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30105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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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國農所 |
영어공식명칭 | Guknongso |
이칭/별칭 | 농소(農所)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지명/고지명 |
지역 | 경상남도 거창군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이광우 |
제정 시기/일시 | 태종[1400~1418] 연간 - 국농소 설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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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지 시기/일시 | 1423년 이전 - 국농소 폐지 |
비정 지역 | 국농소 마을 - 경상남도 거창군 거창읍 정장리 |
성격 | 국가 농장 |
관련 문헌 | 『태종실록(太宗實錄)』|『세종실록(世宗實錄)』|『면우집(俛宇集)』 |
[정의]
조선 전기 지금의 경상남도 거창 지역에 설치한 국가 농장.
[개설]
국농소(國農所)는 조선 전기 설치된 국가 농장이다. 국둔전(國屯田)이 군사적인 목적으로 군인의 노동력을 동원했던 것과는 달리 국농소는 지방 고을의 농업 장려와 종자 지원 등의 목적으로 운영되던 농장이다. 국농소는 주로 경기도·충청도·전라도·경상도처럼 남쪽 지방에 설치되었으며, 경작은 칭간(稱干)·사사노자(寺社奴子) 등과 같이 국가에서 정한 특수 계층이 담당하였다. 국농소를 소개하고 있는 사료가 적어 존속 기간은 명확하지 않으나, 태종(太宗) 연간[1400~1418]에 설치되어 1423년(세종 5) 이전에 폐지된 것으로 추정된다.
전국에 산재했던 국농소의 흔적은 단편적인 문헌 기록과 지명 유래를 통해 살펴볼 수 있다. 지금의 경상남도 거창군 거창읍 정장리 국농소 마을도 조선 전기 국농소가 설치되었던 곳으로 보고 있다.
[명칭 유래]
명칭 그대로 국가가 운영하는 농장을 뜻한다. 현재까지 지명으로 전해질 경우, ‘국농소’ 그대로 부르는 경우도 있지만, 줄여서 ‘농소’라 부르는 곳이 많다.
[형성 및 변천]
거창군 거창읍 정장리 국농소 마을에 설치되었던 국농소도 조선 전기 때, 일시적으로 존속하다 폐지된 것으로 보인다. 지금의 국농소 마을과 인근의 입지를 살펴보았을 때, 국농소가 설치된 지역은 황강에 인접해 있으며, 거창 분지의 산자락에서 뻗어 나온 구릉의 말단부에 해당된다.
국농소가 폐지된 후, 해당 농경지는 세종(世宗)의 명으로 농민에게 나누어준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현재 거창군 거창읍 정장리 국농소 마을에는 여러 가문이 세거하고 있는데, 가장 유래가 깊은 가문은 전주 이씨(全州 李氏) 완원군파(完原君派)다. 완원군(完原君)은 성종(成宗)의 왕자로 그의 5세손 승의랑(承義郞) 이유길(李惟吉)이 지금으로부터 500년 전 무렵, 지금의 국농소 마을에 처음 정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위치 비정/행정 구역상의 구분]
거창군 거창읍 정장리 국농소 마을이 조선 시대 국농소가 설치되었던 곳이다.
[관련 기록]
전국에 두어졌던 국농소 자체는 존속 기간이 짧아 문헌상의 기록이 매우 소략한 편이다. 조선 전기 경상도 거창현(居昌縣)에 두어졌던 국농소도 관찬 사료에는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 다만, 국농소 마을 출신의 명현을 소개한 행적기류(行蹟記類)나 읍지류(邑誌類)에서 ‘국농소’라는 지명이 간헐적으로 나타날 뿐이며, 조선 전기 국가 농장인 거창현 국농소의 존재 양상과 연혁 및 유래를 언급한 자료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한편, 곽종석(郭鍾錫)[1846~1919]의 『면우집(俛宇集)』에 수록된 「모도재기(慕道齋記)」에 따르면, ‘국농소’라는 지명 유래가 “농사를 지으면서도 책을 읽고 자신을 수양하며, 부모를 모시고 집안을 다스려 국가를 잊지 않는다.”라는 의미에서 비롯되었다고 소개해 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