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3T060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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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荷坪-民俗-農事-風習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강원도 강릉시 사천면 |
집필자 | 임호민 |
[농사관련 풍습]
이런 세시풍습뿐 아니라 하평마을에서 지켜오고 있는 민속적인 전통들 역시 다양하다.
논, 밭의 김을 두세 벌 매고 나면 음력 6월말 7월초가 되는데 일 년 중 가장 무더운 삼복더위가 들어있는 때다. 이때쯤이면 농촌에서는 큰일이 대충 끝나는 때이므로 조금은 한가한 시기가 된다. 농가에서 김매기에 필요한 호미가 별로 필요하지 않게 되어 호미를 씻어둔다 하여 ‘호미 씻기’ 또는 ‘질먹기’라 한다. 마을별로 집집마다 맛있는 음식을 푸짐하게 장만하여 정자나무 그늘이나 냇가에 남녀노소가 한자리에 모여 즐기는데 나이 많은 어른부터 차례로 상을 받는다. 그리고 김매기 때의 품값을 정리하여 계산한다. 식사가 끝난 후 총각 대방이 나서서 함지에다 남은 음식을 모아서 젊은이들끼리 한자리에 모이기도 하고 아낙네들은 남은 음식을 집에 가지고 가서 식구들과 함께 먹는다.
짧게는 하루, 길게는 4~5일까지 놀기도 하고 진리 바닷가에 가서 해수욕도 즐기고 배를 빌려 뱃놀이도 즐겼다. 마지막 날에는 흥겨운 농악놀이를 즐기며 질먹기 놀이를 끝내는데 사천지방 마을마다 행하여지던 질먹기 놀이는 지금은 자취를 감추었고 마을회관을 중심으로 마을 행사 차원에서 이를 대신하기도 한다.
이 마을의 독특한 풍습으로 품앗이와 관련된 것이 있다. 15세 이하의 나이 어린 사람은 어른들과 품앗이를 할 수가 없기 때문에 행해지던 풍습이 있었는데 이것이 ‘팔례’ 또는 ‘판례’이다. 어린 사람은 어른과 1대 1의 품앗이를 할 수 있도록 부모가 술 한 동이, 담배(봉담배) 한 보루, 감주 한 동이를 준비하여 어른들이 화전놀이를 할 때 마을 사람들에게 제공한다. 이런 절차를 마친 후에야 비로소 어른과 함께 품앗이를 할 수 있었다. 현재 이러한 풍습은 사라졌으나 1950년대까지는 사천 지방의 마을마다 있었다. 팔례 첫 해에는 모심기할 때 어른들 다리에 붙은 거머리를 뜯어주거나 그늘 아래서 낮잠을 자는 어른 옆에서 개미와 파리를 쫓기도 하고 잔심부름을 한 후에야 성인 대접을 받는다.
마을의 여러 사람들이 함께 모여서 지원하는 일 모두를 울력이라 한다. 울력에는 모내기, 벼 베기 등 농사일뿐만 아니라 퇴비 베기, 화재 시 복구, 또는 집을 지을 때 마을 사람들 공동의 노동을 포함하게 된다. 울력은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사람 누구나 제안할 수 있으며 필요하다고 받아들여지면 시작된다. 울력을 ‘비루’라고 부르는 지방도 있다. 마을에 병자나 노령자가 농사를 지을 수 없을 때 마을 주민들이 함께 농사를 도와주는 풍습이다. 점심은 주인집에서 제공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주인집의 형편이 어려울 경우 가는 사람이 각자 점심을 준비하였다. 울력은 이장 또는 반장이 이야기하면 일을 해주게 된다.
한편 옛날 부잣집에서는 머슴을 두고 농사일을 했다. 머슴들에게 계절 따라 옷을 만들어주는데 봄·가을에는 봄·가을살이, 여름에는 여름살이, 겨울에는 겨우살이라 해서 광목 바지저고리를 만들어주었다.
추수가 끝나고 겨울이 오기 전이면 초가지붕을 덮을 때 필요한 새끼와 이엉을 만든다. 이 작업은 이웃끼리 공동으로 작업을 하였다. 이날은 대개 책력을 보아 공망일(空忘日), 즉, 손 없는 날이나 화재수가 없는 날을 가려서 택일한다. 작업은 오전에 시작하여 저녁때가 되면 일을 마치고 파하게 된다. 이 풍습은 1970년대 새마을 사업 이후 지붕이 슬레이트, 함석, 기와 등으로 개량되면서 지금은 없어졌다. 일을 마치고 나면 주인집에서 식사를 제공하는데 ‘차지게 붙어 물이 새지 말라’는 뜻에서 찰밥을 해주었다.
하평마을에는 농사를 짓는 데에 필요한 소와 관련된 풍습이 여러 종류 있다. 부잣집에서 소를 산 뒤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에게 주고 그것을 키워 새끼를 낳으면 새끼는 키운 사람이 갖고 어미는 주인에게 되돌려주는데 이것을 ‘그릿소’라 한다. 그릿소의 종류는 대체로 두 가지로, 1년짜리 그릿소가 있고 2년짜리 그릿소가 있었다. 황송아지(수소)인 경우에는 1년 내지 2년을 약속하고 기른 다음 큰 소를 주인에게 돌려주면 소주인은 송아지를 한 마리 사주는 경우도 있었다.
이 밖에 삯소라는 것도 있다. 삯소란 농사꾼이 경작에 쓸 소가 없을 경우 소를 1년 동안 빌리는 것이다. 1년 동안 소의 품삯을 정한 다음 빌려다 농사를 짓고, 가을에 주인에게 되돌려줄 때에는 떡과 술을 준비하고 소의 품삯을 소등에 싣고 주인을 찾아가 고맙다는 인사를 정중히 했다.
농사를 잘 짓기 위해서는 좋은 종자의 소가 필요하다. 우량종의 소를 번식시킬 목적으로 각 마을에 우량종 황소를 한 마리씩 보급하고 암소가 새끼를 밸 때 종무소에게 씨를 받았다. 이때 그 대가로 콩 1말을 황소 주인에게 지불했다. 송아지를 사주면 키워서 팔 때 본전을 제하고 이익금을 똑같이 나누는 ‘반제기’라는 풍습도 있다.
한편 2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사천 지방에는 장례쌀이라는 것이 있었다. 1년 농사를 지어 봐야 제 돌까지 먹을 식량이 되지 않아 형편이 넉넉한 집 또는 각종 계모임에서 장례쌀을 갖다 먹고 가을에 이자를 해서 갚는 것인데, 쌀 1가마를 가져오면 갚을 때 쌀 1가마 5말을 갚아 주는 것을 장례쌀이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