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3T070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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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鶴-口碑傳承-民譚-說話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강원도 강릉시 구정면 학산리 |
집필자 | 김흥술 |
[민담과 설화]
학산마을에 어려 있는 설화는 역시 범일국사에 관련된 것이 대표적이다.
이미 유명한 이야기지만, 학바위와 석천(石泉) 우물에 서린 범일국사의 설화를 다시 한 번 알아보자. 옛날 굴산에 나이가 찼지만 마땅한 혼처가 없어 시집을 못가고 있던 처녀가 있었다. 하루는 이 처녀가 석천에 물을 길러 갔다가 햇빛이 비친 우물물을 표주박으로 떠 마셨다. 그 후 날이 갈수록 몸이 달라져 배가 부르더니 13개월 만에 뜻밖에도 옥동자를 낳았다. 처녀의 몸으로 아이를 낳았으니 처녀는 물론 부모들도 놀라, 이는 집안을 그르칠 큰 변고라고 하여 아이를 포대기에 싸서 몰래 뒷산 바위 밑에 버렸다. 어린 생명을 버린 어미 마음이 편할 리가 없어 처녀는 사흘째 되던 날 버린 아이가 어찌 되었는지 궁금하여 그 바위 밑에 가 보았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아이는 죽지 않고 포대기에 싸인 채 고이 잠자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를 이상하게 여긴 아이 어미가 하룻밤을 새면서 어린애 주변을 살펴보았다. 차가운 눈 속에서 밤을 새면서 기다리는데 밤이 깊어지자 백학 한 마리가 날아와 두 날개로 아이를 덮어주면서 밤을 지내고 새벽이 되자 붉은 열매 3개를 아이 입에 넣어 주고는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다음날에 다시 가 보아도 역시 아이는 학의 보살핌 속에 탈 없이 잘 자라고 있었다. 이런 사실은 전해들은 집안사람들은 아이가 범상한 아이가 아닐 것으로 생각하고 다시 데려와 기르도록 하였다.
자라면서 애비 없는 자식이라고 설움을 받았던 아이는 일곱 살이 되던 어느 날 어머니께 자신의 아버지가 누구인지 물었다. 그러자 어머니는 사실대로 말해 주었고 이 말을 들은 아이는 어머니께 “불효자 반드시 어머니를 위하여 큰 사람이 되어 돌아올 것이니 근심하지 마시고, 또 저를 찾지도 말아 주십시오.” 하고는 경주로 떠났다. 세월이 흘러 아이는 당나라에 유학을 갔다가 국사가 되어 돌아와 늙은 어머니를 봉양하며 굴산사를 이룩하였다. 이 아이가 곧 범일(梵日)[泛日]이다. 범일이란 해가 떠 있는 표주박 물을 떠 마신 데서 유래하였다 하고 그를 보호해 준 바위를 학바위라 부르게 된 것이다.
후에 범일 국사가 학산에 살 때, 마침 왜적의 침입이 있었다. 이때 범일 국사가 대관령에 올라가 술법을 쓰니 산천초목이 모두 군사로 변해 왜군이 감히 접근치 못하고 물러갔다 한다. 이렇게 강릉을 수호한 범일국사는 죽어서 대관령 성황신이 되었다고 한다. 지금도 강릉단오제는 범일국사를 모시는 행사로부터 시작되며, 범일은 통일신라시대 불교의 선종을 크게 일으킨 인물로 그를 기리기 위하여 매년 단오제 국사성황제 후 국사성황 행차가 마을을 다녀간다.
학산리 동북측 왕고개에 있는 왕현성에 대해 『조선보물고적조사자료』에는 다음과 같이 소개되고 있다. ‘구정면 학산리 강릉 남 약10리 북서구상에 있음. 토루로서 주위 약 3백간 일반에 장안성지라 칭함. 강릉이 예국의 수도였을 때 축성이라고도 하며 역시 고려 공양왕 때 우왕 신우, 신창이 쌓은 것이라고도 칭함’. 또한 『임영지』에는 ‘시 서남쪽 6㎞, 명주군 구정면 학산리 왕현에 있는데 둘레와 높이는 상세하지 않고 우왕이 왕위에서 물러나서 한때 여기에 왔을 때에 쌓았다고 한다.’라고 기록돼 있다.
전설에는 공양왕이 이곳에 와서 성을 쌓고 있다가 이성계 군에게 침략을 받아 삼척으로 쫓겨 가 화를 당했다고도 한다. 역사적 사실과 어느 정도 거리가 있는 이야기이지만 이 지역 세력의 고려왕조에 대한 충정의 의미를 담고 있는 전설이다. 고려 말 동해안의 강릉, 삼척에 머물렀던 왕들과 관련해서는 왕고개, 왕현성, 장안성, 장안말 등의 지명이 전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