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30129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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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茂村里 |
영어공식명칭 | Muchon-ri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경상남도 거창군 남상면 무촌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정홍수 |
[정의]
경상남도 거창군 남상면에 속하는 법정리.
[개설]
무촌리(茂村里)는 경상남도 거창군 남상면의 중앙에 있으며 무촌천을 따라 남북으로 길게 형성되어 있다. 상매리·매산리·무촌리·지하리·인평리 등 5개의 행정리와 상매·매산 마을·무촌 마을·지하 마을·정문리 마을·성지골 마을·받듭 마을 등 7개의 자연 마을을 관할하고 있다. 무촌리는 서쪽으로는 남상면 오계리와 동쪽으로는 남상면 송변리와 인접해 있다.
[명칭 유래]
무촌리는 조선 시대 남상면의 서남쪽에 자리했던 고천방[고천면]에 있었던 무촌역을 중심으로 한 근방을 무촌역리라 한 것에서 생긴 이름이다. 무촌은 마을이 크고 붐볐으며 숲도 무성했으므로 붙여진 지명이다. 과거 거창군 남쪽의 교통 중심지였다.
무촌리는 상매(上梅), 매산(梅山), 무촌(茂村), 인평(印坪), 성지(聖旨), 지하(池荷) 등의 마을로 구성되어 있다. 상매는 무촌리 남쪽에 있는 감악산 어귀의 매산 마을의 윗담이다. 매산은 매화꽃이 땅에 떨어진 명당자리[매화낙지설(梅花落地說)]가 있다는 풍수설에 따라 붙여진 이름으로, 뒷산이 말과 같이 생겼으므로 마산(馬山)이라고도 불리다가, 윗매산[상매]이 분리되어 하매라고도 불린다. 인평은 마을 모양이 도장과 같이 생겼다하여 ‘인평’으로 불리며, 밭 가운데 자리함으로 밭듭이라고도 부른다. 성지(聖旨)는 마을 터가 좋아서 많은 어진 사람들이 날 것이라는 한 도승의 말에 따라 지은 이름이라 한다. 성조동(聖祚洞)이라고 불렀으며, 성짓골이라고 부른다. 지하동(池荷洞)은 옛날 청림방[청림면]에 따랐던 마을이다. 조선 초기에 마을 앞들에 진양 허씨가 살면서 많은 급제가 났으며 그때는 천화동(天火洞)이라 하였다. 마을 터가 못 위에 뜬 연꽃[연화부소(連花浮沼)]과 같다 하여 못지, 연꽃하, 지하동이라 한다.
[형성 및 변천]
본래 거창군 무촌면 지역이었는데,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매동과 청림면의 지화동을 병합하여 무촌리라 하고 거창군 남상면에 편입되었다.
[자연환경]
무촌리는 무촌리의 가운데를 동류하는 대산천을 기준으로 남북쪽의 두 산지 지역으로 구분된다. 서북쪽은 옥난간산[498m]을 중심으로 남북 방향의 산지가 있다. 남쪽에는 거창의 안산인 감악산이 신원면 과정리와 경계를 이루며 우뚝 솟아 있다. 감악산의 하곡을 따라서는 무촌천이 북류하고 있으며, 무촌천은 마을 가운데의 대산천과 합류하는데, 이 주변에 넓은 농경지가 펼쳐져 있다.
[현황]
2015년 12월 현재 전체 면적은 12.78㎢으로 남상면에서 가장 넓다. 대부분이 임야 8.83㎢이며, 논 1.67㎢, 밭 0.53㎢, 과수원 0.04㎢ 등의 경지 면적이 나타나고 있다. 무촌리는 남상면사무소, 남상 초등학교, 거창 남상 우체국, 남상 파출소, 남상 보건 지소, 남거창 농협 등의 각종 기관과 공공시설 등이 있는 남상면의 중심지인 만큼 대지 0.14㎢ 면적이 남상면에서 가장 넓게 나타난다.
2016년 4월 30일 현재 무촌리의 인구는 293세대, 638명[남자 315명, 여자 323명]으로 남상면에서 가장 많다. 주민들은 대부분 농업에 종사하여 벼농사를 짓고 있으며, 일부 주민들은 사과, 딸기 등을 재배하거나 한우를 사육하고 있다.
무촌리 남쪽 감악산에는 이름 모를 병에 시달렸던 신라 헌안왕이 이 절 부근의 약수를 마시고 병을 고친 뒤에 감사의 뜻으로 지었다고 전해지는 연수사가 있다. 연수사 입구에는 수령이 약 600년으로 추정되는 거창 연수사 은행나무[경상남도 기념물 제124호]가 있다.
무촌 마을 회관 옆에는 수령이 약 400년 정도로 추정되는 거창 무촌리 은행나무[경상남도 기념물 제198호]가 있다. 마을 사람들은 이 나무를 마을의 수호신으로 섬기면서 오늘날에도 매년 음력 정월 그믐날이 되면 나무 아래에서 동제를 지내고 있다. 광주 대구 고속 도로와 거창읍으로 연결되는 지방도 1084호선이 마을의 가운데를 통과하고 있다.