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3010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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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周元-食邑 |
영어의미역 | Stipend Town of Kim Ju-won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강원도 강릉시 |
시대 | 고대/남북국 시대/통일 신라 |
집필자 | 김창겸 |
[정의]
신라 하대의 재상인 김주원이 명주군왕의 봉작(封爵)과 함께 받은 강릉 일대의 수조지(收租地).
[개설]
785년 선덕왕이 죽은 후에 김주원(金周元)은 김경신(金敬信)과 왕위계승을 위한 다툼을 벌였는데, 이 과정에서 김경신이 원성왕으로 즉위하였고, 김주원은 패배하여 명주(溟州)[지금의 江陵]로 퇴거(退去)하였다. 명주는 김주원의 선대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었는데, 특히 김주원의 아버지인 유정(惟正·惟靖) 또는 무월랑(無月郞)이 명주 지방의 세력가와 혼인을 맺음으로써 보다 강한 연계를 갖게 되었던 것이다.
[내용]
원성왕은 786년(원성왕 2)에 김주원을 명주군왕(溟州郡王)으로 봉하고, 명주·익령(翼嶺)[지금의 양양]·삼척(三陟)·근을어(斤乙於)[지금의 평해]·울진(蔚珍) 등을 떼어서 식읍으로 주었다. 이로 인하여 김주원의 후손들은 강릉도호부(江陵都護府)를 관향(貫鄕)으로 삼았으며, 김주원은 강릉김씨(江陵金氏)의 시조(始祖)가 되었다.
『삼국사기(三國史記)』 「지리지(地理志)」에 의하면 당시 명주는 명주의 영현(領縣) 4개와 그 관하의 군(郡) 9개(소속 영현은 21개)로 이루진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김주원이 식읍으로 받은 지역은 명주 직속의 4개 영현과 명주 관할의 3개 군 및 1개 현이 식읍으로 사여(賜與)되었던 것이다.
결국 김주원은 명주군왕의 봉작(封爵)과 함께 선대로부터 연고권이 있었던 명주와 그 일대를 식읍으로 지급받았는데, 이것은 김주원의 후손에게도 계속되었다. 이로써 김주원계(金周元系)는 이 지역의 토지를 보유하고, 주민을 지배하면서 조세(租稅)와 공부(貢賦)·역역(力役)의 수취로 경제적 기반을 다졌다. 그리하여 김주원의 후손은 이 지역에 장원(莊園)을 형성하였으며, 이와 같은 경제적인 기반을 바탕으로 신라 하대에 반독립적인 세력을 형성하면서 지방세력인 호족(豪族)으로 등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