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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평마을-민속-놀이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3T06012
한자 荷坪-民俗-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강원도 강릉시 사천면
집필자 임호민

[놀이]

하평마을의 민속놀이로 강릉사천하평답교놀이가 있다.

하평답교놀이는 강릉의 자연적 환경 속에서 생성된 대표적인 농경 민속놀이라 할 수 있다. 이 놀이는 조선시대 집촌화 시대 이후 자연촌의 독립이 이루어지면서 발생한 놀이라 하겠다. 이는 수도작 재배 중심의 노동집약적 마을 공동체를 중심으로 문화가 형성되어가는 것을 의미한다. 세시와 결합된 대동놀이의 출현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이 놀이는 조선시대로부터 볼 수 있었던 놀이로 유추할 수 있으며 하평에서는 3~4백년부터 이어왔다.

음력 2월 초엿새를 강릉(사천)에서는 좀상날(좀생이날)이라 한다. 좀생이는 묘성(昴星)을 말한다. 이날 초저녁에(저녁 6~7시 사이) 달이 떠오르면 달과 좀생이와의 거리를 보고 그 해 농사의 풍년과 흉년을 점치는 것이다. 좀생이란 28성수(星宿) 중의 묘성의 속명으로 서양에서는 ‘폴레아데스’라고 하는 작고도 오밀조밀한 많은 별들의 무리의 이름이다. 육안으로는 6~14개, 망원경으로는 100개 이상, 사진으로는 2천 개 이상이 촬영된다. 농민들은 좀생이가 달에 가까이 따라가면 그 해는 흉년이고, 좀생이가 달에서 멀리 떨어져서 따라가면 그 해의 농사는 풍년이라고 믿었다. 달은 ‘밥을 이고 가는 여인’ 또는 ‘밥을 얻어먹기 위해 따라가는 아이’를 상징한다고 한다. 이날에 마을 사람들이 모여서 술과 음식을 마련하여 함께 좀생이를 보며 농사의 길흉을 점쳤다. ‘좀생이날’의 의미는 농경사회의 달과 별의 거리 관측으로 오랜 체험 속에서 얻어진 자연력이며 이는 곧 생산력과 직결되는 우리 세시풍속과의 관련성을 찾을 수 있다. 이는 직접적인 월점(月占), 점성(占星)으로 기풍(祈豊)과 점풍(占豊)행사인 것이다.

강릉에서는 좀상날 여러 자연부락 단위의 마을에서 「다리굿」, 다리밟기(답교), 쇠절금, 돌싸움(석전), 횃불싸움 등의 놀이가 행해졌다. 특히 송정마을과 초당마을, 사천 하평마을과 진리의 좀상날 답교놀이는 유명하다. 좀생이날 저녁에 사천천을 중심으로 진리와 하평을 사이에 두고 형성된 두 마을은 사천천에서 좀생이날 풍년기원의식 놀이인 「다리굿」, 다리밟기, 돌싸움, 횃불싸움 등의 여러 놀이를 통하여 승부를 갈라, 한해 농사의 풍흉을 점치는 민속놀이를 해 온 것에서 유래한다. 미놀평과 하평 사이에 통다리가 있는데 강릉지역에서 단오제를 제외하고 오랫동안 전승되고 있는 민속놀이는 실제 좀상날 하평답교놀이가 유일하다.

2월 초엿새 좀상날에는 주민들이 마을 앞 다리에 모여 풍년과 마을의 안녕을 비는 다리밟기 농악을 공연한다.

하평농악은 마을 오락의 주축을 이루어 왔다. 정월은 세시초의 농한기이므로 잡귀를 쫓고 복을 빌며 풍년을 기원하는 「걸립굿」, 마당밟기, 「망월굿」, 「좀상날 답교다리굿」, 「기맞이굿」 등을 가가호호 방문하며 부락 전체의 민안태평을 기원하는 농악을 하였다.

5월과 6월의 농번기에는 「단오굿」 모내기농악, 7, 8월 김매기가 끝나고 허리를 펴는 시기에는 「두레굿」, 백중놀이, 추석놀이로 위안을 삼았다. 이는 공동 노동에 필요한 협동정신을 높이는 데 큰 힘이 되기도 하였다.

「다리굿」은 마을 농악대의 상쇠가 농악을 치면서 “모십시다. 모십시다. 서낭님을 모십시다. 이월이라 좀상날에 국사서낭 모셔놓고……”라고 시작하며 다리밟기를 시작하게 된다.

하평농악은 가식 없이 소박한 원형대로 농민들 속에서 호흡을 같이하며 진면목을 지켜오고 있다. 한편 단조롭고 정적인 가락에 변화가 적은 듯하나 이것이 오히려 강릉지역에 전승되고 있는 농악의 특징이다.

