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80039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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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羅晴湖大禪師水害救濟功德碑 |
분야 | 역사/근현대,문화유산/유형 유산,종교/불교 |
유형 | 유적/비 |
지역 | 서울특별시 강남구 봉은사로 531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나각순 |
[정의]
서울특별시 강남구 삼성동 봉은사 부도 밭에 있는 나청호(羅晴湖) 대선사가 1925년 홍수 때 주민들의 생명을 구한 공덕을 기념하기 위해 일제 강점기에 세운 비.
[개설]
나청호[1877~1936] 대선사의 법호는 청호이며 속성은 나씨, 법명은 학밀(學密)이다. 경기도 광주에서 출생하여, 9세 때 출가하여 명주사(明珠寺)에서 승려가 되었다. 금강산에 들어가 오랫동안 수도하였으며, 양양 낙산사 홍련암(紅蓮庵)을 중건하였다. 1924년에 봉은사 주지가 되었다.
1925년 을축년 대홍수로 한강 물이 범람하여 잠실이 잠기고 오늘날의 송파구와 강남구 일대가 물바다가 되었다. 인근 주민들이 익사 직전에 이르자 나청호 대선사가 산하 80여 사찰과 800여 승려를 이끌고 위급한 생명 708명을 구제하였다. 나청호 대선사는 수재민 구제로 ‘활불(活佛)’이라는 칭호를 받았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1929년 도움을 받은 주민들이 세운 불괴비가 ‘나청호 대선사 수해구제 공덕비(羅晴湖大禪師 水害救濟功德碑)’이다. 나청호 대선사는 사후 93개의 사리가 나와 봉은사에 그의 부도와 공덕비가 세워졌다.
[건립 경위]
1925년 7월 8일부터 장마가 시작되어 19일에 그쳤는데, 특히 16일과 17일에 집중호우가 내렸다. 따라서 한강의 수위가 12.72m를 돌파하여 용산제방이 모두 붕괴되고 강남 지역이 침수되었다. 잠실신천부리도 지역 약 1,000호 4,000명의 주민이 모두 지붕위에 올라 대피하였으나 급기야 집까지 물에 잠기었다. 이때 잠실 5단지 가장 높은 대지에 있던 큰 느티나무 두 그루에 700여 명이 올라 대피하여 구조해 달라고 아우성을 치고 있었다. 봉은사 주지 나청호 대선사는 뱃사람을 수소문하여 구조에 나설 것을 독려하였다. 그러나 누구도 나서는 사람이 없자 인명을 구조해 오는 사람은 후한 상금을 주겠다고 선언하고 뱃사람을 움직여 같이 배를 타고 신천리까지 가서 노약자와 어린이부터 차례로 배로 옮겨 봉은사로 돌아왔다. 그중 한 사람은 선리[지금 하남시 선동]에 거주하는 이준식(李俊植)으로 훗날 수해구제공덕비를 세우는 지역대표의 한 사람이 되었다. 일단 708명을 무사히 구조하여 배가 떠나자 얼마 후에 느티나무 한 그루가 뿌리 채 뽑혀 거친 물살에 떠내려갔다. 한 그루는 남아 있다가 1970년대 잠실개발로 없어졌다.
이러한 나청호 대선사의 공덕을 기록한 『불괴비첩(不壞碑帖)』이 1926년에 편찬되고 1929년 7월에 나청호 대선사 수해구제 공덕비가 건립되었다. 비의 발기인으로는 광주 고양 수해 이재민 대표 선리 이준식, 부리 허훈·이주원, 잠실리 김성득, 신장리 김순기이다. 비문은 퇴경(退耕) 권상로(權相老)가 찬하고, 성당(惺堂) 김돈희(金敦熙)가 글씨를 썼다. 이재민 구제공로자들은 봉은사 스님들로 법명이 새겨져 있다. 그리고 나청호 대선사의 수해구제 송덕 요지가 새겨져 있는데, ‘을축년 7월 홍수로 선리·부리·잠실의 뽕나무밭이 큰물에 잠기고, 708인 다급해 어찌할 바를 모르고 목숨을 구해 달라 외쳤다. 나청호 대선사가 자비로움으로 이를 구제하니, 그 덕을 잊을 수가 없구나.’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위치]
나청호 대선사 수해구제 공덕비는 강남구 삼성동 봉은사 일주문 안 오른쪽 부도밭 내에 위치하고 있다.
[형태]
옥개방부형(屋蓋方趺形)으로 팔작지붕형 가첨석 아래 장방형 비신과 방형 받침돌로 구성되어 있다.
[금석문]
비석 앞면에 두전(頭篆)으로 ‘대본산(大本山) 봉은사(奉恩寺)’라고 새겨 있고, 중앙에 ‘주지나청호대선사수해구제공덕비(住持羅晴湖大禪師水害救濟功德碑)’라고 새겨져 있다. 중앙 비문 좌우에 ‘을축칠월 홍수회양 선부잠실 변상이창 칠백팔인 호호창황 아사자제 덕불가망(乙丑七月 洪水懷襄 船浮蠶室 變桑而滄 七百八人 呼號蒼黃 我師慈濟 德不可忘)’이라고 나청호 대선사의 행적을 찬양하는 권상로가 짓고 김돈희가 쓴 작은 글씨가 새겨져 있다.
[현황]
봉은사 부도 밭에 여러 부도 및 탑비와 더불어 잘 보전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을축년 대홍수의 피해상황과 일촉즉발의 708인의 위태로운 목숨을 구제한 나청호 대선사를 비롯한 봉은사 승려들의 활동을 잘 알 수 있는 금석문으로 역사적 가치가 높다. 특히 비가 세워지기에 앞서 독립운동가를 비롯한 종교가, 화가, 교육자들이 나청호의 덕을 기리는 책자 발간에 참여하는 등 당시 승려들의 애국활동의 일면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