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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둔산동 고분군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20438
한자 大邱 屯山洞 古墳群
영어공식명칭 Ancient Tombs in Dunsan-dong, Daegu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고분
지역 대구광역시 동구 둔산동 산106|둔산동 산183-1|부동 산 410-3
시대 고대/삼국 시대
집필자 배성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소재지 대구 둔산동 고분군 - 대구광역시 동구 둔산동 산 106 지도보기
소재지 대구 둔산동 고분군 - 대구광역시 동구 둔산동 산 410-3 지도보기
소재지 대구 둔산동 고분군 - 대구광역시 동구 둔산동 산 183-1 지도보기
성격 고분군

[정의]

대구광역시 동구 둔산동 일대에 3개 지군으로 나누어진 삼국시대 고분군.

[위치]

대구광역시 동구 해안초등학교 동쪽으로 접한 나지막한 능선 일대에 대구 둔산동 고분군①[대구광역시 동구 둔산동 산106 일대]과 대구 둔산동 고분군②[대구광역시 동구 부동 산410-3 일대]가 이어져 분포하며, 대구 둔산동 고분군③[대구광역시 동구 둔산동 산183-1 일대]은 대구광역시 동구 둔산동 해안마을 동쪽의 대구광역시 동구 둔산로와 대구광역시 동구 둔산로68길 사이 능선 말단부에 분포하고 있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대구 둔산동 고분군은 아직 발굴 조사되지 않았다.

[형태]

대구 둔산동 고분군①에는 구릉의 능선을 따라 30여 기 정도가 분포하고 있다. 봉토 규모는 지름 5~10m 정도이다. 대부분 도굴되어 방치되어 있는데, 내부구조가 확인되는 고분은 굴식돌방[횡구식 석곽]으로 장축방향은 남-북향이다. 석곽 규모는 현 길이 4m, 폭 1.5m, 높이 1m 정도이고 천장에는 판석상의 뚜껑돌 5매를 덮었다. 벽면은 냇돌 및 깬돌을 이용하여 축조하였는데, 상부로 갈수록 돔 형식으로 둥그렇게 안쪽으로 기울어진다.

대구 둔산동 고분군② 역시 개간과 도굴로 파괴되어 있다. 봉토 규모는 10m 전후의 중형분과, 3~4m의 소형분 17기가 공존하고 있지만 과수원의 경작과 민묘들이 들어서면서 유적의 파괴가 심하다.

대구 둔산동 고분군③에는 봉분의 형태가 뚜렷하게 남아 있지 않고 석곽의 벽석재가 등고선 방향과 나란하게 확인된다. 대구 둔산동 고분군③ 북편 능선 정상부에서는 도굴된 봉분 2기가 확인된다. 봉분 규모는 지름 8m, 높이 0.6m 정도이며, 도굴구 주변으로는 뚜껑돌로 보이는 길이 60㎝, 폭 40㎝, 두께 15㎝ 정도의 장대석[길게 다듬어 만든 돌]이 노출되어 있다.

[출토 유물]

삼국시대의 굽다리접시[고배(高杯)], 굽은 있으나 뚜껑이 덮여 있는 접시[개(蓋)], 항아리 조각[호편(壺片)] 등이 지표에 흩어져 있다.

[현황]

대구 둔산동 고분군은 3개의 지군으로 구분되는데, 대부분 도굴과 개간으로 피해가 심각한 상태이다. 대구 둔산동 고분군①과 대구 둔산동 고분군②는 주변에 넓은 범위로 과수원 개간이 이루어져 봉토는 대부분 훼손되고, 덧널[석곽] 내부도 상당히 파손된 상태이다. 둔산동 고분군③도 중앙부는 과수원 개간 때문에 훼손된 상태이며 북쪽과 남쪽 일부는 산지를 형성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대구 둔산동 고분군은 인근 대구 불로동 고분군의 하위 고분군으로 보인다. 북쪽의 대구 도동 고분군, 남쪽의 대구 동내동 고분군과 연결 선상에 있다. 대구 둔산동 고분군은 6세기 이후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금호강불로천 유역에 자리한 삼국시대 둔산동 주민들의 집단무덤으로 판단된다. 삼국시대 당시 신라의 직접 지배를 받던 해안현(解顔縣)[현재 대구광역시 동구 해안동]일대의 소규모 단위 집단과 연계된 고분군으로서 의미를 지닌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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