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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집향병통문」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6471
한자 招集鄕兵通文
영어공식명칭 An Article That Recruits Soldiers
이칭/별칭 「향병을 불러 모으는 통문」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유형 작품/문학 작품
지역 대구광역시 북구|동구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박영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저자 생년 시기/일시 1550년 - 「초집향병통문」 저자 서사원 출생
저술|창작|발표 시기/일시 1592년연표보기 - 「초집향병통문」 창작
저자 몰년 시기/일시 1615년 - 「초집향병통문」 저자 서사원 사망
편찬|간행 시기/일시 1843년 - 『낙재선생문집』 간행
배경 지역 동화사 - 대구광역시 동구 동화사1길 1[도학동 35]지도보기
배경 지역 구암서원 - 대구광역시 북구 연암공원로17길 20[산격동 산79-1]지도보기
배경 지역 서사원 본가터 - 대구광역시 중구 남산동 지도보기
성격 잡기류|잡저
작가 서사원

[정의]

조선 후기 대구 지역의 의병장이자 학자인 서사원임진왜란 때 지방 병사를 불러 모으기 위하여 지은 통문.

[개설]

「초집향병통문(招集鄕兵通文)」의 저자 서사원(徐思遠)[1550~1615]의 본관은 달성(達城)이고, 자는 행보(行甫)이며, 호는 낙재(樂齋) 혹은 미락재(彌樂齋)이다. 경상북도 성주군 팔거현(八莒縣)[현 대구광역시 북구 칠곡 일대]에서 출생하였다. 서사원의 본가는 대구 남산(南山)의 옛 역터이다. 서사원은 임진왜란기(壬辰倭亂期)를 중심으로 영남에서 구국 활동을 전개하는 한편 열악한 환경에서 학문 연마와 강학 활동을 전개하였다. 이황(李滉)[1501~1570]의 학맥을 계승한 정구(鄭逑)[1543~1620]를 찾아가 배웠고, 정구서사원을 사우(師友)로 대우하였다. 장현광(張顯光)[1554~1637], 곽재겸(郭再謙)[1547~1615], 손처눌(孫處訥)[1553~1634] 등과 교유하였다. 서사원의 위패는 청주의 구계서원(龜溪書院)에 봉안되었고, 2008년 대구광역시 북구 산격동구암서원(龜巖書院)에 배향되었다. 저서로 『낙재집(樂齋集)』이 있다.

서사원이 항쟁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1592년 6월 1일 미라점(彌羅店)에서 문약회(文約會)를 발족하면서부터이다. 서사원은 6월 8일에 동화사(桐華寺)에 머무르면서 향병(鄕兵)을 모집하는 통문의 초안을 다듬었다.

2008년 발행한 『국역 낙재선생문집(國譯樂齋先生文集)』에서는 「초집향병통문」의 제목을 쉬운 우리말로 풀이하여 「향병을 불러 모으는 통문」이라고 표기하였다.

[구성]

「초집향병통문」에는 향리의 의병 모집을 독려하기 위한 내용이 의론(議論)의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내용]

「초집향병통문」은 도입부에 변란이 닥친 위급한 상황을 전하고, 의병 모집의 절박함을 말하고 있다. 경상남도 일대에서는 곽재우(郭再祐)[1552~1617]를 필두로 의병이 조직되어 분발하고 격렬하게 일어나고 있으니, 경상북도 일대에서도 의병이 떨쳐 일어나 이 위기에 대응하여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본문에서는 임금의 교지를 인용하여 의병 지원을 독려하고, 의병 지원으로 위기를 타개하여야 함을 다양한 인용과 사실 전달로 강조하고 있다. 아래는 「초집향병통문」의 일부분인데, 서사원의 의기(義氣)가 강하게 표출된 부분이다.

“아! 의기가 스스로 우세하면 계략이 능히 굳세고 충성스런 분노가 한번 격발하면 맨주먹으로도 스스로 떨칠 수 있다. 장군감을 얻기 어려운 것은 걱정할 일도 못 되니 우리의 계략이 굳세지 못한 것을 근심하라. 군량이나 군기가 부족한 것도 걱정할 일이 못 되니 우리의 충의가 격발하지 못하는 것을 근심하라. 애통할 만한 것은 당당한 한 나라의 신민(臣民)으로서 구차하게 연명하여 나가려는 생각이 날이 갈수록 더욱 심하여져서 죽음을 무릅쓸 충심이 모두 사라져, 비록 평소 ‘유학자’이네 ‘선비’이네 말하던 자들도 그 의론을 할 때 이쪽저쪽 눈치를 보고 앞과 뒤가 모두 두려워하는 짓을 면치 못하기에, 사람으로 하여금 의기가 꺾이고 충성스러운 분노가 억눌려 임금을 잊어버리는 지경에 방치하여 둔다면 어찌 우리 당이 크게 부끄러워할 일이 아니랴?”

[특징]

「초집향병통문」은 일반 민중의 지원을 독려하면서도 사림(士林)의 의리 정신을 강조하며 사대부의 의병 참여를 더욱 강조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초집향병통문」으로 조직된 서사원의 의병 활동은 이론을 기반으로 한 것이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피난하여 있던 사람들을 질책하여 떨쳐 일어나게 하고, 향병으로 모이도록 만든 논리의 예로는 ‘외축퇴탁론(畏縮退托論)’과 ‘임수구차론(林藪苟且論)’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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