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1020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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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民俗 |
영어의미역 | Folk Customs |
분야 | 생활·민속/민속,문화유산/무형 유산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
지역 | 충청북도 음성군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정기범 |
[정의]
충청북도 음성군에 전해 내려오는 민간의 생활 습속.
[개설]
민속은 민중에 의하여 역사적으로 전승되어 온 전통으로 민중 일반의 경제적·사회적·종교적·예술적 생활 형태와 내용을 말하며, 서민 사회에서 전승되는 하층 문화, 더 나아가 기층 문화를 뜻하는 것이고 따라서 민속이란 상층보다 기층에, 도시보다는 농촌에 더 많이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민속은 본래 민간 신앙 행사인 집단 신에게 무사태평과 오곡 풍성을 기원하는 신사행위(神事行爲)의 하나로 그것에 부수되었던 예능이었다. 신전에서의 여러 행사가 후대로 내려오면서 민간에 유포되고 보편화됨으로써 그 원래의 신성성(神聖性)이 약화되고 오히려 오락성이 강화되어 마침내 신사와는 관계가 적은 일반 민중의 놀이가 되었다. 따라서 민속은 제의성·향토성·예술성 등의 성격이 포함되어 있다.
[자연지리적 배경]
음성 지역의 민속은 자연지리적 환경에 강한 영향을 받았다고 볼 수 있는데 산간 지역과 하천 유역에서 서로 다른 특징을 갖는 민속이 형성되어 있다. 지리적으로 남한강과 금강의 상류 지역으로. 한강과 금강의 분수령이며 북동부는 남한강 수계이며 남서부는 금강 수계에 속하고 있다.
음성의 남동부는 가섭산과 부용산, 보현산 등과 접하고 있어 산간 문화가 주된 양상을 보이고 있으며, 북부 지역은 청미천과 인접하고 있으며, 원통산과 오갑산, 수레의산 등과 접하고 있어 수변 문화와 산간 문화가 같이 존재하고 있다. 서부 지역은 금강 수계에 속하며 미호천의 상류에 위치하고 있어 넓은 평야 지대로서 농경 문화가 존재하고 있어 두레와 풍물이 성행하였다.
따라서 음성 지역의 민속은 산간 지역에서는 동제 성격이 강한 산신제가 많이 전승되어 오고 있으며, 북부 지역에서는 마을의 축제 성격과 지신밟기 성격의 민속놀이문화인 거북놀이와 가재줄다리기가 전승되고 있다. 그리고 서부 지역에서는 풍물이 강세를 보이며 전승되고 있는 특징을 나타낸다.
[통과의례]
1. 출생의례
음성 지역에서의 출생의례는 산전 풍속과 산후 풍속으로 나누어진다. 산전 풍속은 주로 산모가 가족들이 지켜야할 금기의 내용을 담고 있으며 전통적으로 아들을 선호했던 문화의 영향으로 아들을 낳는 기원, 금기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산후 풍속으로는 산모와 아이에 대한 여러 가지 금기 및 민간 신앙 등의 형태로 전해지고 있다. 또한 백일과 돌에 대한 내용도 포함하고 있다.
2. 성년의례
성년의례는 아이에서 성인이 되는 성인 의식이다. 관례는 성년이 된 남자에게 상투를 틀고 갓을 씌우고 자(字)를 지어주는 의례를 말하며, 계례는 성년이 된 여자에게 머리를 틀고 비녀를 꽂아 주는 의식이다. 관례는 갑오경장 이후로 단발령으로 머리를 자르면서 폐지되었고, 계례도 쪽머리가 사라지면서 사라졌다.
해방 이후 남녀의 나이가 만 21세가 되면 법률적으로 성년이 되므로, 정부에서 1973년에 4월 20일을 성년의 날로 제정하여 성년식을 거행하였으며, 1975년에는 5월 6일로, 1984년에는 5월 셋째 일요일로 성년의 날을 바꾸었다. 오늘날은 만 20세가 되는 청소년들에게 가정·학교·사회에서 성년 의식을 거행해 주고 있다.
3. 혼례의례
혼례는 엄격한 절차에 따라 거행됐다. 우리나라 『사례편람(四禮便覽)』에는 의혼(議婚)·납채(納采)·납폐(納幣)·친영(親迎)이라는 4개의 복잡한 의식 순서가 정해져 있다.
