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30395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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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行政區域 |
영어음역 | Haengjeong Guyeok |
영어의미역 | Administrative Unit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강원도 강릉시 |
집필자 | 임호민,증보:박석중 |
[정의]
강원도 강릉시의 행정 기관 권한이 미치는 일정 구역.
[지역적 특성]
강릉 지역은 지리적으로 한반도의 동해안 한가운데 위치하여 오랫동안 영동 지역의 행정 중심지로서의 역할을 하였다. 선사 시대부터 영동의 중심지로서 경상북도 동해안의 울진·평해와 평창군 봉평면·용평면·진부면·대관령면, 정선군 임계면 등의 광역 생활권의 행정·군사 중심지였다. 좁지만 남북으로 길게 들을 이루어 강원도 지역에서는 비교적 풍부한 생활 여건을 갖추고 있었다.
전체적으로 도시의 분위기는 도농 통합 도시로서 공업화 산업 기반이 취약하여, 상업, 농업, 어업 등 자연환경에 따라 다양한 생활 방식을 유지해 왔다. 특히, 1970년대까지 강릉시 전 지역이 농업과 어업을 중심으로 한 1차 산업을 주된 생활 행태로 하였다. 이런 이유로 산업화 시대에도 성장 속도가 느리게 진행되어, 현재 외형적으로 인구 22만 명 정도의 중소 도시이다.
강릉시는 한반도의 허리인 태백산맥 동쪽 중앙에 위치하고 있으며, 동쪽은 동해 바다, 서쪽으로는 홍천군 내면, 평창군 진부면과 대관령면[2007년 도암면에서 개칭]에 각각 접하고 있으며, 남쪽으로는 동해시 일원, 정선군 임계면과 북면에, 북쪽으로는 양양군 현북면과 현남면에 도내 5개 시군과 경계를 이루고 있다. 동해와 연접한 64.5㎞의 긴 해안선은 강원도 해안선 318㎞중 20.2%를 점유하고 있으며, 서측은 오대산, 대관령, 석병산 등 1,000m 이상의 높은 태백산맥에 접하고 있으며 동측으로 3개의 산악축이 전개되고 그 중앙에 남대천이 흐른다. 해안 및 산악 지역을 포함하고 있어 해안형과 내륙형을 겸비한 입지적 요건을 갖추고 있을 뿐만 아니라 우수한 역사적 문화 자원과 천혜의 관광 자원이 풍부한 관광 도시로서 고도의 멋과 전통이 살아 있는 역사·문화·교육의 도시, 녹생 성장의 도시이다.
[근대 이전]
강릉은 본래 예국(濊國)의 도읍지로 알려졌으며, 313년 고구려 때는 하서랑(河西良) 또는 아슬라(阿瑟羅)라고 하였다. 진흥왕 때 신라의 영토가 된 이후 북빈경(北濱京), 하서주(河西州), 명주(溟州) 등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통일 신라 시대 「강원도 행정 구역도」를 참고해 보면 9주 5소경 중 명주(溟州)의 속군(屬郡), 속현(屬縣)에 영동 지방은 물론, 지금의 영서 지방에 속하는 평창군, 정선군 그리고 태백시와 현재 경상북도에 속한 울진, 평해까지를 포함하고 있다.
고려 시대에는 태조가 강릉을 동원경(東原京)이라 칭하고 다시 940년 명주, 983년 하서부(河西府), 986년 명주도독부, 992년 명주목 등으로 몇 차례의 행정 구역 변경을 거쳤다. 현종 초[1009~1031]에는 5도 양계제가 확립되었는데, 고려 「5도 양계제의 행정 구역도」를 참고해 보면 통일 신라 시대 명주의 지배를 받던 영월, 평창군 등이 원주군 관할 하에 들어가면서 양광도에 예속되었고 지금의 울진, 평해 지역이 통일 신라 시대 명주 관할 하에 있다가 동계에 들어가 있다. 1260년에는 경흥도호부(慶興都護府)로, 1389년에는 강릉대도호부(江陵大都護府) 등으로 명칭과 품계가 바뀌었다.
