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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201325
한자 冠禮
영어공식명칭 coming-of-age ceremony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의례/평생 의례와 세시 풍속
지역 서울특별시 동작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서모란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통과의례
의례 시기/일시 남아가 15세를 넘은 후 택일

[정의]

서울특별시 동작구에서 남자가 성년이 된 것을 기념한 전근대시기 유교식 의례.

[개설]

관례(冠禮)는 조선 시대 남자 아이가 성인이 된 것을 의미하는 의례(儀禮)이다. 관례를 통해 남자아이는 땋았던 머리를 풀고 상투를 틀고 갓을 쓰게 되는데 이로써 성인이 된 것으로 간주된다. 갓[冠巾]을 씌우는 의식이라 ‘관례’라고 부른다. 관례를 치른 사람은 아무리 나이가 어려도 관례를 치르지 못해 댕기머리를 그대로 두고 있는 사람에게 어른 대접을 받았다고 한다. 여자의 경우 쪽을 지고 비녀를 꽂는데 이를 계례(笄禮)라고 한다. 계례는 여자가 15세가 되면 치르는 경우도 있었지만 대부분 혼례와 함께 치렀다.

[연원 및 변천]

관례는 고려 광종 16년(965년)에 왕자에게 행한 것을 시작으로 상류층에서 주로 치르던 의례이다. 중국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조선 시대 일부 부유층의 경우 혼례보다 관례를 더 성대하게 치르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점차 혼례에 흡수되면서 혼례 중에 치르거나 관례를 생략한 후에 혼례를 치르는 경우가 많아졌다. 또 을미개혁 이후 단발령이 시행되면서 남자들이 상투를 틀 긴 머리를 유지하는 것이 불가능하자 자연스럽게 관례가 사라진 것으로 보는 의견도 있다.

[절차]

『주자가례(朱子家禮)』에 따르면 남자 나이 15~20세까지 관례를 치르는데, 이 절차는 관례가 치러질 날을 기준으로 3일 전부터 시작된다. 『주자가례』에 따른 관례의 절차는 다음과 같다. 3일 전에 주인(主人), 즉 당사자의 부친이나 조부가 사당에 아뢴다. 그 다음으로는 빈객(賓客)을 청하고 의례를 위한 용품과 의복을 진설한다. 관례 당일에는 삼가례(三加禮)를 치르는데 이 과정에서 빈객이 관자(冠者)에게 자(字)를 지어준다. 주인이 관자를 데리고 사당에 가서 알현한다. 다음으로 부모, 웃어른께 절을 올린다. 마지막으로 빈객을 접대하며 향선생(鄕先生)과 아버지 친구 분들께 인사를 드린다.

[생활 민속적 관련 사항]

관례는 관혼상제(冠婚喪祭) 중 첫 번째 의례이며 이 의례들 중 가장 먼저 사라진 의례이기도 하다. 『동작구지』[1994]에 따르면 1910~1920년대에 출생한 남성 구술자들은 관례를 치르지 않았다. 구술자들은 그 이유에 대해 일제강점기 단발령으로 인해 관례를 치르는 의식 중 가장 중요한 상투틀기가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라고 응답하였다. 1918년 출생한 한 구술자[이재선, 동작구 흑석동]는 관례는 치르지 않았으나 7세 때 사당에 예를 올리는 것으로 관례를 대신했다고 한다. 이 구술자는 어린 시절 주변에서 관례를 치르는 경우를 보았다고 응답하였는데, 보통 양반가에서 남아 17~18세가량 되었을 때 친지를 모시고 관례를 치른다고 하였다. 이를 통해 1920년대까지만 해도 관례 의례가 일부 남아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1980년대 이후부터 최근까지 성균관, 운현궁, 전주 경기전 등에서 관례를 재현하는 이벤트가 개최되기도 했다. 최근 젊은 층 사이에서는 관례 대신에 매년 5월 셋째 주 월요일을 ‘성년의 날’로 기념하고 축하한다. 성년의 날 제정에 대한 논의는 1960년대부터 있었다. 1967년 국책문제연구중앙회가 주관하여 6월 24일을 성년의 날을 기념하기 시작했는데 1969년까지 3회의 기념행사를 치렀다. 1970년 문화공보부는 4·19정신을 기념하여 4월 19일을 성년의 날로 제정하기로 논의를 시작했다. 이후 1973년, 날짜를 24절기 중 하나인 곡우[4월 20일]로 변경하고 성년의 날을 공식적으로 제정하여 발표하였다. 이후 두 차례 날짜가 변경되어 현재에 이르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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