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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200670
한자 田明雲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서울특별시 동작구
시대 근대/근대,현대/현대
집필자 장경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84년 5월연표보기 - 전명운 출생
수학 시기/일시 1902년 - 전명운 한성학교 입학
활동 시기/일시 1908년 - 전명운 스티븐스 저격
몰년 시기/일시 1947년 11월 18일연표보기 - 전명운 사망
추모 시기/일시 1962년연표보기 - 전명운 건국훈장 대통령장 추서
관련 사건 시기/일시 1908년 - 전명운 스티븐스 저격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대표 경력 맨티카지방회 회장

[정의]

서울특별시 동작구 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된 독립운동가.

[개설]

전명운(田明雲)[1884~1947]은 미주 한인지역에서 분리되어 있었던 여러 단체들이 통합하여 대한인국민회가 탄생하게 되는 결정적 사건[스티븐스를 사살]에 기여하고 이후 미주한인독립을 위해 많은 노력을 했던 독립운동가이다.

[가계]

아버지는 전성근이고, 어머니 전주 이씨이다. 부인은 한양 조씨조순희, 딸은 전경영[마가렛 전 표]이고, 사위는 이태모이다.

[활동 사항]

전명운은 1884년 5월생으로 아버지 전성근 , 어머니 전주 이씨 사이에서 3남 중 둘째아들로 태어났다. 서울에서 상업에 종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전명운은 미국 유학을 목적으로 하여 하와이에 1903년 9월 21일에 도착했고, 한인들이 가장 많이 사는 오아후섬 사탕수수농장에 배치되었다.

전명운은 공립협회에 참여하여 국권회복을 위한 토론회에 참여하였고, 알래스카 어업에 종사할 인부 모집을 주선하고 있던 중 스티븐스가 미국으로 돌아와 여전히 일본의 한일강제병합이 한국에 이로움을 가져다주었다는 발언을 한다는 것을 듣고 스티븐스를 사살하기로 결정했다. 1908년 전명운은 신문의 스티븐스 사진을 챙겨 권총을 챙기고 샌프란시스코에서 워싱턴으로 가려는 스티븐스를 사살하기 위해 권총을 발사했으나 불발하여 얼굴을 가격하였다. 이에 스티븐스가 저항하자 곁에 있던 장인환이 다시 스티븐스를 사살하기 위해 총을 쏘자 전명운도 맞고 스티븐스도 맞았다. 전명운은 수술을 받고 완쾌되었고 스티븐스는 사망하였다. 이를 두고 재판이 열렸고, 신흥우가 변호하였다.

전명운은 보석으로 풀려났고 잠시 피신을 위해 베를린을 거쳐 모스크바, 블라디보스토크로 갔다. 연해주 한인들은 전명운을 환영하였다. 이후 뉴욕으로 갔다가 캘리포니아로 돌아왔고 맨티카 지방에 정착하여 세탁업을 했다. 이후 맨티카지방회 회장을 맡고 독립운동 자금 후원을 하다가 1947년 11월 18일 사망하였다.

[묘소]

1994년 국립서울현충원 애국지사묘역에 안장되었다.

[상훈과 추모]

1962년 대한민국 정부는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수여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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