조선 시대에는 1393년(태조 2)에 원주·회양·강릉·삼척에 계수관이 설치되고 세종 조에 춘천·간성이 추가로 지정되었다. 태종 때에는 강릉 대도호부라는 명칭을 그대로 사용하여, 대도호부로서 강릉은 지금의 평창군인 봉평면, 용평면, 진부면, 대관령면과 정선군 임계면까지를 포함하는 보다 광대한 구역을 직접적인 관할 구역으로 삼았다. 『경국대전(經國大典)』에 의하면 지방의 군사 조직은 각 도에 병마절도사(兵馬節度使)와 수군절도사(水軍節度使)의 소재지를 ‘주진(主鎭)’으로 하고, 그 밑에 각각 여러 개의 거진을 두며 거진 밑에 여러 개의 ‘제진(諸鎭)’을 둔 진관제 하에서 강원도는 원주감영을 주진으로 그 밑에 강릉진관, 원주진관, 회양진관이 있었다. 이 중 강릉대도호부인 강릉진관의 관할 구역은 삼척도호부, 양양도호부, 평해, 간성, 고성, 통천군, 울진, 흡곡현이었다. 이후 1798년에는 강릉부가 되었고, 1895년(고종 32) 13도제 실시로 1896년에 강릉군이 되어 21개 면을 관할하였다.
1905년 통감 정치가 시작되고 지방 통제를 위하여 주한일본영사관을 모두 이사청(理事廳)으로 개편하여 보호 정치의 지방 침투 및 지방 행정의 지도·감독권을 행사하였는데 전국 13곳에 있었으며, 강릉의 경우 원산이사청 관할이었다. 1906년에는 지방 관제 개정을 통해 임계면·도암면을 정선군에, 진부면·봉평면·대화면을 평창군으로 각각 이관하였다.
[근대 이후]
1914년 4월 1일부터 시행된 총독부령 제111호 「도(道)의 위치·관할 구역 및 부군(府郡)의 명칭·위치·관할 구역」에 의한 면 행정 구역 통폐합으로 당시 강릉군은 북일리면, 북이리면, 남일리면을 군내면으로 병합하고 1914년 군내면을 강릉면으로 개칭하였다. 1920년 관계 법령을 정비하여 1920년 11월 1일 강릉은 성남면, 덕방면, 자가곡면 일부를 병합하여 성덕면으로 개편하고 하남면의 일부를 정동면으로 편입하였다. 1923년 강릉은 강원도 내에서 철원과 함께 지정면(指定面)이 되었다. 1920년대 말까지 강원도 내 춘천·강릉·철원 등을 포함하여 전국에 43개의 지정면이 있었다. 1931년 강릉면이 강릉읍으로 승격되었다.
1933년경 강릉의 행정 구역은 일제의 침략 정책에 따라 일부 변모하게 되었고, 면리(面里)의 형태가 오늘날과 비슷한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당시 강릉군 호수는 1만 4826호이며, 인구는 9만 872명[남자 4만 6375명, 여자 4만 4497명]이었다. 1938년 9월 1일 정동면이 경포면으로 개칭되었고, 1940년 11월 1일 신리면이 주문진읍으로, 1942년 10월 1일 망상면이 묵호읍으로 승격되었다.
1945년 11월 3일 양양군(襄陽郡) 현남면과 현북면, 서면의 일부를 강릉군에 편입하였다가 1954년 10월 21일 법률 제350호[1954년 10월 21일 공포]로 「수복 지구 임시 행정 조치법(收復地區臨時行政措置法)」 시행에 따라 현북면과 서면을 양양군에 편입하였다. 이 시기 강릉시와 명주군으로 분리되기 전 강릉군은 강릉읍, 주문진읍, 묵호읍, 성산면, 왕산면, 구정면, 성덕면, 강동면, 옥계면, 경포면, 사천면, 연곡면, 현남면의 3개 읍 10개 면 196개 리가 있었다.
1955년 9월 1일 강릉읍과 경포면, 성덕면을 병합하여 법률 제369호로 강릉시로 승격되었고, 그 외의 지역은 명주군으로 개칭·분리되었다. 당시 강릉시의 행정 구역은 38개 동 489개 반이었다. 1963년 1월 1일 법률 제1178호[1962년 11월 21일 공포]로 명주군 현남면을 양양군에 다시 편입하여 2읍[주문진읍·묵호읍] 7면이 되었다. 1973년에는 7월 1일 대통령령 제6542호[1973년 3월 12일 공포] 「시군구읍면의 관할 구역 변경에 관한 규정」에 의해 왕산면 남곡리와 구절리가 정선군에 편입되었다.
