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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선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200236
한자 京仁線
영어공식명칭 Gyeongin Line
이칭/별칭 경인철도,수도권 전철 1호선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도로와 교량
지역 서울특별시 동작구 노량진동|대방동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전창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준공 시기/일시 1899년 9월 18일연표보기 - 경인선 준공[노량진~제물포 구간]
증설|폐설 시기/일시 1900년 7월 8일 - 경인선 연장 개통[경성~제물포 구간]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05년 1월 1일 - 경인선 단축[구로~제물포 구간]
전구간 경인선 - 서울특별시|경기도 부천시|인천광역시
해당 지역 경유 구간 경인선 - 서울특별시 동작구 노량진동|대방동지도보기
성격 철도
길이 27.0㎞
차선 복복선
1,435㎜[표준궤]

[정의]

서울특별시 중구에서 동작구를 거쳐 인천광역시를 연결하는 철도.

[명칭 유래]

경인선(京仁線)은 서울과 인천을 연결하는 철도로 경인철도합자회사(京仁鐵道合資會社)에서 완공 후 개통하여 처음에는 회사 이름을 따서 ‘경인철도(京仁鐵道)’라고 불렸다가 이후 일본으로의 국유화가 진행된 1906년 이후부터 서울을 뜻하는 ‘경(京)’ 자와 인천의 ‘인(仁)’ 자를 합쳐 ‘경인선’으로 불리기 시작하였다.

[제원]

최초의 경인철도는 Mogul-tank형 증기기관차 4량, 객차 6량, 화차 28량에 전체 종업원 119명으로 영업이 시작되었다. 현재 경인선의 길이는 구로역~인천역 구간 27.0㎞이고 궤간은 1,435㎜[표준궤]이다.

[건립 경위]

경인선은 조선 말 서양 문물을 수용하면서 서울의 산업발전을 위해 1883년에 개항한 제물포 항구와 서울을 연결하는 대량수송 수단의 필요성으로 인해 건설되었다.

경인선은 1896년 미국인 모스(Morse, J.R.)가 부설권을 얻고 1897년(고종 34) 3월 22일 우각현에서 ‘경인선 공사 착공식’을 거행하였다. 그러나 모스가 자금조달에 실패하면서 경인선을 완공시키지 못하였고 1898년 부설권을 양도하였다.

부설권을 인수한 일본 회사인 경인철도합자회사는 1899년 4월 두 번째 기공식을 가지고 1899년 9월 18일 약 33.8㎞의 서울 노량진~인천 제물포 구간 ‘경인선 개통식’을 통해 조선철도시대를 열었다.

경인선의 개통은 근대적 교통 기관의 도입이라는 긍정적인 부분도 있었지만 구미 열강과 일본의 제국주의가 우리나라에 본격적으로 침투하게 되는 발판을 마련하게 되는 역사적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1900년 7월 5일 한강철교의 준공과 더불어 철로 연장 공사를 끝냄으로써 7월 8일에 경성역~인천역 간의 전 구간 경인선이 개통되었다.

경인철도합자회사는 경인선을 운영하기 위해 1899년 6월 인천에 철도공장을 설립하였다. 이 철도공장에서는 경인선에 사용되는 철도차량의 조립, 수리 및 유지·보수를 담당하였다. 이후 인천의 철도공장은 1906년 경의선을 서비스하기 위해 생긴 용산철도공장과 합병되어 폐지되었다. 일본은 조선철도를 서비스하기 위해 7곳에 철도공장을 세웠으며, 철도차량 조립, 부품 생산, 수리 및 유지·보수하는 일을 담당하였다.

[변천]

경인선은 1899년 9월 18일 노량진~제물포 노선이 개통된 후 이듬해인 1900년 한강철교가 준공되면서 노량진~서울 노선이 연장되어 서울과 인천이 철도로 연결되는 시대가 열리게 되었다.

개통역의 변천을 살펴보면, 처음에는 제물포(濟物浦)[Chemulpo], 유현(杻峴)[Saalijy, 1926년 4월 상인천, 1955년 8월 동인천역으로 변경], 우각동(牛角洞)[Sopple, 1906년 폐지], 부평(富平)[Poopyong], 소사(素砂)[Sosha, 1972년 7월 부천역으로 변경], 오류동(梧柳洞)[Oricle], 노량진(鷺梁津)[Nodd] 등 7개 역으로 개통하였다.

이후 1900년 용산(龍山)[Yungsan], 남대문(南大門)[South gate, 1923년 1월 경성, 1947년 11월 서울역으로 변경], 경성(京城)[Seoul, 1905년 3월 서대문역으로 변경, 1919년 3월 31일 폐지] 등 3개 역이 연장되었다.

특히 노량진역은 서울로 진입하기 위한 화물의 물동량에 의해 급격한 발전을 이루게 되었으며, 노량진역의 역할이 증대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점차 영등포 주변에 공장지대가 자리하면서 그 역할을 영등포역으로 넘겨주게 되었으며, 특히 한강철교가 1900년에 설치되면서 중간역의 역할로만 남게 되었다.

해방 이후에도 노량진은 통과역이나 간이역의 형태를 취하고 있었으며, 그 이전에 맡고 있던 역할은 영등포역과 용산역으로 전환되면서 그 역할은 축소되었다. 경인선은 1960년대 이후 급속히 진전된 공업화와 도시화에 따라 수도권의 기능지역이 평면적으로 확대되어 가면서부터 경인선은 서울~인천을 연결하는 경기도 서부 지역의 발전축으로서 구실을 하게 되었다.

경인선은 처음에 화물을 주로 운반했지만 점차 서울과 인천을 연결하는 교통수단이 되었고 수요가 증가하면서 1960년대에 복선화가 이루어졌다. 1965년 9월 인천과 영등포 사이에 복선 노선이, 영등포~용산 간 및 용산~서울 간의 복선 공사는 1969년 6월과 9월에 각각 개통되었다.

1974년 8월 15일 수도권 전철화 계획으로 비둘기호 운행을 중지하고 구로~인천 간 27.0㎞ 구간이 전철화되었고, 1999년 1월 29일부터는 인천 부평과 서울 용산 사이에 급행열차가 운행되었다. 2002년 3월 부평~주안 구간의 복복선 구간을 확장하고, 2005년 말에 주안~동인천 구간의 공사가 완공되면서 인천역까지 급행열차가 운행되고 있다.

[현황]

경인선은 2020년 현재 용산~인천 구간에 21개의 역이 있으며, 용산~동인천 사이에 복복선이 완료되어 급행열차가 운행되고 있다. 급행열차는 용산역~구로역까지는 각 역마다 정차하며, 구로역에서 동인천역까지는 수도권 전철 1호선 구간 중에서 개봉역, 역곡역, 부천역, 송내역, 부평역, 동암역, 주안역, 제물포역에만 정차한다.

소요시간은 구로~동인천 간 32분으로 서울의 통근권을 확대시켰으며, 서울과 인천을 연결하는 중요한 대중교통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동작구 소재 노량진역은 2020년 현재 경인선 전철의 주요 역으로 자리 잡음으로써 동작구를 비롯한 서울·경기도 지역의 교통 소통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

한편 일각에서는 경인선의 시발지를 인천역으로 봐야 한다는 주장이 있으나 노량진역 역사 내부에는 1975년 9월 18일 철도청에서 세운 철도시발지 기념비가 서 있다. 기념비에는 당시 국무총리 김종필이 쓴 휘호와 시인 서정주가 작성한 비문이 새겨져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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