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30108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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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南大川農民示威 |
영어음역 | Namdaecheon Nongmin Siwi |
영어의미역 | Namdaecheon Peasant Rally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
지역 | 강원도 강릉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이규대 |
성격 | 독립운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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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생(시작)연도/일시 | 1919년 4월 4일 |
발생(시작)장소 | 남대천 하평보 |
발생(시작)장소 | 강원도 강릉시 중앙동 수로 |
관련인물/단체 | 창동회 |
[정의]
1919년 4월 4일 강원도 강릉시 남대천에서 농민들이 일으킨 독립만세운동.
[역사적 배경]
1919년 3월 1일 서울의 독립만세운동은 시간이 지나면서 전국으로 확산되었다. 강릉 지역의 독립만세운동은 1919년 4월 초순에 집중적으로 일어났다.
[목적]
일제를 타도하고 국권을 회복하려는 데 목적을 두었다.
[발단]
매년 연례적으로 이루어졌던 남대천 하평보를 중심으로 하는 도수로 개수공사를 계기로 1919년 4월 4일에 농민들이 중심이 되어 독립만세운동을 일으켰다.
[경과]
창동회와 청년회의 조직적인 활동과 농민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400여 명을 규합하여 독립만세를 고창(高唱)하고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다가 일본 수비대와 정면충돌하였다.
[결과]
주모자 20여 명이 체포되어 모진 고문을 당하였고, 징역·태장·기소유예 등에 처해졌다.
[의의와 평가]
독립만세운동이 읍내에서 외곽으로 확산되고 지역주민의 주권의식을 고취하는 계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