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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급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303857
한자 韓汲
영어음역 Han Geup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강원도 강릉시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김대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신
아버지 한충례(韓忠禮)
성별
몰년 미상
본관 청주(淸州)
대표관직 강릉 부사

[정의]

강릉 부사를 지낸 조선 중기의 문신.

[가계]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심원(深源). 한영삭(韓永數)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한유(韓愈), 아버지는 한충례(韓忠禮)이다.

[생애]

1503년(연산군 9) 별시문과에 삼등과로 급제하였다. 장령을 거쳐 1510년(중종 5)에 강릉 부사로 재직하던 중 관물(官物)인 면포(綿布) 1백 50필로 양곡을 산 일이 발각되어 장오죄(贓汚罪)로 파출당하고, 추문(推問)이 이어졌다. 사실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조정에서도 여러 차례 논의가 진행되었고, 본도 감사의 추고(推考)에 이어 경차관을 파견하여 심문하기도 하였다. 한급은 이 일 외에도 형조 정랑으로 재직할 때 속(贖)받은 면포로 정승충(鄭承忠)의 가대(家垈)를 산 일도 발각되었다.

금부(禁府)에서 한급의 죄에 대하여 장(杖) 1백, 유(流) 2천 5백 리로 정하여 녹안(錄案)하고 조율(照律)하여 아뢰자, 공(功) 1등을 감하고 장형은 속(贖)하게 하였으며, 자손은 금고(禁錮)하도록 하였다.

1514년(중종 9) 5월에는 강릉부의 백성 100여 명이 한급이 애매하게 녹안(錄案)되어 자손이 금고(禁錮)된 일을 상언(上言)하는 일도 발생하였다. 중종도 이미 처리한 일인데 반복되는 것에 의아해하면서도 백성들의 등장을 믿지 않기도 어렵다며 다시 논의하도록 하였다. 하지만 이에 대해 사관(史官)은 "한급은 욕심이 많고 비루한 소인(小人)으로서 강릉 부사가 되어 불의를 많이 행했기 때문에 백성들 및 이웃 고을 수령까지도 원수같이 미워하였다. 한급은 본래 꾀가 많은 비루한 사람으로 남의 글을 빌어 과거에 급제했으며, 백성들의 상언(上言)도 한급이 유도(誘導)해 낸 것이다." 라고 기록하고 있다.

1516년에는 한급의 어머니가 상서하여 아들의 원통함을 호소하자 임금도 그의 죄가 애매함을 들어 신원(伸寃)해 줄 뜻을 비추고 고형산(高荊山) 등에게 하문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고형산의 말은 믿을 수 없다는 사헌부의 간언에 따라 결국 더 이상 분간하지 않기로 결정하였다.

이외에도 한급이 황해도를 왕래하다가 풍덕군(豊德郡)의 어느 절에 들어가 투숙하다가 농간을 부려 사찰이 소장하고 있던 유기(鍮器)와 잡물을 싣고 돌아온 일도 밝혀지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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