4. 회갑(回甲)
만 60세가 되면 갑연(甲年)이 다시 돌아 왔다하여 회갑이라고 하고 그 잔치를 수연(壽筵)이라 한다. 회갑이라는 말은 환갑(還甲), 주갑(周甲), 화갑(華甲) 또는 화갑(花甲)이라고도 한다. 수연은 생일에 하는 것이 원칙이나 사정에 따라서는 다른 날짜를 고르기도 하고 초청은 초청장을 내거나 인편에 한다.
수연은 할 만한 형편이면 하고 그렇지 못하면 아니하여도 무방한 것으로 되어 있다. 수연 상은 여러 가지 음식을 보기 좋게 괴어 큰 상에 놓는데 이것을 제상과 같이 일정한 법도가 예문(禮文)에 있는 것이 아니고 가문의 습속에 따라 차린다. 갑년(甲年)을 맞은 당사자 부부가 그 상 앞에 앉아 자녀들의 술잔을 받는다.
5. 상례(喪禮)
사망 의례는 죽은 사람을 장사지내는 의례로 옛날에는 장례라고 했으나 지금은 장례식이라고 하는데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사망 의례는 조선시대부터 행해온 임종(臨終)·복존(復尊)·습렴(襲殮)·입관(入官)·출빈(出殯)·치산(治山)·흉제(凶祭) 등 유교식으로 진행하며 거기에 고유한 장속(葬俗)이 혼합되어 다른 통과의례보다 복잡하고 보수적이다. 상장(喪葬)의 의례는 망자의 영혼을 부르고 위로하여 명복을 빌어 재앙을 없게 하려는 데서 시작되었다.
6. 제례(祭禮)
전통 제례는 조상에 대한 존경과 애모를 나타내는 것으로 유교 사상에서 비롯된 효를 바탕으로 하는 유교적 의례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오랫동안 4대 봉사(四代奉祀)로 제사를 지내왔는데, 고조(高祖)·증조(曾祖)·조(祖)·고(考)의 4대이다. 기일에 지내는 기제, 정초·단오·한식·추석 등 명절이나 조상의 생일에 조상에게 지내는 차례, 철에 따라 1년에 4번 드리는 사시제(四時祭: 절제), 산소를 찾아가 드리는 묘제·성묘 등의 제사가 있다.
[세시풍속]
세시풍속은 절기별로 행해지는 민간의 여러 전통을 의미한다. 매월 그 절기에 따른 행사와 놀이, 신앙 활동 등 다양한 풍속들이 전해지고 있으나 현재는 이러한 세시풍속을 따라 지키는 곳은 거의 없다. 단지 전통에 대한 기록은 남아 있으며 현재도 금기시되는 몇몇 전승은 남아있다.
[민속놀이]
전승되는 민속놀이는 다양한데 주로 절기에 따라 행해지는 놀이와 평상시에 행해지는 놀이, 개인놀이와 집단놀이 등이 있다. 전승되는 민속놀이로는 윷놀이·널뛰기·연날리기·제기차기·그네뛰기·씨름·팽이치기·꼬니(꼬누)·비석치기·공기놀이·썰매타기·자치기·딱지치기 등이 기본 놀이이다.
또 못치기·바람개비돌리기(팔랑개비)·땅빼앗기·봉숭아 물들이기·글자찾기·가마타기·실뜨기·엿치기·그림자 만들기·잔디싸움·방아깨비놀이(항가치놀이)·풍뎅이돌리기·두꺼비집짓기·말타기(말뚝박기)·숨박꼭질·기마전·진(찜)깡통차기 등도 많이 행해지는 놀이이다.
그 밖에 깨금발놀이·꼬리잡기 놀이·수건돌리기·남대문놀이·사방치기·구슬치기·흙뺏기·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고무줄놀이·줄넘기·오재미·핀치기·소꿉장난·여우놀이·기차놀이·다리헤기·쌔쌔쌔·릴리리 놀이·8자 놀이·오징어·오징어8자 등이 있다.
