4㎝[가로]
어미 무어미(無魚尾)
권수제 포산지(苞山志)

[정의]

조선 후기 경상도 현풍현에서 편찬된 사찬 읍지.

[편찬/간행 경위]

『포산지(苞山誌)』의 편찬자 및 간행 시기는 알 수 없지만 18세기 중반 『여지도서(輿地圖書)』의 내용과 전결, 호구 등에서 많은 차이가 있으며, 학규(學規), 향약(鄕約), 제영(題詠), 인물 등의 수록 내용이 17세기를 하한으로 하고 있다. 편목의 기본 구성은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을 따르고 있지만, 현풍현의 문화와 역사를 잘 들어내기 위하여 인물, 열녀, 향임, 향약, 학규 등의 항목이 추가되었다. 이것은 지역의 특성에 맞춰 편목을 구성하였던 조선 후기 사찬 읍지의 성격을 보여준다. 결과적으로 『포산지』는 17세기 이래로 대읍을 중심으로 수령이나 지역 유력 사족이 주도하여 사찬 읍지가 편찬되던 추세가 전파되면서, 현풍 현감 내지 현풍현 사족들이 주도하여 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포산지』 판본에 현풍 현감을 역임한 박치문(朴致文)의 인장이 찍힌 것으로 보아서, 박치문이 현풍 현감으로 부임한 1741년 8월 이후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형태/서지]

필사본으로 불분권(不分卷) 1책[67장]이다. 표지는 새롭게 장정하였으며, 원래의 표지는 낙질되었다. 판식은 사주 단변(四周單邊)으로, 계선(界線)이 있으며 무어미(無魚尾)이다. 크기는 세로 32.7㎝, 가로 21.4㎝이며, 반곽(半郭)은 세로 22.7㎝, 가로 16.7㎝이다. 1면 10행에 1행의 자수는 21자이다. 표제와 권수제는 '포산지(苞山志)'이다. 주(註)는 쌍행(雙行)으로 되어 있다. 주인(朱印)으로 '한성예신문고(漢城禮信文庫)', '밀양 박치문인(密陽朴致文印)', '사빈(士彬)' 등이 있다. 박치문은 1741년 8월에 현풍 현감으로 부임하였다. 국립 중앙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구성/내용]

첫 표지의 인용 서목(引用書目)에는 인용한 문집과 저서 및 저자가 기재되어 있으나, 훼손이 심하여 일부만 확인된다. 편목은 정도(程途), 건치 연혁(建置沿革), 읍호(邑號), 장면(掌面), 성씨(姓氏), 풍속(風俗), 산천(山川), 토산(土産), 약재(藥材), 성곽(城郭), 봉수(烽燧), 관사(舘舍), 누정(樓亭), 학교(學校), 역원(驛院), 사찰(寺刹), 교량(橋梁), 사묘(祠廟), 총묘(塚墓), 고적(古蹟), 호구(戶口), 무반(武班), 군정(軍丁), 전결(田結), 조세(祖稅), 진상(進上), 공물대동전(工物大同前), 창고(倉庫), 관전(官田), 제언(堤堰), 잡축(雜畜), 장시(場市), 요역(徭役), 선척(船隻), 공장(工匠), 관속(官屬), 향임(鄕任), 명환(名宦), 인물(人物), 열녀(烈女), 학규, 향약, 제영 등으로 구성되었다. 장면은 현내(縣內)의 2부와 14개 면리촌의 지명과 위치를 적고 있다.

