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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200452
한자 觀象監 測雨臺
영어공식명칭 Pedestal for rain gauge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물/유물(일반)
지역 서울특별시 동작구 신대방동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엄기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제작 시기/일시 조선 초기 - 세종 대 측우기 제작 시점 추정, 북부 광화방 관상감에서 사용, 경복궁 안으로 이전. 매동초등학교 교정에 남게 됨
이전 시기/일시 1972년 11월 8일 - 관상감 측우대 서울특별시 종로구 매동초등학교에서 국립중앙기상대로 이전
문화재 지정 일시 1985년 8월 9일연표보기 - 관상감 측우대 보물 제843호 지정
현 소장처 국립기상박물관 - 서울특별시 종로구 송월길 52[송월동 1-1]
원소재지 기상청 - 서울특별시 동작구 여의대방로16길 61[신대방동 460-18]지도보기
원소재지 서울 매동초등학교 - 서울특별시 종로구 사직로9길 19[필운동 32]
성격 조선시대 유물
재질 화강암
크기(높이,길이,너비) 높이 87.6㎝|세로 59.7㎝|가로 94.5㎝
소유자 국유
관리자 국립기상박물관
문화재 지정 번호 보물 제843호

[정의]

서울특별시 동작구 신대방동 기상청에서 보관했었던 조선 전기 제작된 측우기의 받침석.

[개설]

관상감 측우대는 측우기를 세웠던 화강암 대석으로 원래 서울특별시 종로구에 위치한 서울 매동초등학교 교정의 한 구석에 있던 유물이다. 1972년 11월 8일에 서울특별시 동작구 신대방동의 국립중앙기상대로 옮겨 소장하고 있다가 서울특별시 종로구 송월동의 국립기상박물관으로 옮겨 소장하고 있다. 관상감 측우대, 즉 받침석은 조선 초 세종 연간에 측우기(測雨器)를 처음 제작할 때에 함께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당시 한양의 북부(北部) 광화방(廣化坊)에 있었던 관상감에 설치한 측우기의 대석일 것으로 추정된다.

관상감 측우대는 1985년 8월 9일 보물 제843호로 지정되었다.

[형태]

관상감 측우대는 철로 만든 원통형의 측우기를 올려놓고 사용한 화강암 대석이다. 높이 87.6㎝, 세로 59.7㎝, 가로 94.5㎝의 직육면체 측우대로, 가운데에 직경 16.5㎝, 깊이 4.7㎝로 구멍이 파져 있어, 그 위에 측우기를 올려놓았음을 알 수 있다.

[특징]

관상감 측우대는 본래 서울 매동초등학교의 교정 한 구석에 있었는데, 매동초등학교는 1934년까지 경복궁 내의 대루원(待漏院) 금부직방(禁府直房) 터에 위치한 학교였다. 이곳은 조선 후기인 고종(高宗) 초년에 경복궁을 재건한 이후에도 지금의 종로 일대인 북부 광화방에 있던 관상감이 이전하여 자리한 곳이다. 이후 학교를 서울특별시 종로구 필운동 일대로 이전하면서 교정에 있던 관상감 측우대도 함께 가져와 교정에 두게 되었다고 전한다.

이를 통해 관상감 측우대가 원래 관상감이 북부 광화방 자리에 있을 때부터 측우기를 설치하여 사용하였던 대석이었고, 경복궁을 재건한 이후 경복궁으로 옮겨 놓았음을 알 수 있다. 광화방의 관상감 터는 조선 초기 관상감이 설치된 이후부터 줄곧 관상감이 자리잡았던 곳이다. 따라서 이 측우대는 세종대 측우기를 만든 이후부터 대석으로 사용한 것으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측우대라고 할 수 있다. 측우대 위에 있던 원래의 측우기는 전란 등에 의해 유실된 것으로 보인다.

[현황]

서울특별시 종로구 송월길 52[송월동 1-1]에 있는 국립기상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관상감 측우대의 제작연대를 알 수 있는 명문 등은 전하지 않는다. 하지만 관상감 측우대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측우대로 추정된다. 조선 4대 국왕인 세종 대에 처음 측우기를 제작하였을 때 관상감 측우대도 함께 제작되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따라서 세종 대에 세계 최초로 측우기를 제작하고 우량을 측정하였음을 증명해주는 유물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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