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9003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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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四秀亭 |
분야 | 생활·민속/생활,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서울특별시 도봉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민아 |
원소재지 | 사수정 - 경기도 양주시 해등촌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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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정자 |
[정의]
지금의 서울특별시 도봉구 지역인 경기도 양주시 해등촌면에 있던 정자.
[변천]
조선 후기의 문신인 어진익(魚震翼)[1625~1684]의 옛집이 해등촌면에 있었는데, 어진익의 아버지 어한명(魚漢明)이 양주(楊州) 해등촌면에 별장을 짓고 손수 향나무와 잣나무 각각 두 그루씩을 심어 놓았다. 그 나무가 자라서 모두 아름드리나무가 되었다. 어진익의 형제는 모두 4명이었는데, 1677년(숙종 3)에 어진익이 삼괴당(三槐堂)의 고사를 모방하여 그 사이에 정자를 지어 ‘사수정(四秀亭)’이라 편액을 써서 걸고 여러 자제들과 함께 날마다 그 안에서 읊조리며 유유자적하였다. 삼괴당의 고사란, 송나라 때 왕우(王祐)가 회화나무[槐] 세 그루를 뜰에 심고서 “내 자손 가운데 삼공(三公) 지위에 오르는 자가 반드시 나올 것이다.”라고 예언을 했는데, 과연 그의 아들 단(旦)이 재상에 올랐으므로, 뒤에 자손들이 거기에 삼괴당을 세웠다는 것이다.
어진익은 동부승지, 좌승지, 강원도 관찰사 등을 역임하였으며, 좌찬성에 추증되었다. 어진익은 친우인 남용익(南龍翼)[1628~1692]에게 사수정에 대한 시를 부탁했고, 남용익이 지은 시가 남용익의 문집인 『호곡집(壺谷集)』에 「사수정시(四秀亭詩)」라는 제목으로 실려 있다. 또한 서계(西溪) 박세당(朴世堂)[1629~1703] 역시 남용익이 지은 시의 운을 빌어 사수정 시 두 수를 지었으니 아래와 같다.
쌍단분식대쌍송(雙檀分植對雙松)[한 쌍의 자단과 한 쌍의 해송 마주 보게 나누어 심어]
대우화니수자봉(帶雨和泥手自封)[빗물 붓고 진흙 섞어 손수 북돋았지]
노간년심린갑추(老榦年深鱗甲皺)[늙은 줄기는 껍질의 주름 해마다 깊어지고]
청음주밀개당중(淸陰晝密蓋幢重)[맑은 그늘은 일산인 양 낮에도 짙게 드리웠네]
지지애일간소세(枝枝礙日干霄勢)[가지마다 해를 가리니 하늘에 닿을 형세이고]
엽엽릉상오설용(葉葉淩霜傲雪容)[잎마다 서리를 견디니 눈을 업신여길 자태로다]
사수불지환시수(四秀不知還是樹)[사수가 도리어 이 나무인지 알지 못하겠지만]
정중인야반순용(亭中人也半荀龍)[정자 속의 사람 또한 순룡의 절반이로다]
다라서축서증견(多羅西竺書曾見)[다라는 일찍이 서축의 불경에서 보았고]
오렵신농설상언(五鬛神農說嘗言)[오렵은 신농씨의 설에서 일찍이 말하였지]
수향산중구이종(誰向山中求異種)[산중에서 빼어난 종자 구한 이 누구인가]
응종해상득령근(應從海上得靈根)[해상에서도 신령한 뿌리를 얻었겠지]
미론탁수수범식(未論擢秀殊凡植)[우뚝하게 자람 일반 식물과 다름은 말할 것도 없고]
이각교음편일헌(已覺交陰遍一軒)[우거진 그늘 정자 하나를 덮을 줄 이미 알았네]
경청주인근취자(更請主人勤取子)[다시 주인에게 청하노니 부지런히 씨앗을 취해]
사주유가만운손(四株猶可萬雲孫)[네 그루가 외려 수많은 후손으로 번성하게 하기를]
[의의와 평가]
현재 사수정은 남아 있지 않으며, 전하는 기록으로도 정자의 형태 역시 알 수 없다. 그러나 자연 속에서 유유자적하며 자손의 번성을 바라던 사수정의 숨은 의미는 느낄 수 있다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