성씨조에는 현풍을 본관으로 하는 문(文), 임(任), 곽(郭)씨와 밀양 윤씨(密陽尹氏), 창녕 하씨(昌寧河氏), 안정 김씨(安定金氏), 구지산 변씨(仇知山卞氏), 밀양 박씨, 서흥 김씨(瑞興金氏), 영월 엄씨(寧越嚴氏), 성산 배씨(星山裵氏), 경주 김씨, 수성 나씨(壽城羅氏), 순천 박씨, 함안 조씨(咸安趙氏), 영산 신씨(靈山辛氏), 청주 정씨(淸州鄭氏), 선산 김씨, 청도 김씨, 고성 이씨, 평강 채씨(平康蔡氏), 김해 허씨(金海許氏) 등이 수록되어 있다. 학교조는 향교와 도동 서원이 있으며, 곽재우가 거주하던 동네에 쌍계 서원 향현사(雙溪書院鄕賢祠)가 있다. 사묘에는 사직단, 문묘, 성황사, 여단 외에 가묘(家廟)를 소개하고 있는데, 문경공 김굉필(金宏弼)의 사우이다.

호구조의 호(戶)는 1,475호이며, 인구는 6,643명인데, 남자가 3,398명, 여자가 3,131명으로 기록되어 있어서 총 인구수와 맞지 않다. 군정은 일반 양정(良丁)들이 담당하는 기병, 수군, 봉수군, 사복제원(司僕諸員), 편오군(編伍軍) 외에 충의위(忠義衛), 충장위(忠壯衛), 충익위(忠翊衛) 등의 양반들의 군역직도 기재하고 있다. 조세조는 쌀과 콩을 양산 감동창(甘同倉)으로 보내며, 장인세(匠人稅)와 무녀세(巫女稅)는 해당 관사로 상납한다고 기재되어 있다.

진상조는 정월, 3월, 5월 7월, 11월의 초하루와 단오, 탄일(誕日), 납일(臘日), 정조(正朝), 감사도계(監司到界) 시에는 지역의 토산물과 생산품을 올리며, 2월, 8월, 9월, 11월의 월령(月令)에는 약재를 진상하였다. 공물대동전(貢物大同前)은 대동법이 시행되기 이전에 현풍현에서 중앙과 지방의 각 관사로 올리던 물품들로서 봉상시, 내섬시, 풍저창, 제용감, 교서관, 상의원, 사도시, 전설사, 공조, 장흥고, 조지서, 전의감, 사섬시, 장원서, 선공감, 관상감, 예조 등의 중앙 관사와 감영, 안동도회(安東都會), 좌병영, 통영, 우병영, 영천도회(榮川都會), 영천도회(永川都會), 김산도회(金山都會), 동래도회(東萊都會) 등의 지방 관사와 군사 기구에 보내었다.

잡축은 양, 돼지, 염소를 길렀다. 선척은 수문진(水門津)의 배 1척, 도동 서원진의 배 1척, 논곡진(論谷津)의 배 1척, 대암진(臺岩津)의 배 1척 등 모두 4척이 있다. 향임에는 향청에 좌수, 별감, 도약정, 부약정, 직월, 면약정을 두고, 관청 내에 대동청감관, 관청감관, 군기감관을 두었으며, 각 마을마다 사족 1명으로 풍속을 규찰하는 상유사(上有司)와 그 밑에 하유사(下有司), 근농, 이정 각 1명을 두었다. 학규와 향약은 전 현풍 현감 김세렴(金世濂)이 지은 것으며, 제영조의 글들은 장현광(張顯光), 정구(鄭逑), 신지제(申之悌), 이민구(李敏求), 조경, 이식(李植), 황준량(黃俊良), 이황(李滉) 등이 지은 중수기, 제문, 행장 등을 엮은 것이다. 이처럼 명유(名儒)들의 글들을 수록하여 현풍현이 다른 고을 못지 않게 문풍이 진작된 곳임을 드러내려 하였다.

[의의와 평가]

임진왜란 이후 『여지도서』가 편찬되는 18세기 중반 이전까지의 현풍현 실태를 파악할 수 있는 자료로서 사료적 가치가 높다. 특히 수령의 지방 행정을 보좌하였던 향임 조직과 대동법 시행 이전에 현풍현이 담당하였던 진상품의 실상을 확인할 수 있다.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