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64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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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信明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유형 | 문헌/연속 간행물 |
지역 | 대구광역시 중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종헌 |
창간 시기/일시 | 1946년 - 『신명』 창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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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간행처 | 신명여자중학교 - 대구광역시 수성구 신천동로 364[수성동1가 96-16] |
성격 | 교내 신문 |
관련 인물 | 황윤섭|김사영 등 |
[정의]
대구광역시 수성구 수성동1가에 있는 신명여자중학교에서 발행한 교내 신문.
[개설]
『신명(信明)』은 해방 이후 대구에 있는 신명여자중학교(信明女子中學校)에서 발행한 교내 신문이다. 당시 대구에서는 일제강점기의 교우지[대구공립고등보통학교의 『교우회지(校友會誌)』, 계성중학교의 『계성(啓聖)』 등]와 다른 성격으로 문예부원을 중심으로 하는 학생 문예지가 발행되었다. 1948년 9월 1일 경북공립중학교 문예부에서 『새벽』 창간호를 냈고, 신명여자중학교에서는 『동산』 제1집과 제2집을 발행하였다. 이와 별개로 신명여자중학교에서는 교명과 일치하는 『신명』이라는 교내 신문을 발행하였다.
[창간 경위]
『신명』의 창간 경위와 배경은 현재 확인된 제3호를 통하여서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1948년 5월 1일 발행한 『신명』 3호의 발행인은 당시 대구 지역 문예 교사였으며 신명여자중학교 교장이었던 황윤섭(黃允燮)[1916~1951]이다. 인쇄는 태기사[대구부 계산동1가 26번지[현 대구광역시 중구 계산동1가]]로 되어 있다. 『규포시집((葵圃詩集)』[조선아동회, 1947]을 낸 황윤섭은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한 후 신명여자중학교 교사를 거쳐 1948년에 교장으로 취임하였다. 경북중학교 학생 이원희가 발행한 『학생시원』[1948]에 의하면 신명여자중학교 문예 지도교사는 김사영이다. 이 사실로 볼 때 『신명』의 발행과 신명여자중학교 교내 문예부 지도를 김사영과 황윤섭 등이 맡은 것을 알 수 있다. 황윤섭은 1948년 9월부터 1950년 1월까지 신명여자중학교 교장을 지내기도 하였다.
[형태]
『신명』 3호를 통하여서 그 짜임을 추론할 수 있다. 전체 4면의 타블로이드 판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1면은 학교 소식란[새로 오시는 선생님, 떠나시는 선생님, 경하할 탁구부의 첫 우승, 참새 소문, 편집을 마치고]이고, 나머지 2면, 3면, 4면은 모두 문예란으로 구성되어 있다.
[구성/내용]
『신명』 3호의 문예란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2면에는 학생 작품인 「박꽃」[5학년 노필희], 「이별」[5학년 박춘수]과 이은상(李殷相)[1903~1982] 시, 홍난파(洪蘭坡)[1897~1941] 작곡의 「봄처녀」, 3면은 박영종(朴泳鍾)[1916~1978] 작사, 김성도(金聖道)[1914~1987] 작곡의 「제비마중」이 실려 있다. 4면에는 학생 수필 「어머니」[3학년 김미자]와 「순이」[3학년 서옥석], 학생 시 「눈동자」[5학년 이복주]가 실려 있다. 이 사실로 미루어 보면 교내 신문 『신명』은 학교 소식을 전하는 것 이외에 문예면이 강조되었을 알 수 있다.
[의의와 평가]
해방 이후 대구 지역은 학생들의 문예활동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 『신명』은 교우지가 아닌 교내 신문의 형태로 발행되어 당시 학생들의 문예 창작을 적극적으로 지도·지원하여 학생 문단 형성에 기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