[거북놀이]
음성거북놀이는 충청북도 음성 지역의 대표적 민속놀이로서 1930년대 일제강점기에 중단될 때까지 비교적 변화 없이 이 지역 나름대로 특성을 보이며 전승되어 온 전통민속놀이이다. 그러나 중단된 지 60~70여 년이 지난 지금은 거의 연희가 안 되며 기억에서 잊혀 지고 있는 실정이다. 다행히 1980년대에 재현되어 전국민속경연대회에 참가한 이후 오늘날까지 약 20년 동안 전승되고 있다.
거북놀이는 한해의 풍요에 감사하여 추석날에 마을 사람 모두가 참여하여 수수잎·옥수수잎·왕골·볏짚 등의 재료로 거북이를 만들고 거북이와 같이 온 마을 사람들이 함께 놀게 되는 집단놀이로서 한해의 풍요로운 수확에 감사를 드리는 집단놀이뿐만 아니라 민속 신앙의 기능도 함께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거북은 신령스러운 동물이며 인간에게 복을 주는 길한 짐승으로 천수를 누리는 장수 동물이며 용왕의 아들이라고 믿어 주변에 많은 무속적 이야기 및 주술적 매체로 등장하고 있어 우리 민족에게 친근감을 주는 동물이다. 1년에 한 번씩 거북이를 위함으로써 거북이가 오래 살고 병 없는 동물인 것처럼 마을 사람들의 무병장수를 빌고 마을의 잡귀를 쫓아내고 마을의 각 집안에 재액을 몰아내며 평안을 누릴 수 있다는 거북 숭배의 무속적 발상으로 볼 수 있다.
[가재줄다리기]
가재줄다리기는 음성군 감곡면 사곡리 톡실에서 전승되는 민속놀이로, 예전에는 사곡리 토광곡(土廣谷)[톡실과 너른골] 퉁수바위고개의 서낭당에서 정월 대보름날 서낭제를 올린 후 마을 사람들이 마을로 내려와 잔치를 하면서 즐기는 놀이이다.
사곡리 톡실은 음성군과 충주시가 경계를 이루는 원통산 북쪽 산자락에 위치한 마을로, 동서남북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마치 자연의 병풍을 두른 듯한 작고 조용한 전형적인 시골마을이다. 가재줄다리기는 마을 사람들이 큰 줄다리기를 하였는데, 아이들은 어른들과 같이 큰 줄다리기를 하지 않고 그에 앞서 가재 줄다리기를 하였다. 줄다리는 모습이 마치 가재와 같다 하여 가재줄다리기라 하였다 한다.
가재줄다리기는 길이 4~5m의 긴 새끼줄의 끝을 묶어, 새끼줄 안의 양쪽에 한 명씩 들어가 새끼줄을 목에 걸고 양발 사이로 넣어 가랑이와 사타구니 밑으로 빼서 줄을 당기는 놀이로 상대 아이가 넘어지거나 많이 당긴 쪽이 이기는 놀이이다.
이러한 줄다리기는 전국 어디에서도 조사된 예가 없으며, 가재줄다리기와 줄을 당기는 모습이 비슷한 놀이로는 경남 밀양의 게줄다리기, 경남 함양의 거북이 힘내기 등이 있다. 가재줄다리기는 톡실의 맑은 계곡에 가재가 많이 살고 있어서 가재가 줄다리는 모습을 형상화한 놀이인 듯하다.
가재줄다리기는 일반줄다리기가 치열한 힘겨루기, 승패가 중시되는 것과 비교되어 아이들에게 승패보다는 운동을 통한 건강을 기원하며, 아이들이 땅에 엎드려 함으로써 지신(地神)에 대한 신앙적 의미도 있다고 본다.
[인동장씨 혼례식]
1962년에 음성군 감곡면 단평2리 복자동에서 인동장씨의 혼례식이 있었는데 그 내용이 자세하여 음성 지역의 혼례 풍속을 잘 보여주는 실례이다. 인동장씨는 21살에 같은 나이의 평양조씨와 친척의 중매로 혼례를 하게 되었다. 신랑네는 삼성면 냇걸음, 신부집은 단평2리 복자동에서 농사를 짓고 살았다. 친척의 중매로 두 집안의 어른들은 의견을 나누고 혼례를 하기로 합의하였다.
