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3039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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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航空機拉北事件 |
영어음역 | Hanggonggi Napbuk Sageon |
영어의미역 | Air Flight Hijack Incident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
지역 | 강원도 강릉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남현 |
성격 | 비행기 납북 사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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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생(시작)연도/일시 | 1969년 12월 11일 |
발생(시작)장소 | 강릉비행장 |
관련인물/단체 | 유병하|최석만|성경희|정경숙|조창희 |
[정의]
북한에 의한 민간항공기 납치 사건.
[개설]
1969년 12월 11일 낮 12시 25분 승객 47명을 태우고 강릉을 떠나 서울로 향하던 YS-11기(기장 유병하, 부기장 최석만, 스튜어디스 성경희, 정경숙)가 11분 만에 조창희에 의해 납치되어 북한으로 끌려가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경과]
비행기 납치 사건에 대하여 전국 방방곡곡에서 북한의 만행을 규탄하는 분노가 충천했고 정부와 대한적십자사는 북한의 야만행위를 비난하는 한편 납북된 승객, 승무원, 화물 및 기체의 즉시 송환을 촉구하였다.
그러나 북한은 우리의 정당한 요구와 국제여론을 무시하고 아무런 해명조차 하지 않았다. 정부는 우방국은 물론 가능한 외교 경로를 통해 북한의 비인도적 처사를 규탄하고 승무원과 승객 및 기체의 조속한 송환에 협조해 줄 것을 촉구했는데 이 문제는 마침내 유엔에서 의제로 다루어짐으로써 국제적인 관심사로 떠올랐다.
[결과]
납북 2개월만인 1970년 2월 14일 기체와 4명의 승무원 및 8명의 승객을 계속 억류한 채 39명의 승객만 판문점을 통해 송환하였다.
정부는 재발방지를 위해 항공기에 무장보안관을 탑승시켰으며, 이러한 정부의 조치에 따라 대한항공은 전국 12개 항공지점과 영업소에 금속탐지기를 설치하고 무장보안관을 탑승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