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30099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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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宗基 |
영어음역 | Kim Jonggi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강원도 강릉시 |
시대 | 고대/남북국 시대/통일 신라 |
집필자 | 김창겸 |
[정의]
신라 하대의 재상.
[가계]
태종무열왕(太宗武烈王)의 7대 손이며, 아버지는 이찬(伊湌) 김주원(金周元)이고, 아우는 김헌창(金憲昌)이다. 아들은 김정여(金貞茹)·김장여(金璋如)이며, 손자로는 김양(金陽)과 김흔(金昕)이 있다.
[생애]
관등은 소판(蘇判)의 관등으로서 집사부(執事部)의 시중(侍中)을 역임하였다.
[활동 사항]
아버지 김주원은 신라 하대에 무열왕계의 대표적인 인물이었지만, 785년 선덕왕(宣德王)이 죽은 후에 김경신(金敬信)과의 왕위계승전에서 패배하여 명주(溟州)[지금의 江陵]로 퇴거(退去)하였다. 그러나 원성왕(元聖王)은 태종무열왕계에 대한 정치적 무마책으로 김주원의 두 아들 김종기와 김헌창을 각각 집사부 시중에 임명하였다. 김종기는 790년(원성왕 6) 1월에 시중에 임명되었으나 천재지이(天災地異)에 대한 정치적 책임을 지고 같은 해 10월에 사임하였다.
한편 822년(헌덕왕 12) 아우인 김헌창이 원성왕계의 왕위 독점에 반발하여 웅주(熊州)[지금의 공주]에서 난을 일으켰는데, 난이 진압된 후에 족당(族黨) 239명이 죽음을 당하였지만, 김종기는 정치적 노선을 달리하여 죽음을 면하였다. 그리하여 그의 아들인 김정여(金貞茹)와 손자인 김양(金陽)은 정치적 활동에 있어서 제한을 받지 않을 수 있었다.
원성왕은 786년(원성왕 2)에 김주원을 명주군왕(溟州郡王)으로 책봉하여 예우하였다. 이러한 예우는 이후에 그의 후손들에게 이어져 김주원의 아들인 김종기(金宗基)를 명원군왕에 책봉하였다. 김주원계의 친족 대표격인 장자손(長子孫)들은 이러한 작위를 가지고 제후적 위치에서 신라의 중앙 정권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독자적 세력을 유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