하평농악에서 유명한 것이 ‘쇠절금’이다. 쇠절금은 ‘쇠겨룸’을 말한다. 하평과 진리 두 마을 농악의 상쇠들이 쇠를 치면서 하는 대결이다.

쇠절금은 하평 지역 농악에서 사용되는 12가락을 모두 사용한다. 이때 상쇠들은 자신의 기량을 한껏 과시하는데 이러한 놀이는 농악발전의 기틀을 마련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러한 측면에서 보면 하평농악의 다양한 특질이 쇠절금 속에 있다고 볼 수 있으며 뒤에 이어지는 돌싸움, 횃불싸움, 답교놀이 등 모든 놀이의 시작이기도 하다.

쇠가락은 하평농악에 쓰이는 쇠가락에는 일채, 이채, 삼채, 사채, 길놀이(신식행진가락), 굿거리, 구식 길놀이 따위가 쓰인다. 일채, 이채, 삼채, 사채, 길놀이, 굿거리 등이 주축을 이루며, 이 중에서 길놀이 가락은 근래에 와서 행진곡 풍으로 창작한 것이 특이한 점이다. 그러나 쇠치는 소리와 가락은 옛 형태를 잘 보존하고 있다. 리듬은 빠르면서도 모두 3분박, 4분박으로 단조로우나 7~8조의 가락으로 구분된다. 대부분의 쇠가락은 외가락으로 길게 반복하는 것이 다른 지역과 차이가 있다.

그러면 여기서 하평농악의 다양한 가락들을 정리해본다.

먼저 일채는 한마치라고도 한다. 「마당굿(판굿)」에서 가장 흔히 쓰이는 쇠가락이다. 3분박 매우 빠른 4박자(8분의 12박자)이다. 꽹과리는 ‘갱-개, 갱-개, 갱 -개, 갱-개’ 하고 징은 첫째, 셋째 박에 1점씩 친다. 2박을 한 장단으로 꼽고 징을 2박에 한번 친다 하여 일채 또는 한마치라 한다.

이채는 2분박 좀 빠른 4박자(4분의 4박자)이며, 꽹과리는 아래와 같이 치며 징은 첫째, 셋째 박에 1점씩 친다. 이 가락은 그렇게 많이 쓰이는 것은 아니며 상모가락에 연결지어 쓰기도 한다.

삼채는 어느 고장이나 널리 쓰이는 쇠가락이다. 3분박 좀 빠른 4박자(8분의 12박자)이고 꽹과리는 ‘갱-개 갱-개 갱-개 갯깽-’ 하며 치고 징은 첫째, 둘째, 셋째 박에 치는 것이 원칙이나 첫째 셋째 박에만 치는 경우도 있다.

사채는 3분박 빠른 4박자(8분의 12박자)로 꽹과리는 아래와 같이 치며 징은 첫 박과 넷째 박에 1점씩 친다.

행진에는 길놀이 가락을 치는 것이지만, 최근에는 행진에 2분박 좀 빠른 4분박(4분의 4박자)으로 친다. 꽹과리는 ‘갠-지 개개, 갠-지 개개, 개개갱 개개갱, 갠-지 개개’ 하고 두 장단을 치며 징은 첫 장단에는 첫째, 셋째 박에 한 점씩 치고 둘째 장단에는 첫째, 둘째, 셋째 박에 한 점씩 친다. 원래는 행진에는 느린 굿거리형 길놀이 가락을 치는 것이었으나 근래에 이 가락으로 바뀐 형태이다.

굿거리는 춤출 때 치는 가락으로 3분박 좀 느린 4분박(4분의 12박자)이다. 징은 첫 박에 한점을 친다. 이 가락은 경기농악의 굿거리보다 좀 빠른데 강릉농악에서는 ‘8채’라고 한다.

12채(구식 길놀이가락)는 행진할 때 치는 가락으로 3분박 보통 빠른 4박자(8분의 12박자)이다. 경기농악의 굿거리와 같은 가락이다.

농악이 민속음악의 형태를 보여준다면, 전통적인 호연지기를 보여주는 민속으로는 석전과 횃불싸움을 들 수 있겠다.

석전(石戰)은 민속놀이의 하나로 돌싸움·편싸움·투석전(投石戰)·투석희(投石戱)·변전(邊戰)·편전(便戰)이라고도 한다. 보통은 정월대보름에 하는 것이 지방에 따라서는 5월 단오 또는 8월 한가위에 하는 곳도 있었다. 석전은 마을 대 마을, 또는 한 지방을 동서, 혹은 남북으로 나누어 하천을 사이에 두거나 백보 거리를 두고 일정한 표시물을 경계로 하여 서로 돌을 던져 싸우는 것이다. 『동국세시기』, 『경도잡지』 등의 문헌에 의하면 우리나라 거의 전역에서 편싸움이 전승되었음을 알 수 있다. 하평마을의 답교놀이와 함께 하는 석전 또한 모의 승부로서, 간접적인 공간주술적 요소를 다분히 내포한 점술적 행위놀이의 하나이다.