그래서 신랑과 신부는 얼굴도 한 번 보지 못 한 채 부모님의 권유에 따라 결혼을 하게 되었다. 혼인 의사가 합의된 후 신랑집에서는 신부집에 사주 보따리를 보냈다. 사주는 신랑의 생년월일시를 종이에 쓴 사주단자(四柱單子)를 신부집에 보내는 것으로, 혼인을 청하는 의식이다.
사주를 보낼 때 신랑집에서 생각하는 혼례날을 잡아서 보냈다. 사주를 넣은 봉투는 저고릿감에 싸고, 청실·홍실을 감은 수수깡과 함께 청홍색 겹으로 만든 보자기에 싸서 보냈다. 사주와 함께 보내는 저고리 1벌은 신부가 결혼하기 전까지 입으라는 의미로 보내는 것이다. 사주 보따리는 신랑측 작은 아버지가 들고 왔다.
사주 보따리를 받은 신부집 부모님들은 의관을 정제하고 받은 사주 보따리를 상에 올려 놓고 보따리를 풀어 헤친다. 상에는 정화수를 담은 주발을 올려놓는다. 함은 신랑의 초행길에 친구들이 메고 왔다. 함 안에는 혼인 계약서, 치마 저고리 9벌, 두루마기 9벌을 넣었다.
함을 진 함진애비는 첫아들을 낳고 복이 있는 신랑 친구가 메었는데 그를 “복수”라고도 부르고, 얼굴에는 숯검정을 묻혔다. 신랑은 가마를 타고 후행하는 사람들은 걸어서 신부집으로 왔다. 후행은 신랑의 삼촌이 왔다. 혼례 예정 시간보다 일찍 도착한 신랑은 신부의 친척집에 잠시 머무르고, 함은 신부집으로 먼저 들어간다.
함을 받은 신부 어머니는 상에 함을 올려놓고 함 안에 손을 넣어 빨간 치마를 꺼냈다. 빨간 치마는 밝음을 상징하는 붉은 색이기에 좋다고 하며, 남치마는 붉은 치마보다 덜 좋다고 여긴다. 혼례 시간인 12시가 되어 신랑은 신부 마을에서 준비한 혼례복을 입었다. 혼례복은 사모관대(紗帽冠帶)라고 달리 부르며, 마을 공동 소유였다.
신랑이 신부의 친척집에 대기하고 있다가 신부집으로 가는 길목에 이웃사람들이 잿꾸러미를 만들어 신랑에게 던졌는데 이는 악귀를 쫒기 위한 방편이었다고 한다. 대례상 밑에는 멍석을 깔고 돗자리 밑에 콩을 깔았으나 눈치 빠른 신랑은 넘어지지 않았고, 주위 사람들은 신랑이 약고 조신하다고 한마디씩 했다고 한다.
초례청에 도착한 신랑은 신부와 백년해로를 하겠다는 의미로 나무기러기를 몸 아래위로 세 번 옮긴 후, 전안상에 올려놓고 절을 한다. 진행자가 ‘기러기 받아 가시오’ 하면 장모는 치마 안으로 기러기를 숨기고서 신부가 앉을 방에 놓고 날아 가지 말라는 의미로 떡시루로 덮는다. 이 기러기는 신랑집에 갈 때 가져간다. 신혼 부부가 기러기처럼 한평생 금실 좋게 살라는 의미이다.
전안례를 마치고 대례청에서 신랑과 신부는 혼례 의식을 한다. 대례상(大禮床)을 사이에 두고 신랑은 좌측에, 신부는 우측에 선다. 이것은 남좌여우라는 사상 때문으로 보통 신랑이 대문 쪽에 서게 된다. 대례상에는 용떡·팥·밤·대추 물 등을 차린다. 신랑과 신부가 제자리에 서고 신랑과 신부가 절을 한다. 이것을 교배례라고 하는데, 신부가 먼저 절을 하면 신랑이 답례를 한다.
이때 신부는 재배(再拜), 신랑은 일배(一拜)를 한다. 신부 장씨는 신랑 얼굴을 한 번도 못 본 처지라 신랑 몸은 잘생겼는지 살짝 살펴보았고, 신랑도 맞절 할 때 신부의 얼굴을 훔쳐보았다고 한다. 이 절차가 끝나면 합근례를 올린다. 주위에서 시중을 드는 수모와 대반이 신랑에게 먼저 술을 따라준다.
