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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병입약」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6487
한자 鄕兵立約
영어공식명칭 Hyangbyeongripyak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유형 작품/문학 작품
지역 대구광역시 북구|동구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박영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저자 생년 시기/일시 1550년 - 「향병입약」 저자 서사원 출생
저술|창작|발표 시기/일시 1592년연표보기 - 「향병입약」 창작
저자 몰년 시기/일시 1615년 - 「향병입약」 저자 서사원 사망
편찬|간행 시기/일시 1843년 - 『낙재선생문집』 간행
배경 지역 팔공산 - 대구광역시 동구 도학동 지도보기
배경 지역 구암서원 - 대구광역시 북구 연암공원로17길 20[산격동 산79-1]지도보기
배경 지역 이강서원 - 대구광역시 달성군 다사읍 이천리 지도보기
배경 지역 서사원 본가터 - 대구광역시 중구 남산동 지도보기
성격 잡기류|잡저
작가 서사원

[정의]

조선 후기 대구 출신의 의병장이자 학자인 서사원이 1592년 의병을 모집하면서 만든 의병 규칙서.

[개설]

「향병입약(鄕兵立約)」의 저자 서사원(徐思遠)[1550~1615]의 본관은 달성(達城)이고, 자는 행보(行甫), 호는 낙재(樂齋) 혹은 미락재(彌樂齋)이다. 경상북도 성주군 팔거현(八莒縣)[현 대구광역시 북구 칠곡 일대]에서 출생하였다. 서사원의 본가는 대구 남산(南山)의 옛 역터이다. 서사원은 임진왜란기(壬辰倭亂期)를 중심으로 영남에서 구국 활동을 전개하는 한편 열악한 환경에서 학문 연마와 강학 활동을 전개하였다. 이황(李滉)[1501~1570]의 학맥을 계승한 정구(鄭逑)[1543~1620]를 찾아가 배웠고, 정구서사원을 사우(師友)로 대우하였다. 장현광(張顯光)[1554~1637], 곽재겸(郭再謙)[1547~1615], 손처눌(孫處訥)[1553~1634] 등과 교유하였다. 서사원의 위패는 청주의 구계서원(龜溪書院)에 봉안되었고, 2008년 대구광역시의 구암서원(龜巖書院)에 배향되었다. 저서로 『낙재집(樂齋集)』이 있다.

「향병입약」임진왜란이 발발한 1592년 7월에 팔공산(八公山) 일대에서 지은 것이다.

[구성]

「향병입약」은 10개의 조목으로 구성되어 있다.

[내용]

「향병입약」은 향토 의병들이 지켜야 할 규칙들의 나열이다. 참여 의병의 자격 조건, 의병의 의무와 군율의 지엄함, 점고(點考)의 방법과 엄정함, 참여한 의병 이름의 기재 등에 대한 내용이다.

아래는 「향병입약」에 제시되어 있는 첫 번째 조목이다. 「향병입약」의 전체적 분위기를 확인할 수 있다.

“하나. 각 마을에서 모이는 날 낭독을 잘하는 자로 하여금 소리 높여 꿇어앉은 채 교지를 낭독하게 하며, 모든 사람은 손을 공손히 모으고 꿇어앉아 듣게 하라. 글을 모르는 자에게는 일일이 풀어서 읽어 주고 깨우쳐 주어 그들이 충심을 일으키고 감격하여 울게 하라. 다음으로는 강좌(江左) 의병대장의 격서를 낭독하여 그들로 하여금 모두가 병역을 이행할 의무가 있다는 사실을 감발케 하라. 다음으로는 관찰사의 회관문자(回關文字)를 낭독하여 군율의 지엄함을 보이라.”

[특징]

「향병입약」은 제시된 조목들의 내용에 비장함이 감돌며, 향병 인원 파악의 철저함이 엿보인다.

[의의와 평가]

「향병입약」은 임진왜란사에서 향병의 조직 체계의 엄정성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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