1980년대에 들어서는 1980년 4월 1일 법률 제3188호에 의거 묵호읍이 동해시에 편입되었는데, 이때부터 행정 구역의 조정은 개별 법령 또는 시 조례에 의해 시[명주군 포함]의 범주 내에서 읍·면·동 간의 구역 조정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1983년 2월 15일에는 대통령령 제11027호로 구정면 언별리가 강동면으로, 구정면 산북리가 성산면으로, 연곡면 방내리 일부가 주문진읍으로 각각 편입되었다. 1983년 10월 1일에는 강릉시 조례 제1013호[1983년 9월 15일 공포]로 남문동과 성남동을 통합하여 중앙동으로 개칭하고 교동을 교1동과 교2동으로 분리하였으며, 1989년 1월 1일에는 대통령령 제12559호로 명주군 강동면 운산리가 강릉시 월호평동에 편입되어 운산동으로 개칭되었다.
1992년 강릉시와 명주군의 행정 구역은 강릉시가 19개 행정동[39개 법정동] 238개 통 1,207개 반 114개 자연 부락으로 구성되었고, 명주군이 1개 읍 7개 면 65개 법정리 139개 행정리 803개 반 441개의 자연 부락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1995년 1월 1일에는 「경기도 남양주시 등 33개 도·농 복합 형태의 시 설치 등에 관한 법률」[법률 제4774호]에 의거 강릉시와 명주군이 통합하여 새로운 강릉시가 발족되었다. 통합 직전 1994년 말 현재 강릉시의 행정 구역은 법정동 39개 동과 행정동 19개 동으로 288개 통 1,473개 반 114개 자연 마을로, 명주군은 1읍 7면 3출장소와 65개 법정리 140개 행정리 840개 반과 441개 자연 마을로 구성되어 있었다.
2006년 12월 17일 강릉시 월호평동 일부를 학동으로 편입하였고, 2007년 12월 26일 강릉시 금학동의 일부와 임당동의 일부를 옥천동으로 편입하였다. 2009년 1월 4일 강릉시 성산면 금산리 일부[영동대학교]을 홍제동으로 편입하였다. 2009년 12월 23일 강릉시 사천면 방동리 일부를 대전동으로 편입하였으며, 2009년 12월 23일 강릉시 대전동 일부를 사천면 방동리로 편입하였다. 2011년 7월 29일 강릉시청사 도로명 주소를 강릉대로 33[홍제동 1001]으로 부여하였다.
[행정 구역 현황]
강릉시 총면적은 지난 1995년 강릉시와 명주군의 통합으로 2015년 말 현재 1040.4㎢로 강원도 1만 6873.5㎢의 약 6.2%를 차지하고 있으며, 인구 밀도는 1㎢당 209명[2015년 말 기준]이며 강원도 평균 인구도 91.4명보다 2.3배 정도 높다.
강릉시 행정 구역은 2001년 말 기준 1읍 7면 13행정동[39법정동] 145행정리[66법정리] 377통 2,840반과 자연마을 533개로 구성되었던 것을 법정리 1개[강동면 1] 5개 통[교1] 48개 반을 증설하여, 2002년 말 현재 1읍 7면 13행정동[39법정동] 145행정리[66법정리] 375통 2,888반 533개 자연 마을로 되었다. 2003년도에는 2개 통[교1동], 15개 반[홍제동 1, 교1동 14]을 증설하여 1읍 7면 13행정동[39법정동] 145행정리[66법정리] 377통 2,903반 533개 자연 마을이 되었다.
2011년 9월 말 기준 강릉시의 전체 면적은 1,040㎢[서울시 면적의 1.72배]이며 총인구는 21만 7926명[9만 70가구]으로 행정 구역은 1읍 7면 13행정동[39법정동] 146행정리[65법정리] 326통 2,656반으로 구성되었다.
2015년 말 기준 강릉시 행정 구역은 1읍 7면 13행정동[39법정동] 146행정리[65법정리] 330통 2,669반과 자연 마을 533개로 구성되어 있으며, 전체 면적 중 임야가 80.5%[837.36㎢], 전이 5.0%[52.17㎢], 답이 4.9%[51.17㎢]로 구성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