신랑이 술을 다 마시면 그 다음 신부에게 따라 준다. 술잔을 세 번 교환하는 것으로 합근례를 마치면, 닭을 들고 있던 사람들이 닭을 날려보내 신랑 신부의 앞날을 축원한다. 이로써 혼례가 끝나고 신부와 신랑은 안방으로 들어간다. 당시 혼례 시간은 약30분 정도 걸렸다.
혼례가 끝나면 신랑은 겉에 걸친 사모관대를 벗고 두루마기 차림으로 있으나, 신부는 초야를 치를 때까지 족두리와 예복(원삼)을 벗을 수 없다. 신부의 이러한 고통을 색시놀음이라고 부른다. 잠시 후 국수와 술상이 들어오고 신랑과 신부는 식사를 한다. 그러나 신부는 화장실에 갈 것이 걱정되어 한 입도 대지 않았다. 또한 신부 장씨는 많은 국수를 삶아 뜨거워진 방에서 아무 소리도 내지 못하고 얌전히 앉아 있었다고 한다. 식사를 마친 신랑은 바깥의 손님들에게 인사를 올린다.
저녁이 되면 신랑과 신부는 겸상을 하고 초야를 치른다. 첫날밤에 신부는 친정어머니로부터 무슨 일이 일어날 것에 대비해 바늘을 미리 받아 둔다. 사람들은 방문 바깥에서 “신방 지킨다”하여 문에 구멍을 내곤 한다. 신방에 촛불이 꺼지면 모두 다 물러났다고 한다. 초야를 신부집에서 치른 후 신랑집으로 신행을 간다. 신부는 족두리와 예복을 다시 입고 신랑과 화물 자동차를 대절해서 신랑집으로 갔다. 신랑집에서 가져온 함, 기러기와 장롱, 이불 등등 신부의 살림 도구를 자동차에 싣고 갔다.
집에 도착한 신랑은 부엌에서 막대 주걱으로 국수를 먹는다. 이는 장수하라는 의미이다. 신랑과 신부는 먼저 조상의 위패 앞에 제사를 지내고, 집에서 마련한 음식을 먹는다. 신부집에서 따라온 손님들은 식사를 마치고 신랑집에서 준 음식을 가지고 돌아간다.
저녁 식사를 마치면 신부는 신랑측 어른들에게 폐백을 드린다. 폐백을 받은 친척들은 신부에게 대추와 밤을 던지면서 “아들 오 형제에 딸 둘만 나라”고 축원을 한다. 대추는 아들, 밤은 딸을 상징한다고 하나 대추와 밤은 애가 빨리 들어서라는 의미이다. 이것들은 잠자리에 들기 전에 신랑과 신부가 먹는다.
신방 지키는 의식은 신랑집에서도 벌어진다. 신부는 이틀 동안은 아무 일을 하지 않고 삼일 째 되는 날부터 밥을 짓는다. 밥을 지을 때는 친정에서 주발에 담아온 찹쌀은 넣는다. “찰지게 잘 살라”는 의미이다. 초례상에 놓았던 팥도 주발에 담아서 가져오는데 반드시 솜으로 덮어야만 한다. 솜처럼 훈훈하게 부자 되라는 의미이고, 후에 종자로 쓴다.
신부집의 처삼촌, 처남들은 3일째 되는 날 신랑을 데리러 왔다. 이것을 재행(再行)이라고 하는데, 신부집에 문안 인사드리는 성격을 가지고 있다. 신랑 조씨는 신부와 함께 갔으며, 마을 청년들로부터 ‘신랑 달아매기’를 받았다. 동네 청년들은 ‘남의 마을 색시 훔쳐 갔으니 한잔 사야한다’, ‘술 몇 말, 고기 얼마’라고 질문을 했고, 신랑은 ‘원하는 만큼’이라고 했지만 발바닥을 맞는 등 곤혹을 치르자 장모가 나서서 술과 안주를 많이 갖고 와 함께 마시며 노래하며 놀았다. 그 다음날 집으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