횃불싸움은 정월대보름의 세시풍속으로 마을 청년들이 낮에 식구수대로 싸리 또는 짚으로 홰를 만들었다가 저녁이 되면 각 마을 사람들이 일정한 장소에 모여 풍악을 울리고 무리를 지어 들판으로 나가서 진을 친다. 달 떠오르는 때를 맞추어 어느 한 편의 주장(主將)이 먼저 상대편에 대하여 “술렁수” 하면, 상대편에서 “꼴래꼴래” 하고 갖은 욕설을 퍼붓기 시작한다. 이렇게 얼마 동안 욕설을 주고받다가 풍악을 울리면 젊은이들이 이마에 수건을 동여매고 홰에 불을 붙여 들고 “자 오너라” 하고 함성을 지르면서 횃불을 휘두르며 나가 싸운다. 그러면 상대편에서도 횃불을 들고 “자 오너라” 하고 함성을 지르면서 달려들어 손에 든 횃불로 서로 때리며 넘어뜨린다. 이와 같이 서로 때리고 싸우는 가운데 자연히 하나 둘 항복하는 자가 생기게 되고 나중에 항복자가 많이 난 편이 지는 것이다. 이 놀이는 횃불이 없어지면 싸움도 그치게 되며 청년들은 청년끼리 소년들은 소년끼리 상대한다. 싸움이 벌어지면 이곳저곳에서 횃불이 번쩍거려 장관을 이룬다.

이 놀이에서 진 편은 그 해에 흉년이 들고 이긴 편은 풍년이 든다고 한다. 여러 마을이 편을 갈라 돌아가며 싸워서 당년의 풍흉을 점쳤으며 곡식에 해로운 새를 쫓는 뜻으로 백 가지 새 이름을 부르며 쫓기도 하였다. 강릉지역에서는 하평뿐만 아니라 금산마을, 회산마을, 초당과 송정마을 시동의 마을에서 유명했으며, 횃불싸움은 석전과 함께 사상자가 발생하여 관청에서 금지령을 내릴 정도로 유명했던 놀이다.

이런 놀이들보다 조금은 평화로운 민속놀이가 답교놀이(다리 밟기)다. 답교놀이는 정월대보름날 밤에 다리(교, 橋)를 밟는 전통적인 민속놀이다. 이 날 다리를 밟으면 1년간 다리(각, 脚)병이 없고 12다리를 밟으면 12달의 액을 면한다고 하는 속신적인 믿음이 있었다. 즉 다리(橋)는 다리(脚)와 같은 소리이므로 다리를 밟으면 1년 동안 다리에 병이 생기지 않는다는 생각이었다.

다리밟기에 대한 기록은 여러 문헌에 보인다. 유득공의 『경도잡지』 정월조에는 “달이 뜬 뒤 서울 사람들 모두 종가(종로)로 나와 종소리를 듣고 헤어져 여러 다리를 밟는다. 이렇게 하면 다리에 병이 나지 않는다고 한다. 대광통교, 소광통교, 수표교에 가장 많이 모인다. 이날 저녁은 관례적으로 통행금지를 완화한다. 따라서 사람들이 떼를 이루어 피리를 불고 북을 치며 떠들썩하다.”고 하였다.

이와 유사한 기록으로 『동국세시기』에는 “서울에서 정월 보름날 밤에 많은 사람들이 종각에 몰려와서 보신각의 종소리를 들은 다음 각각 흩어져 주로 가까운 광통교와 수표교로 나가 다리 위를 내왕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일 년 동안 다리에 병이 나지 않는다고 믿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행렬은 밤이 새도록 끊이지 않으며 군중들은 북을 치고 퉁소를 불기도 하며 매우 소란하다고 하였다.

다음 『열양세시기』에 의하면 “이날 열두 다리를 건너면 일년 열두 달 동안의 액을 막는다고 하여 재상귀인(宰相貴人)으로부터 미천한 사람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이 다리밟기를 했다.”고 한다.

하평에서는 대보름과 좀상날에 두 번이나 다리밟기를 하였다. 다리를 밟을 때 농악대의 상쇠가 “앗다 이다리 잘 났다. 술렁술렁 건너가자.”하고 소리를 메기면 나머지 사람들이 합창으로 함께 따라 부른다. 또한 다리의 중간쯤에서 달을 향하여 상쇠가 “술령수 ○○년 이월 좀상날 이 다리 밟고 금년 농사 대풍으로 이루어주시오.”라고 술령수를 치고 다리밟기를 계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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